잊지 말고 사랑하라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by 생각에 잠긴 장군

201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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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감싸인 여름날이었다. 군 복무 후 처음으로 몸 고생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 날 근무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파서 앓아누웠다. 병원 처방을 받고 침상에서 계속 잠을 청해도 좀처럼 눈이 감기지 않았다. 내가 아플 때면 진심으로 걱정해주시고 간호해주시던 부모님이 아른거려서였을까. 특히 어머니의 모습은 내내 눈앞을 떠나지 않았다.


회사 일로 분주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께서 대부분 나를 돌봐주셨다. 머리를 다쳐 입원했을 때도, 열이 40도가 넘어서 몸져누웠을 때도 어머니는 당신보다 큰 아들의 손을 놓지 못하셨다. 그럴 때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진심어린 말씀은 그 무엇보다도 잘 듣는 약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손길과 품이 그리운 여름의 병상이었다.


몸이 회복된 후에도 그 마음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문득 들여다 본 책꽂이에서 『엄마를 부탁해』라는 이름의 책에 유독 끌렸다. 유명한 소설임을 알고 있어서 계속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독서를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터였다. 그런데 마침 아픔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된 그 때, 어머니에 관한 아픈 이야기가 마음 깊이 다가왔다.


이 소설은 서울역에서 엄마가 실종되는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엄마를 찾아다니는 가족들은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슬퍼한다. 자식들에게 엄마는 늘 옆에 자리잡혀 있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식은 엄마에 대해서 잘 알지도, 이해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후회하는 것이다.


딸과 아들로서 엄마를 가슴 깊이 그리워하는 이러한 서사의 흐름, 그리고 인물의 인칭을 ‘나’가 아닌 ‘너’로 지칭하여 독자를 환기시키는 소설의 기법은 나로 하여금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동시에 바라보게 했다.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열심히 키운 큰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는 소설 속 엄마의 모습이, 나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떠도는 영혼과 같이 먼데서 딸과 남편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은 더없이 아련하다. 자식 키우는 딸을 쳐다보며 ‘너는 항상 기쁨이었다는 걸 기억해 달라’라고 뇌까리는 엄마의 독백은 가슴을 울리게 한다.


그러다 덜컥 두려움을 느꼈다.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엄마가 자신의 엄마인 할머니를 찾아가는 마지막 부분에서 유독 그렇게 느꼈다. 엄마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문장 덕분에, 나는 내 어머니의 과거를 헤아려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생인 시절, 외할머니는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항상 웃는 얼굴을 보여주시던 어머니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두 달 넘게 집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외할머니와 찍은 사진,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 보는 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일과였다. 나는 어떨까. 자식들의 슬픔과 뒤늦은 후회, 어쩌면 그런 자책은 피할 수 없는 일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 소설은 이렇게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불안을 교차시키며, 우리를 끊임없이 반성하게 한다.


끝내 자식들은 엄마를 찾지 못한다. 둘째 딸이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엄마를 부탁해, 라는 한 마디를 남기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가 된다. 그 말을 이렇게 바꿔도 좋을 것이다. 엄마, 나를 용서해.


의무경찰 복무를 하면서 주로 출동을 나갔던 곳이 세월호 참사 관련 시위 현장이었다. 그 중 5월 8일, 어버이날 KBS 시청자 광장에서 목도한 일은 지금까지도 잘 잊히지가 않는다. 아이들이 준 카네이션을 가슴에 꽂고 웃어야 할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임무였기는 하지만, 그 때 거기서 가족들의 길을 막아서야 했던 일은 아직까지도 내 마음 속에 무겁게 걸려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아직 아버지가 되어보지 못한 내가 감히 어떻게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사랑해도 모자란 것이, 부모 자식의 일임을 다시 생각할 뿐이었다.


세상을 바쁘게 살다 보면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잊고 살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언제까지라도 곁에 있어줄 것 같은 가족이라면 말이다. 돌이켜 보니 나 역시 가족의 일을 뒤로 한 채 대학 생활을 즐기기에 바빴던 것 같다. 아들의 부재에 큰 상실감을 느꼈을 어머니와, 입대 전까지 대화 한 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했던 것이 새삼 죄스럽다. 나는 여태 소중한 사람이 있는 가까운 곳을 보지 못하고 애써 먼 곳만을 쳐다보는 ‘한심한 원시안’이었다.


『엄마를 부탁해』의 슬픔과 회한은 사실 ‘엄마를 잃어버린 것’보다 ‘엄마를 잊어버리고 산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맨 앞장을 보면 격언 하나가 실려 있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 리스트’


사랑을 말할 사람이 있다면, 세상 마지막 날 내일이 없음을 괴로워하지 않도록 오늘 표현해야 한다. 그래도 후회가 남는 것이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다.


주말 외출 때마다 ‘이번 주도 수고했다’며 꼭 안아주시는 어머니가 생각난다. 그런 어머니의 품 안에 있으면 군 복무의 피로함이 부지불식간에 다 풀린다. 사랑에 관한 정의는 수없이 많지만, 그 또한 지극한 사랑의 한 형태일 것이라 여긴다. 그런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어지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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