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몽녀』를 읽고
2014.08.20.
소설 『오몽녀』를 처음 읽었을 때, 이 작품은 해괴망측하고 막장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주인공 오몽녀가 남편을 멸시하며 외간 남자들과 관계를 맺고, 그 외간 남자가 남편을 죽인 뒤 오몽녀가 무인도로 도망치는 전개는 나로 하여금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그러나 개작본을 읽으며 다시 곱씹어보는 과정에서, 단순히 비윤리적인 이야기로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몽녀의 처지와 감정을 따라가며 읽었을 때 비로소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한 진정한 탐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오몽녀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지참봉에게 돈으로 팔려 와서 시집왔다. 혼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남편을 싫어하던 그녀는, 권력층인 방순사와 강제로 관계를 강요당하는 수난을 겪는다. 그러다 건장한 청년 금돌이와 정분을 쌓고, 새로 부임한 남순사와도 관계를 맺으며 애욕에 빠진다. 이후 남순사가 남편 지참봉을 살해한 사실을 알게 되자, 금돌이와 함께 배를 타고 무인도로 도망친다.
‘윤리’와 ‘욕망’ 이라는 두 관점을 비교하자면, 오몽녀는 분명 욕망을 선택했다. 남편을 따르고 가정을 지켜야 할 도리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욕망을 더 중요시했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내가 만약 오몽녀였다면 어떠한 선택을 했을지 고민해봤다. 또한 소설 속 사회는 현재와는 달리 이혼조차 어려운 폐쇄적 사회였음을 고려하면, 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윤리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조선시대의 윤리와 현대의 윤리는 분명히 다르다.
그런 생각 끝에 주인공의 처지와 시대 상황을 내 삶에 비춰보았다. 내가 오몽녀라면, 나 역시 욕망을 위해 도망을 택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윤리라는 틀 안에 억눌러두는 일은 너무 답답하고 고통스럽다. 오몽녀는 원치 않는 결혼을 했고, 성폭행으로 볼 수 있는 치욕을 당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금돌이가 나타났을 때,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도망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했다. 친한 대학 동기에게 몽녀의 상황을 설명하고 본인이 그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봤다. 동기의 답은 나와 마찬가지로 "도망가겠다"였다. 그는 "이기적인 결정일지 몰라도, 정말 좋아하는 살마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또 "사람들이 정해놓은 행동 기준이라는 틀 때문에 참고 견디는 것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에서 이런 상황이 닥쳐오면, 과연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나는 지금까지 윤리 의식에서 크게 벗어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선생님의 지시에 순응하는 편이었고, 억지스러운 요구에도 불만을 품지 않았다. 친구들이 자신의 취미 생활을 위해 반항하거나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무단결석하는 모습을 보며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들으며, 그때의 친구들의 행동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고 나 또한 비슷한 마음을 느낀 적이 있다.
마음을 품는 것은 자유지만, 욕망을 윤리보다 앞세워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정말로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를 실천할 필요도 있다. 다만 ‘중용’의 자세로, 적당한 선에서 윤리에 어긋나지 않게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그 욕망이 명백히 잘못된 것이거나 사소한 것이라면, 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 생각한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게 되면 지금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나로서는 사람을 해치는 등 명백한 악행이 아닌 이상, 윤리에 조금 어긋나더라도 ‘중용’의 자세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욕망을 좇는 선택을 할 것이다. 그것이 인생에서 덜 후회하는 길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