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광기 사이에서

『광염 소나타』를 읽고

by 생각에 잠긴 장군

20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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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염 소나타’를 읽으며, 위대한 예술을 창작하기 위해 어떠한 범죄도 용납될 수 있다는 생각과, 그러한 범죄를 예술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는 사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설 속 음악비평가 K씨는 "범죄를 구실로 위대한 예술 활동이 없어지는 것이 더 큰 죄악"이라며 ‘백성수’의 광기적인 만행을 옹호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주는 예술을 창조하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며, 후세를 위한 값진 업적이다. 우리가 오늘날 판소리를 듣고, 동양화를 배우며,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감상할 수 있는 것도예로부터 예술 활동이 존중되고 보호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 이전에 지켜야 할 것은 인간의 도리와 윤리다. 아무리 위대한 예술이라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죄 없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그들의 피를 묻힌다면, 그 예술은 위대함보다는 오히려 추악함에 가깝다. 만약 ‘예술을 위한 범죄’를 옹호한다면 세상의 질서는 무너지고, 결국 모든 범죄가 정당화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예술이 설 자리를 잃고, 도덕이 사라진 암흑기가 찾아올 것이다. 윤리적 일탈이 동반된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라 부를 수 없다.


TV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본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 일본 사진작가가 여성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찰나를 포착해 공모전에 출품했고, 그 긴박한 순간의 표정이 예술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는 예술을 위해 여성을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린 것이었다. 결국 그는 경찰에 체포되어 죗값을 치렀다. 예술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타인에게 고의적으로 피해를 주며 만들어지는 예술은 악마적 창조일 뿐이다. 예술 창작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와 사회의 도리가 있다.


예술을 떠나 역사적으로 보아도 ‘광기’가 정당화된 사례는 없다. 독일의 히틀러가 세계 정복을 명분으로 저지른 유대인 학살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는 만행이었다. 현재 독일조차 그 역사를 반성하고 사죄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소설 속에서 ‘예술을 위한 광기’가 명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K의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러한 광기를 제지하고 법으로 다스린다고 해서 제2의 모차르트나 천재 예술가가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윤리를 해치지 않으면서 뛰어난 예술가들이 등장하고, 훌륭한 예술 작품이 끊임없이 창조되고 있다.


물론 나는 예술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의 생각이 단순한 소견일지도 모른다. 또한 진정한 의미의 ‘광기’를 경험해본 적이 없기에 생각이 짧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분명히 말하고 싶다. 사회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도덕을 거스르는 예술적 광기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광염 소나타’를 읽으며 작가에게 적잖은 반감을 느꼈다. 김동인의 소설이 담고 있는 심미주의와 유미주의는 충분히 사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만약 그 광기가 ‘미(美)’를 명분으로 윤리를 무너뜨린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한 혼란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경계하고 제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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