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습』을 읽고
2013.04.18.
- 자기의 감정이나 욕심, 충동 따위를 이성적 의지로 눌러 이김.
김승옥의 「생명연습」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자기세계는 당황스러움 그 자체이다. 주인공의 형은 아버지가 부재한 가정에서 대신 아버지의 역할을 맡으며, 다른 남자들과 잠자리를 하는 어머니를 죽이려는 결심을 한다. 반면 누나는 형과 달리, 어머니의 행실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으로 해석하며 체념적으로 받아들인다. 여자를 부정하며 그녀의 죽음조차 슬퍼할지 고민하는 한 교수, 자신의 생식기를 자른 전도사 등도 각자의 방식으로 왜곡된 자기세계와 극기를 드러낸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고, 모두 비정상적인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인물들은 각자의 세계 속에서 극단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견디지만, 그들의 방식은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특히 주인공과 누나가 형을 밤바다로 밀어 넣고 묘한 평안을 느끼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한 교수가 사랑했던 여자의 죽음을 두고 슬퍼할지 말지 고민하는 장면도 도무지 공감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이 소설이 ‘이상한 사람들만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소설이 결국 현실의 반영이라면, 등장인물들이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보이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인물들의 자기세계와 극기는 ‘극도로 부정적인 현실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느꼈다. 이러한 점은 주인공의 가정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부정은 세 남매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남긴다. 형은 어머니를 살해하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반면 누나는 형과 달리, 어머니의 사내들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 그들이 모두 아버지를 닮았다고 느끼며, 어머니의 행실을 일종의 그리움과 상처의 표현으로 이해하려 한다. 그들은 견디기 힘든 현실을 각자의 세계 속으로 옮겨놓음으로써 체념과 극복을 동시에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연습’ 속 인물들의 자기세계와 극기를 보며, 나 자신에게도 그런 세계와 극기가 있었는지 돌아보았다. 솔직히 쉽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아직 극도의 부정적 현실을 마주한 적이 없고, 어쩌면 아직은 어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소설 속 인물들처럼 절망적인 경험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감정이나 충동을 이성으로 눌러 현실을 감당했던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보았다.
그중 하나는 재수 시절 수능을 치른 직후였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허무함과 자책감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만 행동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차분히 현실을 받아들이며 나만의 돌파구를 찾았다. 그때의 경험은 지금 돌아보면 내 안의 작은 ‘극기’였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통해 나의 경험을 비추어보며, 결국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세계와 극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처럼 ‘생명연습’이란,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고 살아내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다만 작품 속 인물들처럼 비정상적이고 자폐적인 극기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를 다스리며 위기를 극복하는 건강한 극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