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람, 죽음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by 생각에 잠긴 장군

2013.05.23.



장면 하나하나를 놓칠 수 없을 만큼 진한 여운을 남긴 영화였다. ‘아이언맨’처럼 화려한 그래픽이나 장대한 스케일은 없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은은하게 스며들어 오래도록 향기를 남겼다.


배우들의 연기에 완전히 몰입되어 영화 속 세계로 빨려 들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 정원(한석규)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 담담하면서도 깊은 연기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다림(심은하)의 순수한 눈빛과 정원을 향한 애틋한 마음은 다시금 사랑이라는 감정을 되새기게 했다. 이 영화는 사랑과 사람, 그리고 죽음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섬세하게 엮어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가슴에 와닿았다. 스쿠터 소리만 들어도 설레며 환하게 웃는 다림의 모습,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던 장면, 다림이 갑자기 정원의 팔을 살짝 끼던 순간까지. 모든 장면이 풋풋하고 달콤했다. 정원이 마지막 내레이션으로 “그녀는 추억이 아니라 사랑으로 남을 것”이라 말할 때, 그 말의 울림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정원이 사진관에서 한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찍는 씬이었다. 그 장면을 보는 동안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내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바쁠 때마다 나를 맡아주시며 정성껏 챙겨주셨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어린 마음에도 느껴졌던 그 따뜻한 마음과 애정은 아직도 또렷하다. 영화 속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그 시절 외할머니의 다정한 눈빛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어릴 적, ‘한 달 안에 죽는다면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때 떠올린 일들이 영화 속 정원의 행동과 겹쳐 놀라웠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친구들과 모여서 놀기, 부모님께 더 잘해드리기...

정원이 아버지에게 비디오 보는 법을 가르쳐드리고, 사진관의 기계를 설명해 두던 장면은 그런 내 생각과 겹쳐 마음이 먹먹했다. 나도 부모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어머니께 교회 홈페이지 들어가는 법을 알려드리고, 아버지께는 어머니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법을 알려드리고 싶다. 그런 생각 자체가 불효일지라도, 문득 그렇게 느껴졌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정원의 모습은 오히려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 영화의 장면들은 내 마음속에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남았고, 그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