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정도의 산고 끝에 아기가 태어났다.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으니 병원에서 아이에게 초유를 먹이라고 아기를 방으로 데려다주었다. 갓난아이를, 내 아이를 안는다니 이상했다. 이미 조카들을 안아본 적이 있지만 영판 다른 느낌이었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는 아기에게 처음으로 젖을 물렸다.
신기하게 임신해서 만삭이 되니 젖이 싸~하면서 자주 아팠다. 가슴이 자꾸 커지면서 빵빵해졌다. 젖꼭지도 조금씩 커졌다. 서서히 커지던 배가 만삭 한 달 동안 확~ 커지는 게 느껴졌다. 커지면서 배가 아래쪽으로 툭, 하고 내려간 느낌이었다. 그전에는 가슴이 답답했는데 아래쪽으로 배가 처지면서 가슴은 편해지고 다리에 하중이 전달됐다. 그 때문에 걸을 때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만삭의 몸의 변화는 신기했다. 몸의 변화 중에 가장 놀란 건 온몸이 다 터버린 것이다. 임신 전에 나는 뚱뚱했던 적이 없다. 온몸이 근육질은 아니었지만 지방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만삭이 되니 몸이 많이 불어나게 되었다. 몸무게는 임신 전보다 12킬로 정도 늘었다. 다른 산모들의 경우 나보다 몸무게가 더 늘어도 나처럼 심하게 트는 경우는 많이 못 봤다. 그런데 나의 몸은 종아리 위부터 목 아래까지 온통 몸이 터버렸다. 배꼽티는 이제 '아듀'를 고해야 하는 몸이 되었다. 온몸이 트는 동안 그걸 눈치챌 만큼 나는 한가하지 않았다. 온몸이 튼 건 아이를 낳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
만삭이 되면서 제일 심하게 튼 건 배였다. 배꼽 위에서부터 태백산맥 줄기와 한북정맥 줄기가 뻗어나가듯 튼 살이 뱃살 위에 길을 만들어놨다. 우리나라 지도를 3D 입체영상으로 보듯 튼 자리가 선명해졌다. 배꼽 아래는 더 많은 길이 새겨졌다. 날로 발전하는 대한민국에 길이 뻗어나가듯 내 배 위에 선명하게 도로들이 생겨났다. 배가 트고 트다가 피가 이곳저곳에서 났다. 허벅지도 튼 살로 자국들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가뭄에 땅이 갈라지듯 온몸에 튼 자리들이 선명하게 줄을 내며 사방팔방으로 이어졌다. 풍선을 터질 듯이 불었다가 바람을 빼놓은 듯 몸이 쭈글거려졌다.
만삭까지 가슴이 트는 과정은 애교(장난)처럼 조금 진행됐을 뿐이었다. 모유 수유를 겪기 전까지 그냥 그런 줄만 알았다. 병원에서 아기를 안고 초유를 먹이느라 시름을 했다. 아기도 젖을 잘 못 찾고 나도 젖 물리는 게 힘들었다. 생초보 엄마와 갓 태어난 아기 둘 다 젖과 사투를 벌였다. 초유는 그렇게 어설프게 잘 먹이지 못하고 몇 번 더 시도해야 했다. 젖을 찾는 본능이 아기에게 있다는 게 신기했다. 몇 번 시도만에 아기가 젖을 제대로 빨았다.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이상야릇했다. 아기가 젖을 빨 때 손수건이 계속 필요했다. 병실에서 젖 냄새가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아이를 낳고 병원에 이틀만 있고 퇴원을 해서 집으로 왔다. 엄마는 당시 작은 언니의 둘째 아이를 맡아서 보게 되어 너무 바빴다. 시댁에는 갈 수 있는 형편이 못됐다. 집으로 오면서 그에게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출산 전부터 계획했던 거라 몇 번 미역국 끓이는 것도 알려준 후였다. 한 달 동안 집에서 그는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나는 그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며 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했다. 나는 조만간 방송대 3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있어서 하루하루 젖 먹이고 공부하느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아기는 한 달 동안 모유를 아주 잘 먹게 되었다. 매일매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기의 사진을 찍었다. 육아일기도 쓰고 아기 운동도 시켜주었다. 다리, 팔을 주물러주며 아기와 놀았다. 갓 태어나서 쪼글거렸던 얼굴이 퇴원하고 젖을 물리자 뽀얗게 피어났다. 포동포동 살이 차오르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아기용품은 손빨래를 해야 해서 보름 동안은 아기 아빠가 빨래를 해주었다. 다른 몸조리는 못하더라도 산모가 빨래를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기 옷과 손수건, 기저귀, 배냇저고리 등 빨래가 계속 너무 많아졌다. 도저히 기저귀는 천 기저귀를 사용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았다. 기저귀는 일회용 기저귀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도 빨래가 많았다. 출산 후 20여 일이 지나면서 아기 빨래를 내가 손빨래하기 시작했다. 손목이 시큰 걸렸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기는 매일매일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었다. 아기의 탄생부터 자라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다행히 신생아는 깨어있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많았다. 아기가 잘 때 공부할 수 있어서 기말고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기말고사 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시험 일정이 긴 일정이었다. 다행히 주말에 시험을 봐서 아이 아빠가 쉬는 날이었다. 미리 짜놓은 젖을 챙겨놓고 일찍 집을 나섰다. 기말고사 시험을 치르는데 오전 10시부터 가슴이 불편해졌다. 12시가 넘어가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젖이 심하게 불어 있었다. 젖이 흘러나오면서 통증으로 괴로웠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손수건을 가슴에 대 놓았다. 다섯 시간째 시험과목 시험째 가슴에 통증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가슴이 핸드볼 공만큼 커지고 있었다. 젖이 심하게 흘러나왔다. 여름이라 덥고, 가슴은 아프고, 젖은 흐르고 시험 내내 젖과 사투를 벌이며 시험을 치러냈다.
잠시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젖을 짜냈다. 처음으로 아기와 장시간 떨어져 있는 거라 이런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챙겨 온 것도 없었다. 유축기를 초반에 샀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서랍에 넣어두었다. 젖을 손으로 짜는데 제대로 짜질 리가 없었다. 그래도 워낙 가슴이 공만큼 불어있어서 조금만 눌러도 젖이 쭉쭉 나왔다. 화장실에서 쉬는 시간 내내 젖을 짰다. 가슴 통증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마지막 과목 시험을 치르러 교실로 들어갔다. 여섯 과목 모든 시험을 치르고 동기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밖으로 내달렸다.
내 상태를 미리 통화로 이야기했다. 아이도 계속 울고 힘들어한다며 아이 아빠가 아이를 학교까지 데리고 왔다. 학교 내에 주차장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고 차로 향했다. 골인점에 들어가듯이 달릴 수 있는 만큼 전속력으로 뛰어가서 차에 탔다. 썬틴도 제대로 안된 차 안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배고팠던 아기도 젖몸살의 통증으로 사색이 되어있던 나도 둘 다 살 것 같은 표정을 차차 찾았다. 한쪽 젖이 조금 괜찮아지자 다른 쪽 젖을 물렸다. 아~ 급똥 참는 것보다 더 아프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젖 참는 고통을 경험했다. 학교 앞에서 젖을 물리고 서서히 집으로 출발했다.
급똥 참을 때 느낌도 죽을 맛이지만 젖 참는 것도 아주 고된 일이라는 걸 2001년 여름 1학기 기말고사 시험날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