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고 3주 후부터 손빨래를 했다. 모유 수유를 하고 있었고 생각보다 빨래가 많이 나왔다. 요즘은 아기 세탁기도 나오는 시대니까 세상이 좋아졌다. 2001년도에는 아기 세탁기가 없었다. 세상에 없었는지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우리 집에는 없었다. 우리 집에는 큰언니가 사용하다가 준 낡은 세탁기가 있었다. 아기 옷 세탁은 합성세제도 신경 쓰이고 빨랫비누로 빠는 게 갓난아기에게 나을 것 같아서 손으로 조물조물 빨았다. 탈수 기능만이라도 세탁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빨래는 손으로 어찌어찌하더라도 젖은 옷을 잘 짜는 건 무리가 있었다. 손목이 시큰거렸다. 그때 살짝 시큰 걸렸던 손목은 이후 나에게 고질병을 선사해 주었고 오랫동안 괴롭혔다.
아기 빨래 양이 점점 늘어났다. 아기 빨래를 손빨래하는 것만으로 힘들어졌다. 어른 빨래는 세탁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우리 집 세탁기는 큰언니가 10년 이상 사용하다가 새 세탁기를 사서 집에 두었던 중고 세탁기였다. 가전제품이 기능을 쉬고 있었다가 우리 집에 왔으니 계속 사용해서 10년이 넘은 것과는 다름이 있었다. 오랜 세월 자신의 몫을 다 한 세탁기가 우리 집에 오고 얼마 못 가서 병이 났다. 2001년 당시 나는 가전제품 수리업체를 부르는 것도 부담됐고 세탁기 교체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안 사도 이미 생활비가 없었다. 세 식구 먹고, 쓰는 것을 부업으로 받은 돈으로 충당해야 했다. 세탁기가 고장 난 부분은 물을 받는 호수 부분이었다. 호수가 수도꼭지와 연결되는 부분이 망가져서 고정이 되지 않고 빠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호수를 교체했으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에는 수리비 걱정에 기사님을 부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세탁기로 빨래를 하려면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한지 그때 알게 되었다. 자동으로 물이 틀어지고 멈춰져야 하는데 그 작업을 수동으로 하기 시작했다. 아기 빨래는 매일 손빨래를 하면 되지만 어른 빨래는 날을 잡고 해야 하는 큰일이 됐다. 빨래를 시작하면 세탁기에 옷을 먼저 넣고 세제를 넣었다. 그다음부터 큰일이 계속됐다. 물을 세숫대야에 받아서 세탁기에 넣었다. 세탁기는 생각보다 물을 많이 먹는 먹깨비였다. 세탁기가 한번 돌아갈 때마다 열 번 이상 물을 받아서 세탁기로 옮겨야 했다. 세탁 기능은 한 번이라서 나름 괜찮았다. 이후 헹굼 작업을 할 때가 문제였다. 물이 한두 번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적어도 세탁기에 세 번의 물을 다시 받아야 했다. 그렇게 번거로웠지만 모든 걸 손빨래를 할 수가 없었다. 어른빨래는 어쩔 수 없이 세탁기를 이용했다. 세탁기로 빨래를 할 때마다 물을 받아서 세탁기 안으로 옮기느라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출산하고 한 달 후부터 다시 큰언니네 집으로 출근을 했다. 몸조리로 한 달 정도를 채워서 쉬었다. 가정 수입금액은 아이 아빠의 급여 110만 원이 전부였다. 그런데 집안의 고정비만 110만 원이 넘었다. 아기가 태어났으니 입이 하나 늘었다. 더 많은 생활비가 필요했고 온 가족이 먹고 쓰는 변동비를 벌어야 했다. 아기에게 필요한 한 달 지출비용을 계산했다. 이유식 값, 아기 용품, 아기 옷, 기저귀 등 매달 필요한 소모품들이 새롭게 생겼다. 큰 언니네서 부업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일하러 가면 큰언니가 밥도 주고 일거리도 같이 도와줬다.
아기를 맡기고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짬짬이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그러나 아기가 너무 어려서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알아본 곳에서 최소 만 6개월은 넘어야 아기를 받거나 심사해 줄 수 있다고 했다. 6개월까지는 부업을 해야 했다. 아기가 6 차월이 되어도 아기를 맡기면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모자란 생활비 충당, 아기를 위한 소비, 미래를 위한 저축까지 하려면 더 돈을 벌어야 했다. 부업은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잠을 줄여도 70만 원 이상 벌기는 힘들었다. 이대로 계속 부업으로 연명할 순 없었다. 신비롭고 생때같은 아기가 크고 있었다. 곧 아기가 기고 걷다 보면 부업하는 게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핸드폰에 들어가는 단자는 너무 작고, 많았다. 게다가 도금을 한 제품이었고 아기는 모든 걸 입으로 넣는 습성이 있었다.
아기는 만 6개월이 지나야 맡길 수 있다고 했으니 그동안 나는 목표를 정했다. <생활비 펑크 안 나게 먹고살기, 백일사진 찍어줄 돈 마련하기, 최대한 돈 저축하기> 계획이 세워졌으니 실천하기 위해서 부업 시간을 정했다. 곧 겨울이 되면 아기 옷이며 용품들도 더 필요해질 터였다. 부업을 하러 가는 길에 아기를 띠에 안고 큰언니 네로 넘어갔다.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을 했다. 아기는 너무 착하고 순해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있었다. 조카들 여섯 명을 아기 때부터 봤지만 이렇게 순한 아이는 본 적이 없었다. 한 시간당 5분 정도 잠깐씩 시간을 내서 아기와 놀아줬다. 다리 주물러주는 것을 특히 좋아해서 까르륵~ 잘도 웃었다.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보면 근심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들이 크면서 나는 종종 아들에게 말했다. "우리 아들은 나하고 딱~맞는 찰떡궁합 아들이야. 아들은 갓난아기 때도 무지 순하고 착했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착했어. 잘 놀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웃는 고마운 아들이었어. 청소년기에 늘 부족하고 바쁜 엄마라서 아들 옆에 있어주지도 챙겨 주지도 못했어. 그런데도 불평 한마디 없었어. 너무 고맙고 미안해" 그러면 아들은 늘 시크하게 말하곤 한다. "난 (엄마 바쁜 게) 좋았는데." 2023년, 성인이 된 22살인 아들은 군대까지 다녀왔다. 요즘은 편의점 알바를 한다. 나는 가끔 아들에게 살짝궁, 톡을 하거나 말한다 "사랑해." 그러면 아들은 늘 똑같이 답장하거나 말한다. "나도."
세탁기는 단칸방 전셋집에서 2년 동안 자신을 불태웠다. 비록 본의 아니게 나에게 근력운동을 시켜준 세탁기지만 너무 감사한 세탁기였다. 물론 세상에서 제일 감사한 건 잘 자라준 아들이다. 감사하게도 아들은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