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2002년, 그 뜨거웠던 여름(2002월드컵)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101화

(별별챌린지 3기 -17일 자)




서양란:덴파레(꽃말: 축하, 축복)



2002년, 그 뜨거웠던 여름(2002 월드컵)


2002년 25살에 나에게 세 가지의 명함이 생겼다. 아이 엄마, 워킹맘, 방송대 학생 졸업반, 세 가지를 담당하는 만큼 각 업무를 잘 해내야 했다. 아기 젖을 떼고,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데 성공하건 아주 큰일이었다. 다음으로 중요한 사항은 일이었다. 그전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워킹맘으로 아기 맡기고 출근을 하면서 방송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출석수업에 참여해서 시험을 치르고 리포트를 작성했다. 학교에도 갈 일이 있었고 학습관에도 갈 일이 빈번했다.


학교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길의 빛깔에는 여러 색깔이 있었다. 임신 후 임원을 그만뒀기 때문에 부천 학습관에서 사람들의 소문은 천차만별이었을 것이다. 간혹 가다 나의 소식을 뒤늦게 듣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를 낳았어? 결혼식은 한 거야?" 차라리 대놓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는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나는 나대로 일상이 너무 바빠서 평판이나 소문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역시 나쁜 일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작은 일에 고민을 하고 있다가 막상 큰일이 닥치면 작은 일 따위는 순식간에 잊어버리곤 한다. 호강에 겨워서 요강에 똥 싸는 사람들은 늘 주변에 많기도 하다.


행운의 여신은 나를 보고 싱긋 웃음을 짓는듯했다. 모든 걸 덮어 버릴 2002년 그 뜨거웠던 여름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은 아시아에서 그것도 우리나라와 일본이 공동으로 주최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이 주최국이 된 만큼 2002년 월드컵의 시작은 평소와 조금 다른 분위기로 시작됐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거리응원에 나선 건 아니었다. 축구를 지극히 좋아하는 팬이 아니라면 평가전까지는 열정적으로 보거나 단체관람을 하지는 않았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 감독에 히딩크 감독은 이름도 생소하고 '감독을 외국인으로 꼭 기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평가전에서 좋은 기록을 낸 것도 아니었다.


조별리그가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D조로 강호 포르투갈이 포함된 조였다. 2002년 6월 4일 폴란드와 2:0으로 이겼다. 백전노장 황선홍의 선제골과 유상철의 결승골로 완승을 이뤘다. 6월 10일 미국과 1:1로 비겼다. 0:1로 지고 있었으나 후반 33분 안정환의 동정골로 무승부로 끝났다. 14일 포르투갈과 조별리그의 마지막 경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에서 질 경우 미국과 폴란드의 경기 결과도 중요했기 때문에 각 방송국에서 미국과 폴라드의 경기도 중간중간 중계해주고 있었다. 0:0으로 팽팽한 경기가 이어가던 중 1:0으로 포르투갈을 상대로 당당하게 골문으로 공이 들어갔다. 박지성이 골을 넣고 양팔을 벌리고 아이처럼 달려가 히딩크 감독에게 펄쩍 뛰어올라 안기는 장면은 영화 속 한 장면이 되었다. 이후 멋진 경기로 1:0으로 포르투갈을 이기며 조별리그를 마감했다. 공동 개최국인 일본과 대한민국은 조별 1위로 멋지게 16강에 진출했다.


16강은 6월 18일 이탈리아전이 있었다. 조별리그 경기 후로 대한민국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축구 역사상 월드컵에서 16강에 들어간 건 꿈같은 일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붉은 티를 구입했다. 평가전 때부터 활약했던 붉은 악마가 전파되면서 전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갔다. 축구 경기장뿐 아니라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경기장이 하나둘씩 개방됐다.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경기를 관람하는 게 문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도 부천종합 경기장으로 16강을 보러 갔다. 가는 길에 차가 막혔지만 누구 하나 화내는 사람이 없었다. 길을 가다 누군가가 경적을 울렸다. <빠아~바 방빵!> 그러면 누군가 시킨 듯 그다음 경적이 여기저기서 함께 들렸다. <빠바아~바방빵~>


대한민국의 16강 경기가 시작됐다. 이탈리아는 조별리그에서 고전하며 2위로 16강에 올라왔다. 당시 언론에서 프란체스코 토티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한국을 이기는 데는 1골이면 충분하다"는 자막이 방송됐다. 이 보도를 본 국민들은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났고 이탈리아 전에서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이기라는 응원이 시작됐다.(이후 토티의 인터뷰가 오역이란 게 밝혀졌다.) 선수들의 움직임에는 초반부터 신경전이 대단했다. 유럽, 이태리 선수들은 몸이 좋았고 몸싸움에 능했다. 그에 질세라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들이 주눅 들지 않고 맞서고 있었다.


일본은 16강전에서 터키와 경기를 치렀고 0:1로 터키가 승리했다. 경기 시작 전 붉은 악마들은 카드 섹션으로 <AGAIN 1966>을 펼쳐 보였다.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탈리아를 1:0으로 꺾었던 이변을 재현하자는 뜻이었다. 이탈리아는 이것을 보고 도발로 받아들였고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이탈리아 선수들과 대한민국 대표들이 모두 날 선 신경전이 감돌았다. 경고를 받는 선수들이 발생하고 김태영은 코 뼈가 골절되었다. 1:0으로 이탈리아가 앞서나가고 있는 상태로 전반전이 끝났다. 후반전 설기현의 동점이 터지고 정규시간 경기가 끝났다. 이후 연장전에 안정환의 골로 결국 2:1로 대한민국이 승리했다. 대한민국이 8강에 진출하게 됐다.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 되었다. 경기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온통 거리는 붉은 악마의 물결이었다. 모든 사람이 얼싸안고 기쁨을 공유했다.


8강에 진출한 대한민국은 강력한 스페인과 만났다. 6월 22일 토요일 모든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다. 스크린이 있는 경기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호프집과 술집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다가 혹은 술을 마시다가 함께 경기를 보며 곳곳에서 골든벨을 울렸다. 가게 주인 사장님들이 골든벨을 울리는 집도 많았다. 축제의 장에서 우리 모두는 함께 축제를 즐기는 공동운명체로 하나가 되었다. 경기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0:0으로 무승부가 났다. 연장전까지 갔지만 역시 무승부로 경기 시간이 끝이 났다. 대망의 승부차기 그 숨 막히는 시간이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골을 차는 선수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세상에 이런 일이~ 승부차기 대승으로 3:5 대한민국이 4강에 진출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이 염원했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2002년 6월 대한민국은 모든 사람이 공통된 꿈을 이뤘고 기쁨에 찬 사람들이 함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4강으로 올라간 대한민국은 더 이상 승부에 염원이 없는 듯 보였다. 6월 25일 독일의 전차부대가 대한민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국민들은 온통 하나가 되었고 4강으로 왕관을 쓴 기분이었다. 경기 결과는 독일이 1:0으로 이겼다. 그러나 승자는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축배를 올렸다. 6월 29일 3,4위전 평가전에 대한민국은 터키를 상대로 2:3으로 경기를 마쳤다.


2002년 뜨거웠던 여름, 그때를 떠올리면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붉은 악마였으며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었다. 나는 아이를 업고 거리응원을 나갔다. 그날의 뜨거운 열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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