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엄마의 자립기 2(포장마차)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102화

(별별챌린지 3기-18일 차)




꽃고비(꽃말: 기다림, 돌아와 주세요)



엄마의 자립기 2(포장마차)


2002년 6월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는 7월이 돼도 바로 식지 않았다. 월드컵 신화 4강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한동안 들뜬 마음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축구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유명인이 되었고 국민들 마음에 추억이 되고 별이 되었다. 히딩크 감독은 우리나라의 영웅이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월드컵으로 인한 커플들도 많이 생겨났다. 특히 이후 방송대에서 나의 대학교 임원 사수였던 K 선배처럼 신기한 인연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K 선배는 외모가 두꺼비 같다던 선배다. K 선배가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데 월드컵 커플이라고 했다. 개방된 단체관람이 가능한 경기장에 갔다가 응원하면서 처음 본 사람과 얼싸않은 게 인연이 됐다고 했다. K 선배는 그분과 결혼까지 골인했다.


7월에 접어들면서 나는 1학기 기말고사를 준비했다. 방송대 4학년, 일 년 만 더 공부하면 졸업이었다. 평일 낮은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할 때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왔다. 제일 먼저 집에 도착하자마자 젖병 소독을 해놓고 저녁밥을 올렸다. 남편이 퇴근하면 밥을 차려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했다. 여전히 세탁기는 고장 나있었기 때문에 탈수만 사용했다. 아이랑 잠시 놀아주고 이유식을 만들어서 먹였다.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 게 고마웠다. 아기가 잠들면 그때 잠깐 교과서를 보며 공부했다. 주말은 최대한 공부하는 시간을 확보했다. 무사히 졸업하는 게 그해의 목표였다.


2002년 7월 나의 일상은 단출했다. 아침 7시 전후로 어린이집으로 가기 전에 아이 가방을 챙겼다. 분유를 먹기 시작했으니 분유를 넣은 젖병을 세 개 챙겼다. 아직 어린 아들은 젖병을 빨거나 이유식을 먹을 때 옷이 더러워지는 게 일상이었다. 여러 개의 손수건, 기저귀등과 여벌옷을 한 벌 이상 아이가방에 챙겨 넣고 어린이집으로 보냈다. 여름이라서 이유식은 과일이나 곡물 수프를 만들어서 챙겼다. 아들을 맡기는 아침 7시까지 일분일초가 아쉬웠다. 7시 20분 이면 집에서 출발했고 7시 반에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아이를 맡길 때마다 아들이 계속 울었다. 아침마다 모자의 눈물겨운 생이별이 재현됐다. 아이를 떼어놓는 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인데도 매번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포장마차를 하느라 바빠졌다. 바쁜 게 도움이 된 듯 보였다. 우울증을 앓듯 생기가 없더니 매일 조금씩 얼굴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매일 들르지 않고 이삼일에 한 번씩 들러보게 되었다. 내 나름대로 일상이 바빠진 탓이었다. 저녁까지 다 해 먹은 후 아들을 업고 밤에 엄마에게 잠시 들르기도 했다. 저녁을 먹었다고 해도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주셨다. 나는 술을 싫어해서 술 한잔 마시지 않으면서 안주만 주야장천 먹어대곤 했다. 손님이 아주 없는 게 아니라서 마음이 편했다. 아기까지 업은 애 엄마가 늦은 시간까지 포장마차에 있을 수 없으니 잠시 머물렀고 집에 와서 내 할 일을 해놓고 다음날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2002년 7월 끝나지 않은 영광을 만끽하듯 사람들이 <붉은 악마티>를 입고 다녔다. 그 뜨거운 여름에 방송대 4학년 1학기 기말고사 시험을 치렀다. 시험을 치른 후에는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며칠 동안 퇴근하면서 아이를 업고 엄마 포장마차에 잠시 들렀고 손님이 있으면 일을 도왔다. 7월이 다 저물어 가던 날 퇴근길에 포장마차에 들렀다. 엄마가 나를 보고 반색하시며 음식을 하던 손을 멈추고 잠시 집에 다녀온다고 했다. 초창기에는 포장마차를 내가 운영했었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 수 있으니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다. 나는 아이를 업고 포장마차에 있었다. 손님이 들었고 음식을 만들었다. 일찍 올 것 같던 엄마가 돌아오지 않았다. 일이 좀 길어진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올 시간이 지난 상태에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퇴근하면 엄마네 집으로 오라고 했기 때문에 퇴근해서 전화한다고 생각했었다. 엄마가 늦어지니 엄마 모시고 포장마차로 오라고 하려고 했다. 이미 늦어서 집에 가서 저녁을 해 먹으려면 배가 너무 고플 것 같았다. 전화를 받았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전달됐다. 순식간에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손님에게 말하고 나도 자리를 떠나야 하는 걸까?' 다급한 마음에 밖으로 나와서 작은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은언니가 바로 병원으로 간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포장마차에서 아기를 업고 있었다. 다소 이른 시간에 들어온 손님은 소주 한 병을 달라고 했다. 기계적으로 소주를 한 병 가져다 드렸다.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빠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엄마가 쓰러졌고, 남편이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엄마가 의식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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