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졸업을 향해서

셸 위 댄스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107화

(별별챌린지 3기 - 21일 차)




카모밀레:캐모마일 (꽃말:역경에 굴하지 않는 아름다움, 역경에서의 에너지, 숨겨진 아름다움)



졸업을 향해서


2002년 서글픈 마음, 돈에 대한 압박, 가을이 깊어가며 가슴팍에 스산한 바람이 스몄다. 계절을 느낄 여유도 없이 추운 바람이 불어오면 옷깃을 여밀 뿐이었다. 몸과 마음을 보살필 여력도 없이 나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많았다. 마음이 서글프다고 우울감에 빠져있을 수 없었다.


돈을 아껴 쓰느라 500원짜리 머리끈 하나도 내 돈 내고 살 수 없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업무용 노란 끈이 나의 머리끈이 되었다. 몇 년째 흔한 티 한 장도 살 수 없었다. 회사 동료들 중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이 몇 명 있었고 어린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주로 언니들과 어울렸다. 회사 생활이 적응되고 일이 수월해지면서 급여를 300만 원 이상 받게 되었다. 회사 바로 앞 지하상가에는 눈을 현혹하는 옷가게들이 즐비했다. 이어진 가게 중에 여성용 액세서리를 파는 곳도 있었다. 머리끈 종류가 다양하게 펼쳐져 있었다. 매번 지하상가를 지나다니면서 옷과 머리끈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지만 매번 눈길을 다시 돌리며 돌아섰다. 아침에 머리를 묶을 때마다 얇고 노란 사무용 고무줄은 단단하게 엉키면서 머리카락을 종종 뽑아가곤 했다.


곤궁한 생활, 돈을 아껴 써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쉽게 양보하는 것은 오롯이 <나>에게 한정되었다. 집안의 대소사, 남편, 아이에게 사용할 돈은 내 선에서 최우선으로 사용했다.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격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좋은 물건을 사려고 신경 썼다. 갑작스럽게 발생되는 사고와 같은 친정집일은 꼼짝없이 먼저 해결해야 했다. 이후 남은 돈으로 빚을 갚고 저축했다. 생활비는 금액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게 사용했다. 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매일매일 깨닫고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단단한 바윗덩어리가 양쪽 어깨 위에 <빚>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가 있었다. 몇 년 전 심에게 빌린 300만 원의 빚이 나를 내내 힘들게 했다. 가끔은 꿈속에서 빚이 괴물 같은 형상이 되어 들러붙고 쫓기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동안 빚을 전혀 못 갚고 있었다. 심을 볼 때마다, 간혹 전화할 때마다 미안함이 올라와서 한숨이 나오곤 했다. 친구들을 만난 지도 오래되었다. 일상이 바빠진 것도 있지만 아이 아빠는 내가 밖에서 사람 만나는 걸 싫어했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것도 싫어해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잘 안 하게 되었다.


4학년 2학기였기 때문에 졸업논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2년의 나의 목표목록에는 <온전히 졸업하기>도 있었다.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책과 사례를 찾고 논문을 작성했다. 바쁘고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내가 계획한 계획들을 하나씩 이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날들이었다. 감사하게도 논문이 통과됐다. 마지막 학기만 잘 마무리하면 졸업이었다. 집안에 풍파가 생기면 풍파를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웅크리고 그 순간을 견디며 무사히 지나가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Y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매일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여직원들이 몇 명 있었지만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자 몇 명 언니들도 도시락을 싸 오기 시작했다.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다. 그 시절 알게 된 복 0 언니, 선 0 언니, 휘 0 언니는 아직까지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됐고 나의 친구가 된 사람들이다. 그중에 복 0 언니는 처음 보자마자 낯이 익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외가 쪽 친지 동네인 석골의 동네분이었다. 친정엄마와 복 0 언니 부모님이 한 동내라서 부모님끼리도 사정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어렸을 때 나는 복 0 언니와 어울려 놀기도 했다고 들었다. 어릴 때 만났던 언니라서 낯이 익었던 것이었다.


포장마차 벌금을 모아서 납입하면서 작은언니와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일을 다시 이야기했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엄마의 포장마차는 여타 포장마차에서 팔지 않는 보신탕을 팔면서 손님이 늘어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주변에서 맛있고 저렴한 집으로 소문이 나고 있었다. 엄마의 포장마차 근처에 몇 개의 포장마차가 더 있었다. 특이했던 점은 경찰의 출동시간이다. 어떻게 손님이 들어오고 얼마 안 돼서 바로 경찰관이 출동하게 되었을까? 작은언니와 나는 '설마 누군가 신고를 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우리의 예측이 맞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궁금한걸 참기 어려웠다. 벌금을 내기 위해 모은 돈을 가지고 경찰서를 찾아갔다. 경찰서에 벌금을 납입하면서 정황상 이해가 안 갔던 것에 대한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 졌고 경찰관님께 여쭈었다. 경찰관님은 신고를 받고 출두한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신고, 누가 신고한 것일까? 미성년자였던 손님은 아닌 것으로 추정됐다. 정황이 그랬다. 그들도 당황해했었고 결과가 그렇게 된 걸 미안해했다. 그렇다면 누가 신고한 걸까? 우리 집 주변에 있었던 경쟁업체 포장마차 였을까? 확실한 건 없었다. 그러나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이 출동했다는 것이 맞았고 그건 참으로 서글픈 일이었다.


잘 산다는 건 참 어렵다.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는 것도 어렵다. 주변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어릴 때도 그랬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살면서 벽을 만날 때가 있다. 미로 같은 세상 속에서 길을 찾아 이곳저곳을 마구마구 다닌다. 그러다 벽을 만나면 돌아서 길을 다시 찾는다. 다시 시도하고 다시 시도해도 사방팔방이 온통 벽일 때가 있다. 삽이라도 있으면 땅이라도 파고 그 벽을 피해 가고 싶다. 담쟁이로 변할 수 있는 유연함이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벽을 넘어가고 싶다. 잘 사는 것까지는 답을 찾지 못해도 살아내야 했다.


새해가 되면 늘 한 해의 계획을 노트에 썼다. 다음 장에는 버킷리스트도 작성했다. 한 해를 보내면서 난관이 닥쳐올 때가 많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한 해를 보내면서 체크하다 보면 완료되는 계획 리스트는 반드시 존재했다. 2002년 졸업도 그중 하나였다. 순차적으로 1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 논문, 2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러 나가고 있었다. 방송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2학기 마지막 남은 시험을 위해 책을 펼쳤다. 다행히 집안일들이 쌓여있어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마음의 상처는 그것이 무엇이길래 쉽사리 낫지 않았다. 남편이 내뱉은 말은 순간순간 나를 괴롭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말보다도 더 상처가 된 건 결과적으로 내가 그에게 빌었던 행동이었다. 상처가 아물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더 고름이 채워지고 더욱 그 크기가 자라고 있었다. 남편이 내뱉은 무기가 된 말은 나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내 마음은 나처럼 길치가 되어 오도 가도 못하고 정처 없이 길을 헤맸다. 그러나 밖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나조차도 망각하려는 듯 깊어가는 상처를 꽁꽁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집중했다. 메모가 더 상세해졌고 계획이 구체화됐다. 하루 하루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그러자 고립되지 않고 하루라는 시간의 흐름에 나도 같이 발을 맞추며 흘러갔다. 아들은 잘 크고 있었고 방송대 졸업까지 단 한 번의 시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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