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빚 탈출기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108화

(별별챌린지 3기-22일 차)




나한송 (꽃말: 자존)



빚 탈출기


2002년 6월 월드컵 열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아들의 돌잔치가 있었다. 아들 돌잔치를 위해 예식장 내에 있는 뷔페를 예약했다. 아이를 위해 사진첩을 만들고 미리 사진을 찍었다. 돌 때는 백일 때 사진보다 많이 의젓 해진 아들이 나름대로 포즈를 잡아서 좋은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사진사님이 전문가답게 열성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이 나는 옆에서 아기의 표정을 놓칠세라 연신 셔터를 눌렀다. 덕분에 다양한 표정의 아들을 핸드폰 사진첩에 담을 수 있었다. 얼굴이 똘망 똘망 해진 아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부자가 되는 것 같았다.


돌잔치 날이 되었다. 주말이었고 친지와 친한 친구나 소수 지인만 초대한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남편과 내가 함께 공통으로 했던 첫 행사였다. 결혼식을 못 올렸기 때문에 서로 사돈분들끼리 일면식을 갖은 게 아이 돌잔칫날이 처음이었다. 이전에 혼인신고하기 직전에 남편은 시어머님과 형님을 모셨고, 나는 엄마와 작은언니만 참석한 자리를 만들었다. 딱 한 번의 식사 자리가 가족들 소수가 인사한 유일한 시간이었다. 각자 가족들을 초대했기 때문에 아들의 돌잔치에 남편 가족들과 우리 가족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친구 몇 명도 불렀다. 학교 친구들도 몇 명 와주었다. 심과 심의 남자친구, 부천 동호회 언니들도 와주었다.


식사를 하기 전 돌잔치 행사로 사회자가 흥을 돋아주었다. 돌잔치의 꽃인 돌잡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돌잡이를 위해 나는 미니 소품 장난감을 샀다. 드디어 돌잡이가 진행됐다. 아들이 어떤 걸 잡을지 내가 오히려 떨렸다. 돌잔치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게 돌잡이 행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중했다. 돌잡이가 뭔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기라도 할 것처럼 긴장됐다. 늘 돈에 허덕이는 나는 아들이 돈을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아이 손에 잘 잡히도록 가까운 곳에 놓았다. 아이가 드디어 물건을 잡았다. 아이가 잡은 걸 위로 치켜들었다. 일순간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이가 잡아든 건 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자식으로서 최고 효도인 건강과 수명을 나타내는 실을 잡았는데 그날 내가 살짝~ 실망했다는 게 스스로 부끄럽게 느껴진다.


성대하게 파티를 한건 아니지만 소중한 분들을 초대해서 조촐한 돌잔치를 진행했다. 마이크를 잡고, 아이 아빠와 내가 귀빈들께 감사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아들의 돌잔칫날 아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가족, 친지, 친구들이 모였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친구들도 오랜만에 보게 됐다. 기쁘고 좋은 날이고 감사한 마음이 컸다. 그런데 나는 계속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돌잔치가 끝나고 불편했던 마음을 어떻게든 해결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아이를 맡기고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돈이 모이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급여를 적게 받는 게 아닌데도 300만 원이 모여지지 않았다. 심에게 갚아야 할 돈을 늘 생각했다. 돌잔치가 끝나고 나는 심에게 전화를 걸었다. 돈을 빌린 지 속절없이 몇 년이 지난 후였다. 그동안 심은 나에게 한 번도 돈을 언제 갚을 건지 묻지 않았다. 나는 그게 더 미안했다. 심이 전화를 받았다. "정말 미만 한데, 돈이 좀처럼 모이지가 않아. 100만 원을 간신히 모으면 200만 원짜리 사고가 터져. 계좌 좀 알려줘 형편 되는 대로 보낼게"


심에게 계좌를 받아서 돈을 입금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30만 원, 다음 달은 60만 원, 월급 받은 날 기본적으로 나가는 돈을 계산하고 남는 돈을 바로 보냈다. 돈을 보내고 수첩에 보내는 액수를 기록했다. 돈을 갚아나가기 시작하자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빚 갚는 걸 시작한 후 신기하게도 6개월 만에 빚을 완전히 다 갚게 되었다. 마지막 보내는 날은 은행 이자 정도의 이자를 더해서 보냈다. 그러고 나서 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은 무슨 이자를 보냈냐고 했다. 나는 은행 이자 정도라서 미안하다고 했고, 그 정도는 줘야 내 마음이 편하다는 말도 전했다. 그리고 그제야 너무 고맙고 늦게 줘서 미안했다는 말을 했다.


아버지가 집안에 소지하고 있었던 사냥 총으로 자신을 쏘고, 다치셨던 것이 시작이었다.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당시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에서 직장인 대출을 2천만 원 넘게 받았었다. 처음으로 빚의 굴레에 갇힌 때였다. 연 15프로 이상의 이자는 월 100만 원의 급여도 안 됐던 20살의 직장인에게는 무섭고 버거운 짐이었다. 짐이 준 고단함은 직장을 감옥으로 여기는 착각을 만들어냈다. 그 후 나는 빚을 갚기 위해 최고로 인정받으며 재밌게 직장 생활을 할 때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명퇴 위로금으로도 대출금을 갚는 데는 500만 원이 부족했다. 부족했던 500만 원을 엄마가 준다고 했기에 실행했던 명퇴였다. 돈을 준다던 엄마는 '돈이 없다'는 말 한마디가 끝이었다. 이미 명퇴는 진행됐고 500만 원의 빚이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IMF로 주식이 바닥일 때 우리사주를 200만 원의 헐값에 팔았다. 그런데도 남았던 300만 원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것 때문에 결국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 그 후에도 매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빚을 갚기 위한 돈을 모은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20대 초의 나이에 경험했다. 돈 300만 원을 모으려 할 때마다 시련이 닥쳤다. 공 들여 탑을 만들듯 돈을 벌었지만 때마다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졌다. 손으로 움켜쥐려 할 때마다 돈은 잡히지 않고 물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가면서 사라졌다. 또다시, 그리고 또다시 단단하게 단속을 하며 정성을 다했지만 어느 순간 돈은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곤 했다.


'시작이 반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다. 옛말은 어쩌면 늘 그렇게 잘 맞는 것일까? 빚 갚기를 시작하고 나니 눈 깜짝할 사이에 거짓말처럼 빚을 다 갚았다. 마지막 돈을 입금하고 집에 가서 치킨을 시켜 먹었다. 그날 먹은 치킨은 살면서 내가 가장 맛있게 먹은 치킨이었다. 남편은 내가 친구에게 빚이 있는 걸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치킨은 같이 먹었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축하의 만찬이었다.


역시 치킨은 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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