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집을 나간 그 2

셸 위 댄스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106화

(라라크루 5기 - 3주 차)




단풍나무 (꽃말:사양, 자재, 절제, 염려)



집을 나간 그 2


2002년 겨울이 오고 있었다. 그 시절에 나의 삶은 심해 깊은 곳에서 위험에 웅크리며 지내던 때였다.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한 달을 돈 펑크 없이 무사히 보내는 것이 목표였고 연체자가 안 되는 게 최선인 나날이었다. 내가 서 있는 길은 너무 좁고 높았다. 인생의 길이 외줄 타기를 하듯 위태로운 날들이었다. 발 한 짝 잘못 딛게 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앞만 보고 걸어가야 했다. 무섭다고 멈출 수 없었다. 그저 앞으로 한 발짝씩 내딛고 나아가야 했다. 매달 나가는 지출 금액이 큰 상황에서 또 하나의 과제가 생겼다. 포장마차에서 발생한 벌금을 새롭게 마련해야 했다. 안 그래도 지출이 많아서 더 줄일 것이 없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점심시간에 밥값이라도 아껴야 했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 시작했다.


월초라서 하루 월차를 냈다. 아들이 태어나고 산모수첩에서 아기수첩으로 수첩이 변경되었다. 수첩에는 차례대로 아이의 예방접종일 예정일이 표시되어 있었다. 아들의 예방접종은 매번 보건소에서 맞췄다. 병원을 이용할 경우 돈이 들었지만 보건소는 공짜로 이용할 수 있었다. 예방주사 중에 어떤 주사는 아이 어깨에 상처가 남을 수도 있다고 대부분의 엄마들은 보건소가 아닌 병원에서 맞출 때였다. 그러나 나는 매번 보건소를 이용했다. 최대한 돈을 아껴 써야 했다. 나에게 돈은 자칫 잘못하다가 나를 헤칠 수 있는 너무나도 두렵고 무서운 포악해진 거인이었다.


경찰서에 다녀온 후 2주가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가 한 말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었고, 남편이 속을 썩이고 있다고 친구에게라도 남편 흉을 볼 수도 없었다. 친정집에 그가 한 말을 전달할 수도 없었다. 나에게 치명상을 입힌 그 말 한마디는 그것 자체로 나 자신을 너무 초라하게 만들었다. 내가 남편에게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해버리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화를 내고 있는 그에게 내가 잘못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한 말로 나의 마음이 깊은 슬픔에 빠져서 그에게 무슨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싸움을 할 때 사람들마다 싸움을 하는 유형이 천차만별이다. 그중에 두 가지 상반되는 유형이 있다. 말을 하는 사람 VS 말을 하지 않는 사람. 다툼이 있을 때 말로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설득하거나 해답을 찾아가는 유형은 상대가 입을 닫아버리면 답답하다. 너무 답답해서 어찌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나는 말을 해서 풀어나가야 하는 유형이었고 남편은 말을 안 하는 유형이었다. 그러나 나는 당시에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화가 나서 말이 안 나왔다기보다 할 말이 없었다. 서로가 거의 말을 안 하는 날이 며칠이 지났다.


월차라서 예방접종을 맞히고 집에서 쉬며 저녁밥을 만들었다. 그런데 저녁시간이 되어도 그가 집에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그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지만 전화를 여러 번 하지 않았다. 걱정하는 마음이 한편으로 들기도 했지만 그를 걱정할 만큼 나의 마음 상태가 너그럽지 못했다. 술을 먹고 늦게 오는 건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자정이 넘고 2시가 넘었는데도 그가 집에 오지 않았다. 저녁에 아들을 씻기고 책을 읽어주었다. 어린 아들은 엄마를 보며 방긋방긋 웃음을 지어주었다. 밤이 되어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의 얼굴에 남편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에게 나는 실망했었고 속상했으며 화가 났었다. 엄마가 경찰서에 간 건 부주의함이 불러온 사고였을 뿐이었다. 사고는 예측 불가능하며 당하는 입장에서는 무방비 상태에서 발생되는 피치 못할 상황일 뿐이다. 엄마가 경찰서에 간 것이 엄마가 의도한 것이라면 처벌받는 것도 비난받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그날의 사건은 비난받을 대상이 아니었다. 왜, 이 같은 사고가 나의 기본적인 인권을 짓밟는 발언으로 확대됐을까? 남편이라는 존재가 나의 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슬픈 일이었다. 슬픔보다 더 깊은 마음속 감정은 실망 쪽에 무게가 실렸다. 그는 나와, 엄마에 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비난할 뿐이었다. 경찰서에 간 행위 자체로 우리 가족 모두를 범죄자 취급하는 건 부당했다. 또한 나를 하잘것없는 존재로 추락시키는 건 분명한 잘못이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에게 생각할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새벽이 넘어도 그가 오지 않았다. 다시 걱정되는 마음이 올라왔다. 사고라도 난 건 아닌지? 술 먹고 인사불성 돼서 어디서 큰일이라도 난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되었다. 새벽 2시부터 다시 전화를 계속 걸었다. 그러나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밤을 새워 드문드문 전화를 걸었다. 한번 전화가 연결됐다. 술에 취한 목소리가 전달됐다. 어디냐는 질문에 죽고 싶다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울부짖었다. 내가 우는 게 듣기 싫다는 듯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심하게 받지 않는 전화를 부여잡고 나는 전화기도 그도 놓지 못했다. 신호음이 끝까지 울리고 핸드폰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새벽이 넘어가면서 나는 그에게 사정 조로 말하며 녹음을 했다. "무슨 일 없으면 전화 좀 줘요" 아무 일도 없으면 돌아와 달라고도 했다. 아침이 되었다.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 가방을 챙겼다. 분유를 챙기고, 이유식을 챙기고 아이 여벌옷과 아이 가방 속에 아이 용품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아들을 업고 어린이집에 맡기러 걸어서 어린이집에 갔다.


매일 아침 헤어질 때 눈물바람을 하는 아들이 울었다. 우는 아들을 떼어놓으면서 나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출근을 했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처럼 일을 했다. 하루 종일 전화 업무를 했다. 아웃콜 업무는 자리 이석이 자유롭지 못한 직업이었기 때문에 사적인 전화를 계속할 수도 없었다. 도시락을 싸가지 않았고 밖에 나가서 점심을 먹을 수도 없었다. 점심을 굶고 회사 근처를 배회하며 전화를 여러 번 할 뿐이었다. 낮에는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두, 세 번 더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았다. 퇴근시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집으로 왔다.


집에서 매일 하던 일을 반복했다. 아이 가방을 풀고 정리하고 아이를 먹이고 씻겼다. 그리고 그에게 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저녁에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자꾸 눈물이 나오는데 참으면서 책을 읽어주었다.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고 나를 돌아봤어야 했다. 그에 대한 생각도 깊이 했어야 했다. 그러나 죽고 싶다는 그의 말에 잔뜩 겁을 먹었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갈림길은 나에게 판단할 수 있는 의식을 차단시켰다. 나에게 <생각할 시간>조차 욕심이라고 비웃듯 불안함이 나를 잡아먹었다.


그는 새벽 늦은 시간에야 집에 들어왔다. 두 번째로 그가 집을 나갔다 들어온 날이었다. 나는 그에게 경찰서에 가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미 새벽부터 음성 메시지에 나는 크나큰 죄를 지은 죄인으로 여러 차례 용서를 빈 후였다. 사과하면서 마음이 수도 없이 무너졌지만 그에게 미안하다고 거듭 말했다. 의식이 확연하게 둘로 나누어졌다. 그가 살아 돌아온 것에 안도하는 마음과 끊임없이 올라오는 나에 대한 수치심이 내 뒤통수를 세게 때리며 끊임없이 공격했다. 실제로 맞은 것처럼 타격감이 느껴지며 어지러움을 느꼈다. 심한 두통이 느껴져서 누웠다.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자는 시늉을 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베개를 온통 적시며 밤이 깊어갔다.


두 번째로 집을 나갔던 그는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도 당당하게 사과를 받아내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나의 가슴 한편엔 고름 덩어리가 깃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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