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말이 무기가 될 때 1
셸 위 댄스 -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105화
(별별챌린지 3기 - 20일 차)
무스카리 (꽃말: 실망, 실의)
말이 무기가 될 때 1
경찰서에서 일이 있기 전 나의 회사 생활에는 변화가 있었다. L 카드사에서는 하루 종일 화장실 가는 것도 터치를 받았었다. 다행히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L사를 오래 다니진 않았다. 스파르타식으로 일을 잘 배우고 소개를 받고 Y 카드사로 이직했다. L 카드사에서 배운 대로 Y 카드사에서 일했다. L 카드사와는 달리 화장실도 편하게 가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여유 있었다. L카드사에서 제대로 배워서 그런지 이직한 회사에서 일하기는 수월했다. 그리고 더 좋은 건 급여도 Y 카드사가 많았다. 일을 잘 배워서 성과가 더 좋은 것도 있었다. Y카드사는 근로소득이 아니라 사업소득으로 된 세금 방식이었다. 급여체계가 달라서 4대 보험은 적용받지 못했지만 성과급이 높은 편이라서 결과적으로 많은 급여를 받게 됐다.
경찰서에 연행되다니, 살면서 그런 일을 겪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엄마도 살면서 그런 일은 처음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엄마는 아직 몸이 불편한 환자였다. 얼굴에 환색이 가득한 엄마가 경찰서에서 조서를 받아야 한다는 게 참을 수 없이 참담하게 느껴졌다. 경찰관님들께 선처를 구한 건 다름이 아니었다. 엄마 대신, 언니랑 내가 조서에 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찰은 원칙을 내세웠다. 한참을 더 빌고 사정을 이야기하고 엄마 상태를 보며 경찰분들이 그나마 선처를 해주셨다. 최대한 빠르게 조서를 꾸미고 엄마를 보내주신다고 했다.
경찰서에서 아주 오랜 시간 머무르진 않았다. 다만 포장마차 영업정지와 벌금이 떨어질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 빠르게 조서를 꾸며주셨고 최대한 빨리 귀가 조치를 해주려고 했다. 경찰서에서 300만 원의 벌금을 책정해 주었다. 선처를 해주신 건지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벌금은 우리에게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우리에겐 태산같이 큰돈이었다. 포장마차 개업을 200만 원 정도에 시작했는데 벌금이 300만 원이라니 너무나도 가혹했다. 경찰서에 손이 발이 되게 빌고 사정 이야기를 했다. 경찰분들이 다시 선처를 해주었고 최종 200만 원의 벌금을 책정했다. 더 이상의 선처가 없다는 못 박음을 하며 영수증을 뽑아주었다. 영업정지가 되어 포장마차도 당분간 닫아야 했다. 산다는 게 참 쉽지 않고 험난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아들을 업고 경찰서를 나와서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갔다. 엄마는 경찰서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것인지 기진맥진해진 상태였다. 포장마차 정리는 작은언니가 맡아서 했다. 나는 아이 분유를 챙겨야 해서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남편이 미리 와있었는데 밥은 먹었는지 걱정이 돼서 물어봤다. 그런데 얼굴 표정이 계속 안 좋았다. 나는 벌금 200만 원을 또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머릿속이 어찔한 상태였다. 아픈 엄마, 벌금, 겹겹이 쌓이는 걱정으로 그의 기분을 계속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아이도 배고파서 칭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먼저 먹이고 쉬게 해 주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매주 다섯 권씩 아동책을 주문해 놓은 상태였다. 한 달에 2만 원만 내면 매주 다섯 권의 책이 집으로 오는 시스템이었다. 워킹맘이 되기 전부터 아이에게 매주 오는 책을 읽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도 아이에게 해주고 싶었다. 그날 책을 읽어주는데 목소리가 평소처럼 명랑할 수 없었다. 평소에는 연기를 하듯 목소리에 변화를 주면서 책을 읽어주었지만 그날은 연기를 거의 하지 못하고 덤덤하게 읽어주었다. 아들은 이내 잠이 들었고 나도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이 되고 그다음 날이 돼도 남편은 말이 별로 없었다. 가끔 대화가 오고 가도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통에 나도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경찰서에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술을 잔뜩 먹고 집에 들어왔다. 술을 먹고 들어와서도 나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나는 인사불성인 남편에게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신 건지 핀잔하듯 말했다. 그런 그가 나에게 말로 수십 개의 칼을 온몸에 던지듯 말했다. "내가 왜 너 까짓 걸 만나서 그런 꼴까지 겪어야 해?" 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슨 상황인지 정리가 안 됐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화나게 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내가 재차 물으며 확인했다.
그가 나에게 말했다. "내가 왜 너 까짓것 때문에 경찰서까지 가고 그 더러운 꼴을 당해야 해?" 나는 이후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경찰서에 와서 머물렀던 시간은 10분 정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가 나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내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이 창피하고 비참했다. 2002년 가을이 깊어지고 있었다. 나는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절실하게 느꼈다. 나무들 마다 마른 잎들이 수명을 다하듯 떨어지는 쓸쓸한 가을이었다. 미리 찾아온 칼날처럼 매서워지는 날씨 탓인지 그의 말 때문인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남편에게 기대했던 한 줌의 염원, 한 줌의 희망이 그 말 한마디로 소멸되고 있었다. 2002년 늦가을, 말이 무기가 되었던 그날은 춥고 서글프고 깊은 슬픔이 깃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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