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버려진 시어머니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114화

라라크루 5기 -4주 차




단정화 (꽃말: 당신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버려진 시어머니


2003년 5월 일주일 동안 퇴근한 후 저녁밥 짓고 아들 챙기고 새벽까지 매일 이삿짐을 정돈하느라 정신없이 지냈다. 그런데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남편이 이상한 말을 했다. 시어머니가 부천 심곡동에 계시니 같이 길을 나서야 한다고 했다. 남편이 자신의 집안일에 대한 변화를 그날 당일 안 건지 미리 안 건지 알 수 없다. 나에게 전달한 것이 그저 갑작스러울 뿐이었다. 내가 집에 온건 7시쯤이고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들어온 시간은 저녁 8시쯤으로 저녁밥을 먹어야 하는데 저녁도 먹기 전에 집을 나섰다.


'시어머니가 쫓겨났다? 버려졌다?' 자세한 사항은 가보고 나서 이야기하자고 해서 차에 서둘러 탔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남편은 나에게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심곡동 주소를 그가 어떻게 안 건지 나는 알지 못하고 그가 데리고 간 곳에 도착했다. 단독 건물에 세입자들과 함께 사는 다가구 건물이었다. 이동하는데 시간이 더 지나서 이미 어둠이 가득했다. 좁은 대문을 지나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굳게 닫혀있는 반지하 방앞에서 남편이 문을 두드렸다. 그 안으로 남편이 들어갔다. 그곳에 들어가니 시어머니가 혼자 계셨다. 기다란 형태의 형광등이 수명이 다되어가는지 시야가 환하지 않고 침침했다.


'시어머니가 왜 혼자 그곳에 계셨던 걸까? 이사를 온 걸까? 혼자 독립한 걸까?'


그런데 이상했다. 이사를 왔는데 가구 하나, 이불 한 채 없이 살림도 하나 없이 가방 보따리 하나가 전부였다. 가스레인지조차 연결해놓지 않았다.




의문점이 너무 많이 생겼다. 집안을 둘러보니 봄인데도 집이 냉랭했다. 집안에 온기가 하나도 없었다. 방안에는 살림살이는 아무것도 없이 시어머니만 덩그러니 있었다. TV 조차 없어서 집안은 적막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안보다 오히려 밖의 소음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아무 말도 없는 시어머니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어리둥절했고 궁금한 게 많았지만 시어머니가 계신 곳에서 이야기 나누기가 어려워 밖으로 나왔다. 남편의 형수와 형이 어머니를 내쫓은 건지 물었다. 그는 긍정의 말도 부정의 말도 하지 않았다. 방으로 다시 들어가서 시어머니께 우선 우리는 집에 가서 이불이라도 가져오겠다고 말하고 그와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면서 자초지종을 조금 더 들을 수 있었다.


남편과 형이 결혼 전에 둘이 함께 돈을 모아 시어머님 명의로 빌라 집을 샀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형이 형수와 결혼했다. 내가 임신을 해서 시댁에 잠시 머물렀고 나는 바로 분가했다. 지난해에는 형수가 딸을 낳았다. 내가 분가한 지 2년이 지났을 뿐이었다. 남편은 시어머니를 형수가 모시기 때문에 총각 때 모은 돈을 한 푼도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도저히 상황정리가 안 됐다. 어떻게 집 명의가 시어머니로 되어 있는데 시어머니를 쫓아낸 건지 물어봤다. 우리가 분가한 사이 형수가 집을 팔고 전셋집으로 바꾸었고, 전세계약자는 형수로 바뀌었다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형이 일식 요리사라서 벌이가 좋은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형이 일을 꾸준히 하지 않아서 생활비 때문에 집을 팔았다고 했다.


나도 바보는 아니었다. 형수의 의도를 생각했다. 그녀는 한 푼도 보태주지 않은 동생네에게 시어머니를 모시라고 본인 입으로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도 시시비비를 따졌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방 두 칸으로 이사를 간 것이 절호의 찬스였을 것이다. 그녀의 계획대로 놀아난다는 생각이 들자 참을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왔다. 집안 행사 때 몇 번 형수를 봐도 나는 그녀와 친해질 수 없었다. 내가 노력해 보려고 해도 늘 그녀에게서는 냉기가 돌았다. 2년 전 내가 임신해서 그 집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스산함이 시간이 지나도 계속 지속됐었다.


나는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형수의 의도대로 된다는 게 감정적으로 싫은 마음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가 기거할 수 있는 살림을 몇 가지 챙기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나에게 사정했다. 시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오자는 것이었다. 나도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는 그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한 곳에서 거부감이 일었다. 선뜻 내가 꼭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내기에는 남편이 나에게 그동안 보여준 우리 친정집에 대한 냉대와 멸시, 그로 인한 상처가 너무 컸다. 내가 쉽게 그의 뜻을 받아들여주지 않자 그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물까지 흘렸다. 단 한 번도 못 본 절박한 모습이었다. 부탁한다며 시어머니를 모셔오자고 했다.


절박함에 눈물을 흘리는 남편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었지만 아직 냉기가 있는 계절이었다. 가스레인지도 연결 안 된 냉골에 시어머니를 그렇게 방치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밤늦은 시간에 시어머니가 계신 심곡동 집으로 갔다. 가는 차 안에서 그에게 몇 가지 확답을 받았다. 다시는 집을 나가지 말리는 약속을 받았다. 술 먹고 새벽 2시 이후에 들어오면 그건 외박이니, 그것도 마찬가지라고 규칙으로 정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는 그와 살 수 없다는 말도 했다. 그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했다. 다시 시어머님이 계신 불빛이 어두운 반지하 셋방에 들어갔다. 시어머니께 우리 집으로 가자고 하고 시어머님을 모시고 이사한 창조 빌라에 도착했다.


작은방 정리를 끝낸 지 단 하루 만이었다. 작은방을 아들방으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그 방은 시어머니의 방이 되었다. 이후 나는 형수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녀가 이해되지 않았다. 내 남편도 벌이가 좋거나 나와 사는 동안 평균적으로 나보다 많이 벌지 않았다. 그래도 펑크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친정집에서 발생되는 일(사건, 사고)들도 적지 않았다. 남편과 나, 총각 처녀 때 둘 다 모은 돈 하나도 없이 시작했지만 그럭저럭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시어머니를 버리는> 나쁜 행동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왔기 때문에 그 이후 나는 형의 집에 갈 일이 없어졌다.


한 줄 요약: 계획을 세우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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