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시어머니는 처음이라
셸 위 댄스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114화
별별챌린지 3기 - 27일 차
겨우살이 (꽃말: 강한 인내심)
시어머니는 처음이라
2003년 봄, 10평 남짓 한 방 두 칸짜리 빌라 집에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이사 오자마자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됐다. 시어머님 짐은 옷 몇 가지가 전부였다. 아무런 대책 없이 시어머님과 살게 되었으니 부족한 게 많았다. 형수와 나는 서로 어떤 전화 통화도 하지 않았다. 남편을 통해 전달받은 내용이 전부였다. 내가 형수와 통화하는 걸 남편이 원하지도 않았다. 나도 그녀와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형수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다만 남편의 형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일을 그렇게 방치한 건 이해되지 않았다. 그 또한 남편에게 따져 묻지 않았다. 남편이 형과 둘이 이야기해 봤을 것이고 나는 그냥 그들의 처분에 따랐다.
시어머님과 한집에서 같이 산다는 건 좀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간단하게 사람 한 명 더 들이는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어른과 함께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롭게 필요한 것도 많았다. 주말마다 여러 번 필요한 걸 마련하러 다녔다. 필요한 물품들을 메모하고 사야 할 것과 친정집에서 공수받아올 것을 구분했다. 제일 먼저 옷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아 서랍장을 샀다. 그릇도 좀 더 필요해져서 엄마와 언니 집에서 가지고 왔다. 가끔만 봤던 시어머님을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등치가 큰 편인 걸 알게 됐다. 워낙 당신 방에서 잘 안 나오셨고 함께 밥 먹고 당신 방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에 대화 나눈 적이 별로 없었던 탓이었다.
시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고 나서 많은 것들이 혼란스러웠다. 처음엔 음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보통 어른들은 며느리나 딸이 음식 하는 걸 마음에 안 들어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우리 엄마는 남이 하는 음식을 별로 안 좋아했기 때문에 시어머님과 함께 살게 되니 모든 걸 협의해야 할 것 같았다. 그전에 형수님과 살 때 시어머님이 음식 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평일날은 회사에 갔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저녁 7시 반이 넘기 때문에 시어머님 식사를 차려드리는 것도 걱정이었다. 시어머님이 음식을 하시면 당신의 식사는 챙겨 드실 것 같아서 음식에 대해 여쭈었다.
시어머님은 당신이 요리며 밥을 해서 드실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에 대해 설명드리고 거실에 있는 양념 위치를 말씀드리고 음식을 하시도록 했다. 주말 동안은 내가 음식을 차려드렸고 평일날은 어머님께서 스스로 식사를 차려 드시라고 하고 출근했다가 퇴근했다. 퇴근길에 우선 아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와서 집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아들 물품을 정리하고 급하게 밥을 확인했다. 밥이 되어있는데 밥 상태가 너무 질어 보였다. 가스레인지 앞도 정신없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확인했다. 김치를 물에 담가 놓으신 건가? 싶은 생각이 스쳤다. 어머님께 무엇을 해 드신 건지 물어봤더니 김치찌개를 만들어서 식사하셨다고 했다. 시어머님이 끓여 놓은(?) 걸 보고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좀 이상해서 국자로 국을 확인해 보았다. 무언가 이상하고 싸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평소에 보고 먹던 김치찌개의 모습이 아니었다. 냄비 안에는 맑게 끓인 건지 김치를 물에 담가 놓은 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김칫국 같은 게 담겨있었다. 재료는 오로지 김치와 물만 넣은 듯 보였다. 맛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선 나는 저녁밥을 다시 짓고 찌개를 만들고 반찬을 만들었다. 남편이 퇴근하면 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준비하는 게 시급했다. 어머님께 저녁은 드셨는지 여쭈었더니 미리 드셨다고 했다. 다른 반찬은 없이 끓여놓은 것과 드신 거냐고 했더니 당신이 만든 찌개에 드셨다고 했다. 냉장고에 다른 재료들도 있었는데 음식을 만들어 드신 것 같지 않았다. 음식을 하면서 주방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김치찌개라고 끓여놓은 냄비가 타고 넘쳤는지 냄비며 가스레인지며 주변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음식을 한 건지 어린아이가 소꿉장난을 한 건지 분간이 안 되는 정도였다.
남편이 퇴근했고 나는 저녁 만드는데 정신이 없었다. 남편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시어머님이 끓여놓은 김치찌개 맛을 봐달라고 했다. 남편이 맛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시어머님이 만든 거라는 걸 아는 것 같았다. 그전에 그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형수님이 해준 밥을 먹으며 형수님은 음식솜씨가 좋아서 너무 좋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먹었던 형수님 음식 솜씨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내가 해주는 음식을 타박 없이 맛있다며 잘 먹었던 것이 나를 기분 좋게 하거나 빈말이 아닌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남편은 그저 시어머님이 음식 솜씨가 없다고만 말했다. 서로 맞춰서 산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됐다.
당장 그날 저녁부터 찌개나 국을 끓일 때 양을 늘려서 만들기 시작했다. 시어머님이 평일 낮에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반찬을 신경 써서 만들어 놔야 했다. 저녁 반찬을 다 만들고 상을 차리면서 나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님이 식사를 하시고 설거지를 해놓은 것 같은데 그릇이 제대로 닦인 게 없었다. 다 된 밥을 푸려다가 말고 그릇을 전부 개수대에 넣고 설거지를 처음부터 다시 했다. 설거지를 하는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은 전에 없었던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었다. 수저통까지 전부 다시 닦으며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시어머님께 주방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을 차려야 했고 늦게 들어오더라도 저녁에 집에서 밥을 짓어서 먹고 다녔다. 남편과 함께 살게 되면서 그는 밥에 집착했다. 저녁은 물론 아침밥도 꼭 먹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신혼 초부터 늘 아침밥도 해주는 게 습관이 돼있었다. 반찬은 늘 새롭게 그때그때 만들어서 먹었다. 그러나 어머님과 살면서 그렇게 만들 수 없게 됐다. 시어머님이 드실 반찬을 미리 만들어 놔야 했다. 그런데 퇴근해서 살펴보면 음식을 덜어놓고 드시는 게 아닌지 반찬 그릇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심지어는 밥알이 빠져있거나 하얀 음식에 고춧가루가 섞인 걸 보게 됐다. 정황상 시어머님은 반찬을 덜지 않고 그냥 드신 것 같았다. 59세 시어머님과 살게 되면서 25살인 며느리가 일일이 그런 걸 가르쳐 드려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저녁을 다 먹고 남편과 밤에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설거지와 반찬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봤다. 남편은 내가 편한 대로 하라고 했다. 나는 편할 수 없었다. 상황이 모두 너무 난감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아무 생각을 안 할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매일이 바쁜 일상이었다. 일을 더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좀 더 고민해 보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날도 퇴근해서 모든 그릇을 새로 닦았다. 며칠을 집에 와서 모든 그릇을 다시 닦았다. 일주일정도가 지나서 남편에게 어머님께 설거지를 못 맡길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이 시어머님께 나더러 이야기하라고 해서 나는 시어머님께 두 가지를 당부드렸다. 설거지를 하지 말고 그대로 두시면 내가 퇴근해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반찬을 반찬통에서 덜어서 접시에 놓고 드시라고 말씀드렸다. 젊디 젊은 며느리가 나이 든 시어머님께 잔소리라니 스스로 너무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최대한 예의를 차려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드렸다.
그다음 날부터 퇴근하고 나서 집에 들어오면 설거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시어머님은 하루에 식사를 세 번만 하시는 것 같지 않았다. 네 번에서 다섯 번의 식사를 하시는 건지 모든 그릇이 다 나와있었다. 시어머니와 사는 건 다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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