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시어머님과 함께 산다는 건
셸 위 댄스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116화
별별챌린지 3기 - 28일
배고니아 (꽃말: 조심스러움, 부조화, 친절, 정중)
시어머님과 함께 산다는 건
2003년 시어머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일이 많아졌다. 퇴근해서 아직 어린 아들을 챙기는 것으로도 이미 바쁜 일상이었다. 이사 오면서 아들도 분유를 떼고 밥을 먹이고 있었다. 매일 아침 눈도 못 뜬 아들 옷을 입히고 여벌옷을 챙겨서 어린이집에 맡겼다. 아침을 집에서 먹여서 보낼 수는 없었다. 아무리 아이를 깨우려고 해도 깨지 않았다. 어린이집은 점심 한 끼와 오후 간식을 줄 뿐이었다. 남편과 시어머니, 나는 아침을 챙겨 먹으면서 어린 아들 아침을 거르게 할 수 없었다. 아들은 무엇이든 내가 해주는 밥을 잘 먹었다.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아이 밥을 챙겨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반찬과 함께 밥을 싸서 보내기에는 어린이집 선생님께 죄송했다. 간단하게 주먹밥을 만들어서 보내주면 주는 선생님께서도 편하고 먹는 아이도 편할 것 같았다. 매일매일 주먹밥 속에 다른 재료를 넣으며 아침에 주먹밥을 만들었다.
나의 하루가 더 바빠졌다. 기상시간이 좀 더 빨라졌고 취침시간이 좀 더 늦어졌다. 아침에 아들 도시락을 더 챙겼어야 했고 저녁에는 설거지와 청소 빨래거리가 늘었다. 저녁을 먹는 시간도 조금 늦어졌다. 매일 퇴근하고 돌아오면 개수대가 가득 차 있었다. 시어머님께 식사를 몇 번 하는지 여쭙고 싶었지만 여쭙는 것 자체가 버릇없는 것 같아서 여쭐 수가 없었다. 밥을 넉넉히 해 놓는다고 생각했는데 저녁이 되면 그 밥을 다 드신 것을 보면 밥 양이 많거나 끼니를 여러 번 드시는 건 맞는 것 같았다. 평소에도 식사하는 걸 보면 밥보다는 상대적으로 반찬을 적게 드시는 것 같아 보였다. 집안에 시어른을 모시고 살게 된 거라서 작은 것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나름대로 고민이 되곤 했다.
내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시어머님을 더 챙겨야겠다고 생각한 건 남편이 조금 달라진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초창기라 그런 건지 외박이 거의 없어졌다. 다행히 당신 엄마의 눈치를 보는 건지 내 눈치를 보는 건지 예전만큼 나를 힘들게 하진 않았다. 시어머님과 앞으로 맞춰 나가야 할 일이 많았지만 남편이 변한 것이 시어머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어머님과 함께 사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워낙 말이 없으신 분이라서 나와 둘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나쁘지 않다고 해서 좋은 점이 많다는 걸 이미 하는 건 아니다. 부부끼리 살 때와 시어머님과 함께 산다는 건 사소한 것부터 차이가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친정집에서 자랄 때 닭을 먹으면 닭 목을 먹었었다. 치킨뿐 아니라 닭볶음탕을 먹어도 닭 목을 가장 먼저 먹었다. 어린 나에겐 닭목이 가장 맛있는 부위였다. 닭 목을 한 마디씩 모조리 살을 발라 먹으려면 꽤 시간이 걸렸다. 식구가 많았던 우리 집에서 내가 닭 목을 하나 먹고 나면 닭이 전부 없어졌었다. 그걸 조금 더 자라서 파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닭목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닭목에 대한 우선순위를 내려놨다. 닭목은 남으면 먹는 후순위가 되었다. 그러나 닭 목을 좋아하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고 늘 남아있는 천대받는 부위였다. 이후 닭을 먹을 때 더 많은 닭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닭 부위 중에서 나의 차지가 되는 건 대부분 가슴살이었다. 다리는 아버지나 오빠 몫이었고 날개는 엄마 몫이었다.
남편과 둘이 살면서 가끔 치킨을 시켜 먹었다. 그때 닭다리와 날개를 먹게 되었다. 닭 가슴살과는 달리 부드럽고 맛있었다. 왜 엄마나, 아빠가 닭다리와 날개를 드셨는지 알 것 같았다. 평일날 시어머님은 우리가 퇴근하기 전에 식사를 마쳤기 때문에 주말에만 함께 식사했다. 시어머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좀 더 자주 치킨을 시켜 먹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치킨을 시켰다. 치킨이 오면 당연한 듯 시어머님과 남편에게 닭다리를 하나씩 주었다. 그리고 나는 가슴살 위주로 먹게 되었다. 딱히 닭다리가 너무 먹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가족들을 위해 양보하고 우선 챙기는 게 당연한 것이 되어갔다.
한 달 정도 시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매일이 너무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시어머님이 계신데 남편에게 집안일을 같이 하자고 말하기도 면구스러웠다. 남편과 상의하면 남편은 매번 나더러 알아서 하라고 했다.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방법을 하나 생각했다. 시어머님 전용 그릇을 만들어 드리면 적어도 설거지가 쌓일 것 같지는 않았다. 반복해서 식사를 하시더라도 시어머님 그릇뿐이니 다른 그릇과 섞일 일도 없었다. 시어머님이 혼자 계시는 평일 낮 동안 사용하는 그릇만 스스로 설거지해서 드시기만 해도 집안일이 수월해질 것 같았다. 남편에게 그 방법을 먼저 상의했더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 후 시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시어머님은 늘 그렇듯이 싫은 내색도 없이 알겠다고 하셨다. 시어머님은 별말 없이 수긍하셨고 그 후로 그렇게 해주셨다.
시어머님 전용 그릇을 만들어드리고 나자 집안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저녁에 퇴근해서 설거지할 때 시어머님 전용 그릇을 한 번만 더 닦아놓으면 됐다. 퇴근해서 살펴보면 그릇이 늘 제대로 설거지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닦아놓았다. 설거지만 많이 쌓여 있지 않아도 한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시어머님이 무엇을 잘 드시는지 확인하고 별도로 여쭤보면서 시어머님이 잘 드시는 음식을 만들어 놓거나 반찬들을 챙길 여유가 생겼다. 시어머님은 나를 딱히 불편해하지 않아셨고 나도 나름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차츰 일상이 되어가던 어느 날 퇴근해서 집에 도착했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아들을 업고 집에 들어가려고 문을 연 순간 집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로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윽~~~~~~~~ 무슨, 냄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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