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이면 전셋집이 만기였다. 2월부터 주말이나 주중에 짬을 내서 집을 보러 다녔다. 내가 이사 가고 싶은 집의 조건은 3가지였다. 남향, 전세자금 대출 가능할 것, 계산해 놓은 돈에 맞을 것. 시간을 내서 집을 보러 다녀봤지만 조건에 맞는 집이 많지 않았다. 남향집은 고사하고 전셋집 자체가 많지 않았다. 이후에 인근 부동산 두 곳을 더 찾아갔다. 원하는 조건을 말씀드리고 나왔다. 부동산에서 연락이 오면 집을 보러 다녔다. 가진 돈이 워낙 적어서 남향집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집 보러 다닐 때 아들을 포대기를 둘러업고 다녔다. 남편은 나보다 늦게 끝나서 주로 혼자 아이를 업고 집을 보러 다녔다.
며칠이 지나고 귀한 빌라 전셋집을 한 곳 보게 되었다. 아이를 업고 4층까지 올라가야 했지만 처음 본 빌라 집이었다. 내가 가진 돈이 적어서 빌라 집은 거의 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 집은 방이 두 개였다. 작은방이 아주 작긴 했지만 안방, 화장실, 거실, 작은방이 있는 집이었다. 바로 집 앞이 경인고속도로라서 시끄러울 것 같았다. 그러나 다가구 집이 아닌 다세대 빌라 집이었고 안방 창문이 남으로 있는 반쪽짜리지만 남향집이었다. 빌라명이 창조 빌라인데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아들에게 방을 만들어준다면 그 또한 좋을 것 같았다. 집이 열 평 정도 되는 평수였지만 기존 살던 집에 비하면 대궐처럼 느껴졌다. 주방 수돗물을 틀어보고 화장실 물도 내려보고 보일러 연식도 확인했다. 상세하게 따져볼 것들이 많아서 부동산 사장님께 다시 들르겠다고 말씀드렸다. 집에 와서 연신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통장들도 확인하고 대출잔고와 잔금등을 기록하고 돈을 맞추어보았다. 빠듯하지만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면 이사를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빌라 입구 앞이 고속도로인 게 다소 신경 쓰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방음막 장치가 꽤 높이까지 되어있긴 했다. 안방 창문이 빌라입구와 반대 방향이라서 안방은 먼지가 많이 들어올 것 같지는 않았다. 거실 창문이 작고 화장실은 창문이 없었다. 기존집이 전세자금 1500만 원이라서 70% 대출을 받았었다. 빌라집은 2500만 원이라서 내 돈이 300만 원과 이사비용 등 총 500만 원이 있으면 이사가 가능했다. 2년이란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는데 모은 돈이 미약했다. 자금계획을 더 잘 짜고 돈을 더 모으기 위한 계획도 추가했다.
전셋집이 귀해서 집을 여러 개 볼 수 없었다. 워낙 가진돈도 많지 않으니 돈에 맞추어 집을 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집도 조금만 더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월셋집은 많지만 전셋집은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월셋집을 구하게 되면 나가는 돈이 너무 많게 되니 고려 사항에서 뺐다. 선택의 폭이 적어졌다. 남편에게 시간을 물어 마지막으로 집을 같이 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며칠이 지나서 같이 집을 봤다. 여러 개의 집을 본 게 아니라서 현실감각이 없는 남편이 딱히 그 집을 마음에 들어 한 건 아니었다. 나는 다른 집들 본 것과 비교해서 제일 좋은 집이었다는 설명을 해줬다.
남편과 협의를 하고 가계약금을 내고 계약을 진행했다. 계약서를 쓰는 날짜를 잡았다. 이것저것 알아보려면 전세 계약자를 내가 하는 게 편했다. 계약자는 나로하고 다음 진행사항을 메모했다. 지난번처럼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면 미리 서둘러서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최소 한 달 전에는 은행에 전세자금 신청서를 제출해야 했다. 계약을 하고 나서 다시 필요한 자금들을 적고 그만큼의 돈이 있는지 체크했다. 집안 살림 중 세탁기는 반드시 필요할 것 같아서 새로 장만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이사가 한 달 조금 더 남았을 때 은행에 전세자금 신청 접수를 했다. 그리고 엄마와 언니들에게 곧 이사할 거라는 계획을 말했다.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이사할 때 살림을 선물해 주기로 했다. 빠듯한 형편에 언니들이 선물을 해준다고 하니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고마운 마음이 컸다. 필요한 걸 말하라고 해서 청소기와 가스레인지를 받기로 했다. 언니들도 형편이 좋은 게 아니었는데 이사 간다는 동생에게 집에 있는 살림도 이것저것 챙겨주기로 했다. 이삿날이 가까워 오자 엄마도 집에 있는 새 믹서기와 냄비와 프라이팬 등 그릇을 챙겨주었다.
이사가 결정되자 한 달이 빠르게 지나갔고 이삿날이 되었다. 이사 비용이 비싸서 이곳저곳 견적을 내봤는데 모두 비용이 꽤 나와서 이사 비용 정산을 하면서 놀라웠다. 처음 집을 얻어 나올 때는 이삿짐이 없어서 봇짐만 들고 집을 나왔다. 그런데 단칸방에 살았어도 살림이 2년 만에 꽤 늘어있었다. 장롱이 있으니 이사센터 없이 이사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여러 업체 중 저렴한 곳으로 계약해서 다행이었다. 한쪽 집에 사다리가 필요해서 더 비용이 나간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다. 이삿짐분들이 오셔서 이사가 진행됐다. 이삿날도 챙길게 많았다. 기존 집에서 짐을 우선 실었다. 그때 부동산에 가서 기존 집에 대해 잔금 정산을 했다. 전세자금 대출이 있는 기존 대금을 갚고 잔액이 남았다.
새로 이사할 집에 짐을 내리기 전에 이사 갈 곳 근처 부동산에 다시 갔다. 기존 전세자금 대출이 변제가 되는 것을 확인하고 새로운 전세자금 대출이 선취수수료 등이 빠지고 남은 돈이 계좌에 나와 있었다. 나머지 30%에 대해 잔금을 치르며 계산했다. 계약금 10%로는 미리 납입했으므로 20%와 잔금을 계산하고 모자란 돈을 맞춰서 납부했다. 영수증을 받아 들고 부동산 수수료 등 보내드릴 부분을 그 자리에서 정산했다. 그리고 이삿짐이 내려오고 있는 집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이삿짐을 옮기는 이사센터분들을 위해 음료수를 사드리고 식사를 시켜드렸다. 나와 남편도 한편에서 간단하게 짜장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이사를 하는 도중에도 챙겨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가스도 연결하러 기사님이 방문했고, 미리 신청했던 TV 연결하는 기사님도 집으로 오셨다. 전화와 인터넷 기사님도 미리 신청해 놔서 오셨고 연결해 주시고 가셨다. 살림이 있는 상태에서 이사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미리 체크해 놔서 다행이었다. 처음으로 하는 이사라서 하나하나 체크하며 진행하는데도 정신이 없었다. 오후가 되니 이삿짐을 다 옮겨놓고 이사센터에서 마무리하고 정산을 해달라고 하셨다. 이사 비용까지 보내드리고 나자 돈이 바닥이 나있었다. 밤이 돼서 가스도 틀어보고 물도 다시 틀어봤다. 정리할게 많았지만 안방에 남쪽 창을 보며 마음마저 뽀송해지는 기분이었다.
일주일 정도 매일 퇴근해서 이삿짐을 정리했다. 청소하면서 정리하는데 생각보다도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그래도 모든 살림들이 내 것이라는 게 신나고 기뻤다. 정신없이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오히려 정리가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요령이 생겨서 한 곳씩 나눠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다시 정리를 시작했고 첫 곳은 화장실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주방 겸 거실을 정리했다. 안방에 가장 많은 짐이 있었지만 씻고 출근하고 밥 해 먹는 게 더 우선이었다. 그리고 안방을 정리했다. 착착 정리가 진행되자 공간이 계속 넓어졌다. 이삿짐이 가득일 때는 발 딛일 틈이 없어 집이 답답해 보였는데 제법 모양을 잡고 있었다. 작은방 정리까지 다 끝내자 일주일이 꼬박 걸렸다.
이사한 후 일주일이 지나고 정리가 끝나자마자 집에 날벼락같은 일이 벌어졌다. 시어머님을 남편의 형과 형수가 실질적으로 집에서 쫓아낸 사건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