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시어머님 환갑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119화

라라크루 5주 -과제 1




아마꽃 (꽃말: 책임)


시어머님 환갑


2003년 시어머님과 함께 지낸 지 반년이 지날 때쯤 시어머님 나이가 만으로 60세가 되는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환갑, 20년 전에도 칠순잔치는 몰라도 환갑잔치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시어머님은 아직 건강하시고, 잔치를 생각하기에는 초대할 가족분들도 많지 않았다. 시부모님 가족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시어머님은 형제자매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아버지는 둘째 아들인 남편이 태어나고 100일도 안 돼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시아버지의 형제는 오 형제였고 시아버님만 일찍 돌아가셨고 동생분들 네 분이 모두 건재하게 살고 계셔서 명절에 찾아뵙곤 했다.


남편과 상의하면서 아주버님께도 여쭈었다. 시어머님이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집안 행사도 내 몫이 되었다. 아주버님은 시어머님의 환갑 생신에 크게 관여하지 않으셨다. 시아주버님 가정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어서 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 집안일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으셨을 것이다. 아주버님은 그즈음 아내가 집을 나간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소식을 남편을 통해서 들은 게 전부였다. 시어머님이 우리 집에 온 지 불과 몇 달 만에 그녀가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고 했다.


시어머님 명의의 집을 매매하고 본인 명의로 전세 계약을 했던 아주버님의 아내였던 그녀는 그때 이미 아주버님과 같이 살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시어머님을 버리고 내가 시어머님을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오면서 나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나는 글을 쓰며 그녀를 '형님'이라고 명명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결혼생활을 유지할 당시에 그녀는 나에게 '형님'이었으므로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녀가 시어머님을 버린 이후부터 나는 그녀를 남편의 '형수'로 부르거나 시아주버님의 '아내'로 명명할 뿐이었다.

그녀에 대해 가끔 생각해 봤다. 결혼 이후 남편의 벌이도 시원치 않고 시어머님은 아무것도 모르니 모든 게 쉬웠던 걸까? 그녀의 <결단력 있는 행동>(?)은 당시의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했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처럼 그녀는 어떤 남자를 만났고 바람인지 도피인지 어린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고 했다. 아주버님 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거의 들은 바가 없어서 어떻게 진행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 간혹 아주버님과 아주버님의 아내에 대한 소식을 남편을 통해 제한된 정보를 들을 뿐이었다.


시어머님의 환갑에 어떻게 할 건인지 고민하는 것도 남편과 내가 결정해서 아주버님께 알려드렸다. 가족은 어디까지 초대할 것인지, 장소는 어디로 할 것인지 알아보는 것도 내가 해야 할 몫이었다. 시어머님께 드시고 싶은 게 있는지 여쭈었는데 특별한 의견이 없으셨다. 주변에 한정식을 하는 음식점들을 알아보고 몇 곳 후보지를 메모했다. 이후 남편에게 후보지를 이야기하며 장단점에 대한 리뷰를 공유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지금만큼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보군이 많지 않았다. 그중에 한 곳을 선택하고 미리 예약까지 해두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친정엄마에게 이야기해서 엄마도 오시기로 했다. 시어머님과 내가 함께 살면서 시어머님과 엄마가 그래도 몇 번 얼굴을 보면서 서로 대면대면한 상태는 아니었다.

시어머님 환갑으로 조촐하게 가족끼리 모여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정식이라는 식당 때문인지 불과 3년 전 함께 식사 자리를 가졌던 상견례가 생각났다. 그때에 비해 새로운 가족인 나의 2살 아들이 늘어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밥을 먼저 챙겨주고 밥을 먹었다. 음식종류가 다양해도 아이가 먹는 건 국에 말아주는 게 고작이었다. 아들을 다 먹인 다음엔 시어머님을 계속 살펴야 했다. 시어머님은 식사를 하면서 음식을 묻히고 드시거나 잘 흘리셨다. 나는 친정엄마가 그 모습을 보며 걱정할까 봐 다소 신경이 쓰였다. 시어머님이 음식을 흘리면 그걸 정리하느라 다소 정신이 없었다. 신경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음식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분주했던 내 마음과 달리 깔끔하게 나오는 한정식 자리라서 그런 건지 엄마와 시어머니 두 어른이 모두 만족스러워하시며 식사를 마치셨다.

별다를 것 없는 대화가 오고 갔고 평이한 식사 자리였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아직 내가 결혼식을 안 올린 것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결혼식은 형식일 뿐인 하나의 과정일 뿐인데 그것이 빠졌다고 해서 나의 가정이 불완전해 보인다는 것이 못내 속상했다. 환갑잔치처럼 가족들이 간단하게 식사하는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도 능력이 안되니 예식이야기는 유야무야 멈춰졌다. 문득 돈이 얼마나 드는지 궁금해졌다. 정말 돈이 많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점도 생겼다. 내가 결혼식을 그때까지 못하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돈 때문인데 '간소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식적인 결혼예식을 못 치른 반쪽짜리 가족 취급을 받은 기억이 몇 번이나 있었다. 몇 번의 에피소드는 나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다. 결혼식을 못한 것은 마치 화장실 다녀오면서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찜찜함과 씁쓸함을 남겼다. 그때마다 나는 쓰디쓴 소태를 입에 머금고 있는 듯 쓴 맛을 느껴야 했다.


다행히 시어머님 환갑 생일은 가족들과 소소하게 식사를 함께하는 것으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잘 넘어가게 되었다. 부모님이 곁에 있어주는 것은 정말이지 감사하고 특별한 일이다. 비록 부모님이 아프고 부족하고 때론 상처를 주더라도 말이다.

한 줄 요약 -해야 하는 것들을 빼놓게 되면 쓴맛을 보게 된다. 해야 할 건 그냥 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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