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모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부천의 한 예식장이었다. 20년 전, 시간이 너무 오래돼서 그런 건지 도통 날짜와 월이 기억이 안 난다. 결혼생활을 유지할 때는 아주 중요한 날짜였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이혼이라는 이벤트로 끝난 후 그 날짜는 전혀 의미 없는 날짜가 되었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기억을 떠올리려고 해도 실마리조차 찾기가 어렵다. 기억뿐만 아니라 그 당시를 회상할 자료도 남아있지 않다.
이혼하고 얼마 안 돼서 결혼식과 관련한 사진을 모두 버렸다. 글을 쓰기 전에 며칠 전부터 기억을 소환해 봤지만 소용이 없다. 서류라도 띄어서 확인해 보고 싶은데 결혼식에 대한 서류는 없는 것 같다. 기억이란 게 참 편협하다. 통째로 들어낸 건처럼 기억이 사라졌다는 게 우습다. 결혼식 앨범, 결혼식에 대한 기억이 너무 없어서 마치 '내가 결혼식을 올렸다고 착각하는 건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바로 고개가 가로저어진다. 왜냐하면 결혼식 직후에 신혼여행을 갔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것에 반해 신혼여행에 대한 에피소드는 기억에 남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신혼여행을 해외로 갔고, 그때의 여행이 내 생에 최초의 해외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내가 원한 건 딱 한 가지였다. 신혼여행을 해외로 가는 것이었다. 해외여행을 한 번도 안 가봤기 때문에 신혼여행지를 꼭 해외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즈음에 주변 사람들이 동남아로 신행을 가는 사람이 많았다. 반복해서 사람들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해외여행이 로망이 되었다.
나에게 결혼식은 단순하게 <남들은 모두가 하는 형식적인 의식>에 불과했다. 나만 혼자 빠뜨리고 못 치른 행사를 내 삶에 채워 넣는 게 가장 큰 의미였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최소 비용으로 준비했다. 웨딩드레스, 결혼과 관련된 앨범, 혼수품 등을 간소화했다. 웨딩드레스는 기본 옷으로 대여했다. 앨범도 저렴한 것으로 했다. 혼수품이라고는 양가 어머님께 한복 한 벌씩 해드린 게 다였다. 그리고 나와 남편은 예복으로 정장을 한 벌씩 샀다. 그리고 예물이라고는 기존에 나누어 꼈던 커플링이 전부였다. 셋째 이모가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니 선물로 반지, 목걸이, 팔지, 귀걸이 세트를 선물로 주셨다. 뜻밖의 선물을 받고 감사함이 컸다. 남편의 반지까지 포함한 보석이 달린 귀금속 세트였다. 그게 평생 내가 가지고 있게 되는 유일한 보석이었다.
모든 것을 예산에 맞게 하기 위해 가격을 따지며 간단하게 준비했다. 그러나 신혼여행만은 반드시 해외로 가고 싶었기 때문에 그건 양보할 수 없었다. 당시에 신혼여행 장소로 많은 사랑을 받은 동남아 여행 장소들이 있었다. 나는 신행 장소로 태국을 선택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어있지 않을 때였다. 회사 사무실 근처에 작은 여행사 사무실이 있었다. 그곳에 방문해서 안내를 받았다. 여행사에서 보여주는 패키지가 당시 인당 70만 원대로 표시되어 있었다. 여행지에 가서 쓰는 비용을 포함하면 두 사람이 200만 원 정도의 돈이 든다고 했다. 몇 번을 더 방문했고 최종 결정을 하고 여행사에 가서 예약할 때 선택한 것이 방콕-파타야 패키지 상품이었다. 여권도 일회용 여권을 신청했다. 신행 기간은 결혼식을 올린 날부터 4박 6일이었다. 예식이 있는 날 저녁, 비행시간 3시간 전까지 공항으로 가야 했다.
결혼식관련해서 사진작업 크게 두 번에 나눠서 일정이 잡혀있었다. 한 번은 야외촬영, 두 번째는 스튜디오 촬영과 결혼식날 촬영이 있었다. 그전에 야외촬영은 한번 날을 잡아 진행했다. 당일에도 신부대기실부터 결혼식과정, 단체 사진, 그리고 폐백까지 많은 사진을 찍었다. 결혼식 당일 예식을 끝난 후에도 앨범 작업 때문에 스튜디오로 이동해야 했다. 머리모양이며 화장까지 갖춘 상태에서 스튜디오 사진을 좀 더 찍는다고 했다.
결혼식에 하객을 많이 모시지 않았다. 예식이란 의식은 마치 기계에서 찍어내듯 30분 만에 끝났다. 짧은 결혼식 행사가 끝나고 폐백도 간단하게 마쳤다. 신부 대기실 동행과 심부름을 친구 심이 도맡아 처리해 주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강남으로 사진촬영을 하러 갔고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아침부터 결혼식, 사진촬영, 저녁에는 신행을 위한 공항이동까지 정신없는 일정이었다. 강남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다 찍고 결혼식에 관련된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났다.
이제 고대하던 여행만이 남아 았었다. 스튜디오에서 집에 들렀다 공항을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머리에는 온통 스프레이가 가득 뿌려져 있었고 많은 실핀이 꽂혀있었다. 그 상태로 비행기를 타면 너무 불편할 것 같았다. 사진촬영하면서 사진사님께 여쭈었더니 인근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고 가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촬영이 끝나고 강남에 있는 미용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은 예약 손님만 받는다고 했다. 근처 다른 미용실로 가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옷을 갈아입어서 간단해졌는데 머리모양은 아주 특이해진 상태로 강남거리에서 미용실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알려준 미용실에 잘 도착해서 머리를 감겨줄 수 있냐고 문의하니 나 같은 손님이 많다는 듯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비용이 30,000원이라고 했다. 당시 머리하는 비용에 비교하면 엄청 비싼 비용이었다. '머리 하나 감겨주는데도 강남이라 비싼 건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머리를 틀어 올리느라 머리 안팎에 수많은 실핀과 장식이 꽂혀있었다. 한참 동안 실핀과 장식을 빼고 나서야 머리를 감겨주었다. 머리를 감겨주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비싼 비용이었지만 그 상태로 신행을 갔다면 낭패를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머리 상태가 안 좋았다. 여행에 도착해서 혼자 머리를 감았다면 머리가 남아나지 않았겠다 싶어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머리 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머리 상태를 보면서 미용실 가격이 결코 비싼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엉망이 됐던 머리를 감고 간단하게 머리를 질끈 묶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미 짐을 챙겨 와서 손에 가방이 들려있었다. 첫 해외여행을 간다는 현실에 기분이 좋았다. 피곤함도 잊은 채 공항까지 이동했다. 하루 동안 이동이 많아서 차를 가져온 게 다행이었다. 공항에 주차를 해놓고 비행기에 탑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