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해외여행은 패키지여행이었다. 2000년 즈음 동남아 여행이 일반인들에게 유행처럼 번졌다. 그에 기여한 건 여행사들의 마케팅 덕이 크다. 여행사들은 앞다투어 패키지여행상품을 출시했다. 말도 설고 물도 설었던 해외여행이 패키지여행 덕분에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2003년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사를 통해 패키지여행을 했기 때문에 나 또한 패키지여행을 했다.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니 첫 해외여행이더라도 자유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는 초창기에 몇 번 패키지여행을 한 후 그다음부터는 자유여행을 가는 편이다. 패키지여행의 장점을 알지만 단점 또한 잘 알기 때문에 자유여행을 하기 위해 조사하고 준비한다.
자유여행을 하려면 영어를 잘하는 게 좋다. 특히 영어권 문화에서 영어를 못하면 여행이 힘들 수 있다. 나는 기본적인 영어만 할 줄 안다. 영어를 잘할 줄 몰라서 곤란한 일을 겪었던 적이 분명히 있다. 어떤 나라를 여행하더라도 세계 공용어인 영어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를 만날 수 있다.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될 경우 그나마 여행객들이 믿고 기댈 곳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 소통이 안되고 급박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해서 해결하면된다. 부족한 언어실력 때문에 아직 미국이나 영어권 나라는 여행을 거의 못했다. 그에 비해 동남아나 유럽은 그 나라 사람들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여행지에서 해당 나라의 언어를 할 수 있다면 여행은 풍성해진다. 나는 언어의 장벽을 느낄 때도 있지만 세상의 공통언어인 보디랭귀지로 여행할 때 대부분의 소통을 해결(?)한다. 다행히 스마트폰으로 번역도 되고 지도를 찾아볼 수도 있으니 자유여행이 참 쉬워졌다.
패키지여행과 자유여행의 차이점은 어떤 점들이 있을까? 가이드의 존재 유무, 정해진 스케줄, 쇼핑의 의무, 패키지여행의 장점과 단점이 이 같은 특징에 모두 들어있다. 가이드가 존재하므로 길을 헤매거나 당황스러운 환경에 놓일 염려가 거의 없다. 언어에 대한 장벽도 없다. 자유여행은 일정을 모두 스스로 정리하고 계획해야 하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므로 여행 전에 준비할게 많다. 패키지여행은 스케줄대로 따라가면 된다. 여행을 하면서도 타국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줄어든다. 특히 치안이 안 좋은 나라에서 가이드의 유무는 심하게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쓸 수도 있다. 자유여행을 가고 싶다면 나라 선정 시에 치안이 좋은지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한다.
2003년 나의 첫 해외여행지는 태국, 방콕 -파타야였다. 4박 6일 동안 진행된 태국 여행은 좋은 추억들로 채워졌다. 첫 해외여행은 생경함에서 오는 신선한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 같은 신비한 경험이 모두 감동으로 남아있다. 첫 해외여행 이후 더 해외여행이 좋아졌고 많은 곳을 경험하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처음 보는 풍경, 현지 사람들, 음식 등 모든 것이 새로웠다. 음식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입맛에 맞지는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이란 점에서 그 또한 좋았다.
가이드는 여행을 안내하는 곳곳에서 경험을 위한 추가요금이 있는 액티비티 소개를 해주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상품을 살 수 있는 곳들을 안내했다. 나는 여행자금 말고는 딱히 여비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액티비티는 자제했다. 그러나 신행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의 선물은 마련해야 했다. 상품 안내를 받으며 이것저것 비교하다가 상품들을 구매했다. 로열젤리 설명을 듣다 보니 양가 어머님께 없어서는 안 되는 만병통치약 같았다. 다소 고가의 상품이었지만 부모님을 위한 상품이라서 고민을 한다는 게 불효 같아서 크게 효도한다는 마음을 먹고 구매했다.
몸에 좋고 신기한 상품들이 어찌나 많은지 여타 가족들을 위한 상품도 인원수에 따라 사게 됐다.
각자 회사에도 돌릴 상품들을 구매했다. 그리고 친한 친구나 챙겨야 할 지인들 선물까지 마련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은 가이드가 맘을 먹은 건지 날을 잡은 건지 각을 잡고 나왔다. 다른 날과 달리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풀세트로 무장하고 한껏 꾸미고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날 하루를 온전히 상품을 소개하는 곳으로 우리들을 안내했다. 가이드는 여행 내내 우리들에게 헌신했다. 그런 그녀가 간절하게 상품 소개를 하는데 그녀를 외면하고 물건을 안사면 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 바람에 미처 못 챙긴 사람들 선물까지 다 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여행비보다 선물값을 더 사용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가이드가 주얼리숍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다. 가이드는 영리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잘 다루는 최고의 언변 술사였다. 나의 못난 자격지심을 건드리며 자기 자신에게 주얼리를 선물하라고 독려했다. 내 행색이 후줄근한 것에 비해 선물에 돈을 많이 사용하자 나를 제대로 이용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그녀의 상술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녀의 말에 홀딱 넘어갔다. 그녀의 말처럼 나는 주얼리를 한 번도 내 돈으로 산 적이 없었다. 주얼리뿐 아니라 나에게 그 어떤 선물을 한 적이 없었다. 주얼리숍 앞에서 나의 마음은 요동을 쳤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았을 주얼리를 20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구매했다. 예상에 없었기 때문에 신용카드 할부로 구매했다. 그녀의 화려한 상술에 영혼까지 넘어가 버렸다. 나는 당시 심지어 그것이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보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카드를 내놓으면서 왠지 당당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를 위해 내가 해주는 첫 번째 과한선물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감격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OTL) 나중에 가격들을 정리해 보니 물품을 500만 원 가까이 구매한 걸 확인했다. 부모님 선물이나 가족들 선물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주얼리까지 합하면 정말이지 엄청나게 큰돈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돈을 쓴 것으로 이후 그때를 생각하면서 후회하고 교훈으로 삼았다. 미지의 세계로 떠난 여행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오랫동안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했다. 여행이 끝나고 한동안 여행에서 내가 했던 생각들이 어디에서 왔을까를 떠올렸다. 생경함이 주는 다채로움으로 나는 숨겨놓았던 나의 어글리 한 속내를 보는 기회를 맛봤다. 곱씹을수록 맛이 별로였다. 소화가 안되고 채한것처럼 오랫동안 가슴이 답답했다. 심적인 깨달음은 나에게 숙제를 남겼다.
한 줄 요약: 역시 판매를 잘하는 사람들은 그 분야에 달인이다. 억울하지만 그녀는 멋지다. 그리고 나는 빛깔 고운 호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