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고 팔짝 뛸 일'이라는 말이 있다.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시어머니께 왜 방문을 두드리시는지 여쭙고 나서 내가 느낀 기분이 딱 그랬다. 전혀 금시초문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당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시어머님이 생판 다른 사람같이 낯설게 느껴졌다.
시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대화를 많이 나눈 건 아니다. 나는 당시 20대 초반에 넉살이 좋지도 않았고 시어머님은 어려운 대상이었다. 게다가 직장 생활하며 어린 아들을 키우느라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평소에 말씀도 별로 없고 당신 방에서 잘 안 나오시는 시어머님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별로 없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용건만 간단히, 서로 묻는 말에 대꾸 정도 하는 게 대화의 전부였다. 그런데 그날의 대화는 답답함을 넘어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시어머님의 계속된 시치미에 더 이상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새파랗게 젊은 며느리가 시어머님과 시시비비를 따지자고 말대꾸를 이어갈 수도 없었다. 나는 나대로 시어머님께 적잖이 실망한 상태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벌써 몇 번째 있었던 일이었다. 심지어 시어머니와 내가 맞닥뜨린 적도 있는데 마치 자신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듯 말씀하시는 모습이 밉고 싫었다. 억울한 마음을 억누르고 시어머님과 대화를 멈추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고민됐다. 잊혀가던 남편의 형수가 떠오를 정도였다.
그녀는 그즈음 아주버님과 이혼을 했다는 것 같았다. 나는 아주버님께 직접 여쭙지 못했고 그저 소식만 전해 들을 뿐이었다. 그녀는 딸을 데리고 이혼도 하기 전에 먼저 집을 나갔다. 시집와서 시어머님 집 명의였던 빌라를 팔고 자신 명의로 전셋집을 계약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결혼 2년이 조금 넘은 상태에 시어머님을 (나에게) 버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전셋집 보증금을 챙겨서 집을 나갔다. 아주버님이 그녀를 찾으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것도 잠시일 뿐 이후 이혼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렇게 떠난 그녀에게 연락이 된다면 그녀와 시어머님 상태에 대해 논의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누구에게 이 같은 상황을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들었던 생각이다.
며칠 동안 밤잠을 또 설쳤다. 언제 시어머님이 문을 두드릴지 모를 일이었다. 일주일정도 더 지난 어느 날 새벽시간, 다시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투둑 투둑 투둑~ 소리를 듣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때 남편을 깨웠다. 남편이 힘들게 눈을 떴다. 남편에게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했고 그 장면을 같이 확인했다. 남편이 문밖으로 나가서 시어머님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신경질적으로 시어머니에게 무어라고 나무랐다. 시어머님은 나에게 말했던 때와는 달리 목소리가 한층 작아지셨다. 시어머님이 혼자 웅얼거리는 소리가 안방에 들렸다. 남편의 화내는 소리가 커지자 시어머님은 화장실인 줄 알았다는 말을 반복해서 얼버무리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남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말을 꺼냈다. 몇 번이나 반복된 일이고 시어머님이 시치미를 떼서 남편을 깨운 거라는 말도 덧붙여서 했다. 나는 나의 입장을 확실하게 말했다. 시어머님이 없는 말도 하시고, 있었던 일을 모르쇠로 대답하는 것은 아주 심각한 일이라고 말했다. 문을 두드렸다는 사실보다 모르쇠로 일관하고 사람 잡는 게 더 큰 문제고 답답했다고 그간의 심정을 토로했다. 만약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함께 사는 게 어렵다는 말도 했다. 만약 이 같은 것이 병이라면 고쳐야 한다는 말도 했다. 아픈 경우라면 몰라도 이상한 경우라면 그건 참고 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이 같은 상황을 형과 상의하는듯했다. 며칠 동안 남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시어머님이 다니는 병원도 다녀오고 아주버님이 서류를 떼는 것 같았다. 무엇을 하는지 나는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시어머님이 편할 수 없었다. 대화는 더 적어졌고 최소한의 필요한 말만 하게 됐다.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남편이 나에게 서류를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님에 관한 병원 서류인지 봉투에 병원 이름이 쓰여있었다. 서류를 꺼내서 확인했다. 서류에는 진단 상태가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서류가 무슨 의미인지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