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말하지 않은 것들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127화

(라라크루 6주 차 -1)




섬향나무 (꽃말:숨겨진 진실)



말하지 않은 것들


거짓말과 말하지 않는 것은 차이가 있다. 묻지도 않는 말을 사실대로 다 말하는 것도 예의가 아닐 수 있다. 가족, 연인, 친구 간에도 마찬가지다. 모두 다 이야기할 수 없고, 모든 것이 다 궁금하지도 않다. 연애를 시작하게 된 연인에게 과거를 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둘도 없는 찐친이 된 친구더라도 속마음을 온전히 다 내보일 수 있을까?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결혼은 어떨까? 결혼을 앞둔 상대에게 우리는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까? 결혼 전에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까? 결혼이 속전속결로 이루어져서 이미 부부가 된 사람들은 어떨까? 배우자가 된 사람에게 우리는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알아서 약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알아서 병이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배우자를 속이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건 사안에 따라 이혼사유가 될 수도 있다. 어디까지 말을 해주어야 상대를 기망하지 않는 걸까?


2000년에 남편을 만나서 가정을 일구었지만 나도 그에게 일일이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 또한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는 어머님 건강상태나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만 이야기했을 뿐이다. 내가 알고 있던 그에 관한 건 아주 적은 부분이었다. 가족관계는 모친, 형, 본인이라는 것, 아버지는 남편이 갓난아기로 백일쯤 됐을 때 때 돌아가셨다는 것, 시어머님이 홀로 자식 둘을 키웠다는 것, 그리고 그가 중,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를 치르고 방송대학교에 입학해서 다니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내가 그에 대해 들은 말의 전부였고 아는 것도 그것이 전부였다.


시어머님과 함께 산 지 거의 1년 정도가 됐을 때, 시어머님의 진단서를 보고 나에게는 의문점들이 생겼다. 두 아들(자식)은 어떻게 어머니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했는가? 멀쩡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장애 2급이 될 수 있는가? 정신지체라는 진단은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시어머님은 언제부터 장애를 얻게 된 것인가?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지금에서야 알게 된 건가? 이미 알고 있었는데 나를 속인 건가? 진단서를 받을 때 시어머님이 다니는 병원에서 서류를 뗀다고 했는데 시어머님이 다니던 병원이 당뇨 때문이 아니었던 건가? 그가 말하지 않은 건 고의일까?


정신지체 2급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상태인지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봤다. 시어머님과 대면할 때 생겼던 의문점들이 진단서 한 장으로 수용이 됐다. 시어머님이 새벽마다 문을 두드리고 모르쇠로 일관했을 때 실망하고 화가 났었다. 관장약을 시어머님께서 넣어달라고 했을 때는 경악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화장실이 범람하는 건 일상이 됐고, 매주 반복되더라도 결코 적응되지 않았다. 그러나 진단서 한 장으로 모든 것이 프리 패스되었다. 남편과 형이 평소 시어머니를 대하는 태도에 짜증이 섞여있었던 것도 납득이 됐다. 그러나 나의 수많은 의문점들은 시어머님이 아닌 남편에게 생겼다.

그는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그는 또 어떤 것을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걸까? 아무리 나 혼자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도 해답은 내가 찾을 수 없었다. 그에게 물어야 했다. 그가 말해주어야 유추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녁에 이야기 좀 해요~"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갖자고 말했다. 궁금한 점들을 묻고 듣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어머님의 진단이 나온 것이 오히려 모든 풀리지 않았던 의문점들이 납득이 된다는 말로 시작의 문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때 조금 더 해주었다.

둘째 아들(나의 남편)을 낳고 곧 남편(시아버지)이 죽었다. 시어머님은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됐다. 아들 둘과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았고 고생하며 아들 둘을 키우다가 정신을 놓았다. 친가 쪽 친척들이 시어머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아들 둘은 어린 나이부터 단둘이 부모도 없이 자랐다. 그 과정에서 둘째 아들은 중학교도 중퇴했다. 성인이 돼서 공부하고자 검정고시를 치르고 방송대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 나를 만났다. 시어머님을 정신병원에서 모시고 온 건 형이 결혼을 앞두고 있었을 때 모시고 나왔다. 이후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하는 참한 여자를 만나서 형이 결혼을 했다. 이후부터는 내가 보고 알게 된 일이다.


그날 나와 이야기한 건 아니지만 이후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게 된 사실이 있다. 남편이 중학생 때 자퇴하고 비행청소년으로 지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비행청소년의 범주와 사뭇 다른 범주라서 그 또한 놀랄 일이었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우연히 나온 말이라 진지하게 각 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건 아니었다. 각 잡고 이야기했을 때보다도 나로서는 더 놀라게 된 일이다.


중학생 때 학교를 그만두고 그는 본드를 흡입했다고 했다. 단발적인 일이 아닌 듯 말해서 많이 놀랐고 그 사람이 다시 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못했다. 다른 비행 관련 일화가 더 있다는 듯 장황해지려고 했다. 그런데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생각하는 범주를 벗어난 일탈이라서 더 묻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듣기 싫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나의 좁은 스펙트럼에는 없는 그의 일탈은 나의 상상력을 벗어날 것 같아서 무섭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비밀이란 말로 표현하니 왠지 거창해진다. 그저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시어머님의 오랜 정신병원 입원내역, 그의 청소년기의 일탈, 그건 나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을까?


모든 사람들은 가면을 쓴다. 가까운 사이로 지낼수록 우리는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의도치 않게 상대방, 혹은 자신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을 허용할 수 있는지는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모두 상대방의 몫이다. 결혼한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결혼했다고 말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타인을 판단할 때 늘 그 판단 기준이 내가 되는 것 때문에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는다. 타자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일들을 살면서 계속 겪게 된다.


한 줄 요약: 말하지 않는 것, 거짓말, 기망에 대해 서로 생각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 간극은 관계에 틈을 만들고 불신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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