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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설마가 사람 잡지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132화

별별챌린지 3기-40일 차




노란 카네이션(꽃말: 후회, 변색, 당신은 나를 실망시켰어요, 당신을 경멸합니다)



설마가 사람 잡지


어떤 일 때문에 통장을 확인했었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5월에 소득신고 때문에 알게 됐었는지 언제인지 모르겠다. 총소득 금액에 차이가 난다는 걸 확인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급여를 속인다는 걸 알게 됐던 것 같기도 하다. 숫자의 차이, 맞지 않은 것에서 온 이상한 느낌, 통상적인 여자들이 가진 직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직감이 있다고 해서 섣불리 넘겨짚을 수 없었다.


설마 했던 마음이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 더 선명해졌다. 거짓말은 그렇게 언제든 드러날 수 있는 숨기기 힘든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진실과 대면하는 것이 더 아프고 슬플지라도 그 실체와 대면해야 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이 없나'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예측이 된 불안을 더 큰 위협으로 느끼기 전에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그에게 통장을 가져오라고 했다. 처음에 그는 완전히 발뺌을 하며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이미 숫자로 거짓이 확인된 후라서 나의 추궁이 멈출 리 없었다.


두 개의 통장이 내 앞에 놓였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지못해 그가 통장을 가져왔다. 2년 동안 감추고 있던 통장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회사에서 급여를 받는 날에 다른 통장에 이체를 했다. 그 이체한 통장이 급여통장인 줄 알고 나는 2년의 시간을 믿고 지냈다. 그의 급여를 모두 계산해 보니 아주 많지는 않지만 당시 우리 회사 기준으로 평균 정도의 소득은 벌었다는 걸 통장을 통해 확인했다. 그는 이전에도 나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그러나 급여를 속인 사건은 이전에 나에게 저지른 어떤 잘못 과도 비교되지 않는 너무나도 큰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급여를 2년 넘게 속이고 기망했다는 사실이 나를 허물어뜨렸다.

돈, 돈 때문이었을까? 지랄 맞도록 너무나 속물 같아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맞다, 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회사에서 급여를 속이는 몇몇 다른 사람들처럼 그가 나에게 매달 500만 원 이상씩 가져다주었더라면 어쩌면 그가 급여를 속였더라도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나는 그만큼 돈 때문에 여러 고통을 겪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계산적인 사람이었는지 그때 알았다. 나도 모르게 그가 얼마를 벌고 얼마를 썼는지 계산하기에 이르렀다. 사람이 충격을 받으면 그런 쓸데없고 허무한 일들을 하는 건지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다.


계산을 해보니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동안 그가 생활비로 나와 아들을 위해 벌어다 준 돈은 거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단순히 숫자였을 뿐인데 돈이 <마음>같이 느껴졌다. 그는 2년 동안 자신과 시어머님만을 위한 벌이만 겨우 나에게 노출했다. 그가 2년 동안 나에게 생활비 조로 가져다준 돈은 시어머님에게 추가로 들어가게 된 생활비 정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이가 적은 상태에서 비자금까지 챙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신의 용돈과 시어머님의 생활비 정도만 나에게 가져다준 셈이 되었다.


남편으로서 그를 의지할 수 없었다. 임신했을 때부터 마음적으로도 그를 의지한 적이 없이 살았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전혀 금전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화가 나고 실망을 하게 되자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도 떠올랐다. 그는 매달 용돈이 적다면서 툭하면 볼멘소리를 했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그의 용돈을 올려주기도 했다. 그의 용돈을 올려주는 만큼 나는 더 생활비를 아껴 써야 했다. 점심시간에도 정해진 금액 이상 되는 점심을 사 먹은 적이 없었다. 생활비가 부족한 달은 종종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도 했다. 나에게 필요한 옷 한 벌 사본 적도 없었다. 당시 20대였던 나는 누가 봐도 40대 아줌마처럼 후줄근한 차림으로 회사를 다녔다.

그에 대한 원망이 커지는 만큼 나 스스로도 자책감도 커졌다. 내가 너무나도 한심하고 미련하고 바보 같았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믿고 사는 건지 나에게 화가 났다. 사람이 화가 나면 그 <화>에 사로잡혀서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가 어렵게 된다. 나는 며칠 동안 패닉 상태에 빠져서 멍한 상태로 회사에 출근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고 불같이 화가 나고 가슴에서 천불이 일었다. 며칠 동안 정신없이 울다가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궁금한 게 생겼다. 그는 그럼 지금까지 나에게 속인 돈으로 무엇을 한 걸까? 설마 도박? 외도? 실체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형사 콜롬보나 공공칠 작전을 펼치듯 영악하게 그에게 접근했다. 나에게 중요한 건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게임을 하듯 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가 순순히 말할 리가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어르고 달래면서 실체에 접근했다. 목소리에도 신경을 썼고,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지 연습까지 해봤다. 그 많은 돈을 무엇에 사용한 건지? 이야기하라고 차분하고 단호하게 계속 물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외도를 했다고 하거나 도박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나는 추궁을 멈추지 않았다. 나의 지리한 물음은 며칠 동안 이루어졌다.


그가 드디어 실체를 말했다.


그가 나를 기망한 돈을 전부다 유흥비로 사용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가 사용한 유흥은 다름 아닌 노래방을 간 것이었다. 이상했다. 노래방을 간다고 해도 도대체 몇 번의 노래방을 가야 그 정도의 돈을 사용할 수 있는 거지? 당시만 해도 노래방은 한 시간에 만 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었다. 그리고 누구와 어울려서 노래방에 갔다는 거지? 그는 교우관계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어울리는 사람들은 독수리 오 형제 말고는 별다른 학교 친구나 회사친구도 없었다. 나의 추궁은 계속됐고 유흥비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가 2년 동안 나를 속이고 내가 주는 용돈 60만 원 말고 추가로 매달 100만 원 정도를 사용했다. 월평균 100만 원을 모두 유흥비에 사용했다. 노래방에 갔고, 도우미를 불러서 그 많은 돈을 사용했다고 했다. 매번 특정 여자였는지 물은 말에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매번 다른, 불특정의 여자를 불러서 노래방에서 놀았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노래방을 갔고 그때마다 도우미를 불렀다고 했다. 누구와 간 건지 물어봤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또 한 번 더 나를 좌절시켰다. 그는 말했다.


'어울리는 사람 없이 혼. 자. 서. 갔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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