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남편을 추궁한 걸까? 진실과 마주하고 나서 나는 더욱더 침몰했다. 두 개의 월급통장을 확인하고 지하 어딘가의 나락으로 떨어졌었다. 이미 바닥보다 더 깊이 떨어졌으니 그 이상 더한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의 비자금의 사용처를 알고 나서 나는 끝이 어딘지 모르는 깊숙한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좌절은 물에 빠진 먹이를 본 물귀신이 되어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것 같았다. 나는 무기력한 먹이가 되어 아무런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한 줌의 희망조차 잡지 못한 채 빈주먹만 움켜쥐고 추락하고 추락하고 다시 추락했다. 나의 가족, 나의 희망, 나의 자존감, 나의 정체성 등 모든 것이 무너졌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데 나는 날개조차 없이 그저 맨몸으로 사지가 찢긴 채 떨어졌다. 그놈의 중력은 떨어질수록 강해졌고 속도를 높이며 끊임없이 아찔한 롤러코스터의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내가 믿고 살아온 모든 것이 허상같이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바란 것일까? 그는 수없이 많은 시그널로 나에게 여러 차례 알려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나를 사랑했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사랑 따위라는 감정을 떠올리는 것조차 구차스러웠다. 사랑이란 감정은 사치 중에 사치로 느껴졌다.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데 사랑의 중요성을 생각했어야 한다. 서로 존중하는지, 서로 믿을 수 있는지를 반드시, 반드시 생각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바보같이 그런 걸 무시했었다. 나의 허상은 나의 허술함, 나의 바보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내 탓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타인에게 예의 바른 편이었고, 타인에게 큰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싸움을 할 때도 큰소리를 내는 적이 별로 없었다. 그가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많아질 때는 유일하게 술을 많이 마실 때였다. 술을 마실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만 많이 마셨기 때문에 보통은 기분이 좋을 때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그랬던 그가 결혼을 하고 나와 살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다소 혼란스러웠다.
나를 자책하면서도 그에게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그에게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건 그의 성격, 태도 때문이었다. 조용하고 침착해보이는 그가 점잖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권리를 침해당해도 그는 큰소리 한번 낸 적이 없었다. 가끔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성격 탓이겠거니 하며 넘어가곤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였지만 유독 다른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함부로 말했었다. 그런데 나와 결혼하고 내가 시어머니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당부했었다. 내 부탁 때문이었는지 시어머니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다소 변하기도 했다. 그는 나와 혼인신고 후 나에게만 막말을 서슴지 않고 거름망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에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하찮고 함부로 할 수 있는 대상이었던 것 것일까? 엄마에게 함부로 했던 그가 그 대상을 나로 바꾼 것일까?
적어도 그가 나를 사람으로 존중했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들었다.
나는 그의 자식의 엄마였다. 그의 엄마를 모시고 사는 함께 사는 동지와도 같은 동거인이었다. 부부의 사랑은 차지하더라도 적어도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우리는 한 가정을 책임지는 공동책임자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유흥거리를 위해 나에게만 모든 책임과 의무를 떠맡기고 있었다. 나도 친정집 빚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기망하고자 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소득을 더 높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야근을 하고 일찍 출근했고 악착을 떨며 일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 가장 인색하게 굴었다.
그가 노래방 도우미와 외도를 하거나 딴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고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났거나 바람을 피운 것보다 더 큰 상실감으로 나를 괴롭힌 건 금전적인 부분이었다. 나에게 생활비를 안 주고 생판 모르는 여자들에게 돈을 쓴 점에 더 화가 났다. 돈 때문에 더 화가 나고 배신감이 느껴지는 점이 전혀 특별하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 남편으로서 <이성적>으로 바라는 것이 없었다. 임신하고 줄곧 그는 여러 행동과 폭언으로 보여주었다. 같이 살면서 그가 나를 위한다거나 여자로서 좋아하는 마음을 느낀 적이 없었다.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무자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고 한다면 그게 정말 사랑일까?
아이를 갖은 후에 우리는 6개월에 한 번 정도 잠자리를 했을 뿐이었다. 그가 처음 집을 나갔을 때부터 그에게 마음에 상처를 크게 입었고 그 후 마음이 닫혔다. 마음이 없는데 잠자리가 좋을 리 없었다. 그와 함께 살면서 단 한 번도 그에게 먼저 잠자리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 또한 거의 요구하지 않았다. 매일 너무 피곤한 일상이었다. 아주 드물게 발생했던 잠자리도 그가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온 날 일어났다. 보통 그는 술을 마시면 새벽에 들어왔다. 그가 어디에서 누구와 술을 마시고 있는지 확인되는 경우에는 굳이 그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잠을 잤다. 술이 만취가 돼서 들어온 그는 자고 있는 나에게 화장실에서 일 처리를 하듯 건드렸다. 몇 번 자다가 깬 적이 있고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듯 놀라고 소름이 끼친 적도 있었다. 잠자리라고 명명하는 것도 끔찍하다.
결정적으로 내가 그에게 모든 마음을 접었을 때는 엄마의 포장마차 일로 경찰서에 갔을 때였다. 그때 그가 쏟아버린 독설은 주홍 글씨로 남아있었다. 결코 잊히지 않는 그가 했던 말이 "내가 니 까짓 거 만나서 왜 그런 꼴을 당해야 해~"였다. 그런 독설을 내뱉은 직후 그가 또 집을 나갔었다. 죽겠다고 협박하는 그에게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사정하며 빌어야 했다. 결국 내가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그에게 사정했고 그는 집에 들어왔다. 그때의 일이 내내 상처로 남았고 그 상처는 툭하면 덧나고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 일 후 그에게 여자로서의 마음을 모두 버렸다.
내가 부여잡고 있었던 것은 단지 아이 아빠로서 그 사람의 역할이었다. 아이를 키우려면 부모가 모두 존재해야 아이에게 좋은 환경이 된다고 믿었다. 나에게는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이에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길 바랐다. 나는 포용력도 부족하고, 이해심도 많지 않은 부족한 사람이다. 나의 역량으로는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이미 벗어났다.
부모는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가장 겁나고 무서운 것이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였다. 적어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부모로 자식에게 존재하고 싶었다. 아니 반드시 그러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아이 아빠의 행동은 나의 결심을 처참하게 만들었다. 통장에 찍힌 숫자로 봤을 때 그가 유흥만을 위해 직장 생활을 했을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2년 동안 번 돈을 착실하게 나에게 주었다면 생활비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돈을 나에게 주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식도, 나도 전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가족의 범주에 없는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스스로 다독여 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2년 동안 벌었다고 알려준 돈은 월평균 200만 원 대였다. 그의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자동차 유류비, 톨비, 할부금 등 60만 원 정도가 지출됐다. 식비 등으로 그가 용돈으로 사용한 돈이 추가로 60만 원이었다. 그가 혼자서 최소 120만 원 정도를 사용했다. 그의 보험료, 집에 대한 전세자금 대출은 모두 내가 관리했다. 그가 몰래 더 사용한 돈은 매월 최소 30만 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 이상이었다. 평균적으로는 거의 100만 원 이상을 매달 비자금으로 추가 사용했다.
내 한 달 용돈은 전철비를 빼면 10만 원이 안 됐고 그 돈의 대부분은 점심값과 야근할 때 저녁을 사 먹은 돈이었다. 시어머님과 살면서 생활비가 늘어났고 그와 시어머님에게만 들어가는 돈이 매달 200만 원이 넘었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은 어린이집과 간식비 등 매달 100만 원 이상의 돈이 들어갔다. 나뿐만 아니라 아이에게조차 금전적으로 최소한의 역할을 안 하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아이 아빠라는 사람이 자신의 유흥비를 사용하기 위해 아이의 양육비조차 전혀 안 주고 있었다. 그것이 팩트였다.
모든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삼일 동안 울기만 했다. 거의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멍하게 있었고 울고 울고 또 울기만 했다.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3일 동안 내내 울면서 시간이 지나갔다. 월요일 출근을 했다. 점심시간에 밥이 넘어갈 리 없었다. 점심시간에 친구 심과 통화를 하면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친구 심에게 하소연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제3자에게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한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심에게 남편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나의 가정이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심은 그저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한참을 울면서 이야기하다가 울음을 그치며 심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