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년생인 아들은 2023년인 지금 23살이다. 나이와 년도가 같아서 나이 계산이 필요 없다. 그런데 올해 6월부터 우리나라도 만 나이로 표시한다고 하니 한 살이 어려진다. 앞으로는 연도에서 한 살을 빼면 우리 아들 나이다. 무슨 나이를 계산을 하나 싶지만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 내 나이를 물어봐도 나는 대답이 빨리 안 나온다. 나이가 언제 그렇게 먹은 것인지 마흔 이후부터는 내 나이가 적응이 안 되고 한참 생각을 해야 한다. 아들은 나와 24살 차이로 띠동갑이며 우린 사이좋은 뱀띠다.
울 아들은 때어나기 전부터 착한 아이였다. 임신기간 내내 입덧으로 조금 고생을 했지만 심각한 입덧은 아니었다. 뱃속에서도 건강하게 잘 놀고 초산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날 때도 자연분만으로 잘 나와 주었다. (두상이 다소 큰 편이라서 고생한 건 있었다.ㅎㅎㅎ) 젓 물릴 때, 이유식 먹일 때, 밥 먹일 때 고생한 게 없다. 늘 잘 먹고 잘 싸는 아주 착한 아기였다. 갓난아이일 때 내가 부업으로 바쁠 때도 보챔 없이 잘 놀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장거리 이동하는 자동차 안에서도 늘 잘 지내주었다.
어린이집을 돌 전부터(10개월 차부터) 다녔지만 잔병치례를 거의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는 등교시간에 알아서 갔고 내가 아침에 깨울일이 없었다. 6살 이후로 말이 통해서 잔소리할 일도 없었다. 중학생 때는 나와 약속했던 공부를 했었고 고등학교는 본인이 선택해서 특성화고를 갔고 특성화고라서 등록금도 없었다. 공포스럽다는 중2병도 없었다. 가장 무섭다는 사교육 열풍을 피해 갔다.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학원비도 거의 들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빠듯했던 나에게 여러모로 효도를 톡톡히 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졸업해서 고등학교 졸업식도 혼자서 다녀왔다. 군대는 재작년 부산 해운대 정비병으로 입대했었고 지난해 11월에 군복무를 마치고 건강하게 제대했다.
군대 가기 전에 아들이랑 둘이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었다. 맛집정보나 갈 만한 곳을 찾아보라고 하니 이곳저곳 검색도 잘한다. '아들이 성인이 되면 해야지' 하고 미뤄놨던 이야기들을 제주도에서 했다. 아들이 유치원생일 때 내가 이혼한 이야기, 가족들 관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 엄마에 대한 이야기 등. 울 아들은 엄마의 이야기를 다 들을 만큼 자란 어른이 되어 있었다. 아들에게 늘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울 아들은 태어나기 전부터도 착했어. 늘 고마운 아들이었어. 나랑 딱 맡는 아들이라서 너무 감사해, 사랑해 "
"엄만, 늘 나한테 착하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땐 엄마가 너무 착한 것 같아. 좀 덜 착해도 돼."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아들이 나에게 해준 말이다. 나는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는 몰랐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만 알았다. 내가 노력한 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안 한 게 전부다. 부족한 엄마라서 늘 아들에게 미안했다. 나와 아들은 자주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보통 때는 서로 무관심해 보일 정도로 터치하지 않고 각자 생활한다. 그러나 가끔 대화할 때는 친구처럼 재잘재잘 거린다.
아들은 군대에서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엄마'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속으로 엄청 민망했는데 아들이랑 이야기가 끝나고 혼자서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울아들이 너무 잘 자라준 것이 고맙고 장했다. 혼자 있기 좋아하고 지극히 내향적인 아들이 군대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부산은 너무 먼 곳이고 코로나 때라 면회도 한 번밖에 못 갔었다. 그런데 아들은 군대에서 분대장이 되었었고 무사히 제대를 했다.
제대 후 울 아들은 평일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침에 헬스장을 다니며 몸 관리를 하고 있다. 군생활을 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는 아들은 동년배들에게 동기부여를 받아서 꿈도 생겼다. 게임 개발 쪽에 관심이 생겨서 독학공부를 하고 있고 영어공부도 하고 있다. 아들을 잠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 호르몬이 발산되어 치유가 된다. 아들과 나는 건강해야 한다. 서로 존재하는 이유만으로 충분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