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날다

성장과 성숙 - 열여덟, 나를 살려준 밥 한 숟가락

by 장하늘

10화




성장과 성숙


열여덟 나를 살려준 밥 한 숟가락


꿈꾸는 사춘기의 마음을 외면한 채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병환이 깊어지면서 일할 수 없게 된 것뿐 아니라 본격적인 투병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하고 싶었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상황이 내 길을 선택하는 것 같았다. 그런 현실을 거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에 더 집중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올랐고 반에서 10등 안에 들게 되어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중3이 되니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를 시험 보고 가야 했는데 부천에서 1,2위인 곳에 합격선 성적이 되어있었다. 학원에 한 번도 다니지 않고 성적이 오르자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내 뜻과 상관없이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살면서 겪은 가장 큰 폭력이었다. 고등학교 원서를 쓸 때 부모님이 꼭 오셔야 한다고 했는데 엄마는 학교에 오시지 않았다. 몇 년 만에 한번 볼까 말까 하는 외할아버지를 중학교로 보냈고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시킨 대로 담임을 만나서 고등학교 원서를 내고 가버리셨다. 아픈 아빠를 원망해야 하는지 무심한 엄마를 원망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원하지 않는 상업고등학교에 왔으니 처음엔 의욕이 없었다. 그랬던 나를 친구들이 살려주었다. 몇몇 아이 중에 집안 형편 때문에 상고에 온 아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똑똑했다. 성적 때문에 상고로 온 게 아닌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아이들은 두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인문계에 갈 성적이 안 돼서 상고에 온 아이들과 취업에 뜻이 있어서 온 아이들이었다. 친구가 생겼고 그들과 함께 점심시간을 맞았다. 점심시간에 그들은 도시락밥을 나누어 주어 결핍된 나의 몸과, 마음을 채워주었다.


고등학생 때도 가정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아서 도시락을 싸간 적이 거의 없다. 15명이 함께 점심밥을 먹었는데 친구들이 도시락 한 숟가락씩을 내어 주었다. 3년 동안 아이들이 나눠준 밥은 내게 생명이었다. 단순한 식량이 아니었다. 중학생 때는 도시락을 못 싸갔을 때 점심시간에 학교 밖에 나가서 학교 주변을 배회하며 돌아다녔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내어준 밥 한 숟가락은 내가 점심시간에 교실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게 해 주었다. 언젠가는 함께 점심을 먹었던 그녀들을 초대하고 싶다. 밥 한 숟가락의 의미가 내게 어떤 것이었는지 이야기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나눈다면 좋을 것 같다.


꿈은 현실에 맞춰서 진화하고 조금씩 방향을 수정해 나간다. 18살, 얼마나 좋은 나이인가? 현실과 상관없이 꿈꾸는 나이다. 처해진 상황과 상관없이 나는 여느 18살 소녀처럼 꿈을 꾸었다. 여행이 좋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꿈을 확장했다. '돈이 있어야 여행을 할 텐데?' 당시엔 찾아볼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해서 막연하게 외국어 공부를 해서 통역이나, 번역 관련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경한 장소를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여행하며 살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연장해 나갔다.


고등학생 때 도서관에서 그리스로마신화 관련 책을 여러 개 읽었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를 사랑했고 그가 받은 형벌(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게 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바람둥이 제우스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보며 바다로의 여행을 꿈꾸었다. 별자리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로 밤하늘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전쟁의 신 아테나와 아레스에 관련된 이야기는 역사와 연결되고 많은 사물과 관련된 유래가 신화와 어우러져 있어서 재밌었다. 신화 속 여행은 책 안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신화 속에는 많은 인물과 신들이 나오는데 여신 아프로디테와는 다른 느낌으로 아르테미스는 나에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푸스 12 신 중 한 명으로 사냥, 술, 달, 처녀성과 관련된 신이다. 그녀는 실수도 잦고 감정적이고 부끄러움도 많은 여신이다. 그녀는 특히 키와 체격이 커서 사냥의 신으로 추앙받은 면이 있는가 하면 그로 인해 그녀 자신은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 종합적으로 그녀의 특징 때문에 신중에 아르테미스가 마음 쓰였다.


그녀는 명실상부 올림푸스에서 비중 있는 신이다. 그러나 여전히 성장하고 있을 것 같은 미성숙한 그녀는 사랑과 대인관계에서 서툰 행보를 보인다. 쌍둥이 오빠인 태양의 신 아폴론과 대조되는 달의 신 아라테미스는 채움이 필요한 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단점 중 어느 지점이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처녀성의 신 아르테미스의 서툰 점을 닮은 나는 아름다운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를 동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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