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성장과 성숙
엄마
아버지가 7년 정도 투병하다 돌아가시자 병원비며 생활비로 많은 빚이 있었다. 아이를 갖고 가정을 꾸렸었지만 5년 만에 이혼을 했다. 이혼당시 아들이 유치원생이었고 이혼 후 친정 식구들과 합가 해서 가장으로 오랜 시간을 살았다. 아버지는 97년도에 돌아가셨다. 상속법이 개정되기 전이었다. 98년도에 재정된 상속 포기 법(98년 이전에는 사망하고 3개월 이내에 상속 포기를 하지 않으면 빚이 자동 상속되었다. 법 개정 후에는 만약 피상속인이 채무가 있으면 상속인은 그 채무를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한정상속 혹은 상소포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오빠, 언니들과 빚을 같아 나갔다. 심지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 후 알게 된 보증 빚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리기도 했다. 2~30대를 빚을 갚으며 긴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감정적 변화를 겪고 있었다. 우울증이 온 건지 한동안 무기력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사건 사고가 계속 있었다. 아버지는 투병이 길어지자 집에 있던 사냥용 총으로 자살 기도까지 했었다. 병간호로 지친 엄마는 아빠가 죽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했다. 그런 엄마가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장 힘들어했다. 남편만 의지하며 살았는데 의지할 사람이 없어져서 그랬을까?
가장의 부재로 상황은 변했고 집에서 의지할 사람이 공석이 되었다. 집안의 기둥 역할은 오빠의 몫이어야 했다. 오빠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엄마로서는 오빠가 가장이라면 그나마 당당했을 것이다. 오빠는 장 씨 집안 유일한 아들이고, 어려운 살림에서도 더 잘 키우려고 노력했던 귀한 삼대독자였다. 그러나 엄마의 바람과 달리 오빠는 가장 역할을 못했다. 실질적인 가장이 막내인 내가 되자 엄마와의 관계가 좋을 수 없었다. 나를 어려워하면서도 못마땅해하는 엄마는 큰소리를 못 치며 살게 되자 힘이 빠지면서 독기도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동물의 왕국에서 동물들이 그렇듯, 가장인 나에게 태도가 달라졌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에게 먹이사슬 속 '사자'가 된 건 아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는 관계가 되었다. 집안에서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던 엄마에게 제일 힘이 없었던 내가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일부러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엄마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나에게 엄마는 살면서 가장 대면하기 힘든 존재로 엄마를 이해하고 맞추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풀기 어려운 과제였고, 현재도 버거울 때가 많다.
해결하기 힘든 난제를 36살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나는 나름의 방법으로 풀어나갔다. 가장 소극적인 해법으로 엄마와 같이 살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같은 공간에 있지 않자 엄마와 좀 더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가까이서 부딪히며 사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떨어져 지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엄마와 같이 안 산지 몇 년이 지난 후 엄마가 편해졌다. 그런데 엄마가 최근에 많이 아프시다. 치매 증상도 있는지 검사해봐야 할 것 같고 최근 계속 여기저기 아프셔서 병원에 다니시긴 하는데 차도가 없어서 마음이 무겁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성장은 모두 엄마 덕분이니 말이다. 엄마에게 벗어나기 위해 나를 성장시켜야 했고, 엄마를 돌보는 것을 수월하게 하려고 재테크 공부를 꾸준히 했다. 지속적으로 생활비를 드리고 병원비를 드리는 것이 버거워서 노동 수입이 아닌 다른 수입을 발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배우는 건 부족해서 학교 교육에 집착했고, 사회에서 배우거나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것에 열중했다. 가장 친밀해야 할 엄마를 좋아하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덕분에 좋은 분들과 인연이 되었고 그들을 스승으로 만들었다. 인생의 절실함은 모두 엄마에게서 비롯되었다. 어떤 것도 거저 얻는 것이 없었기에 노력하고 끈기를 갖는 것은 나의 기본자세가 되었다.
지난해부터 나는 다시 엄마와 작은언니와 함께 지낸다. 더 이상 나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은 엄마가 우리 곁에 오래 함께 있어주기만을 소망한다.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건 심리학과 철학이다. 심리학은 '엄마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되었고 철학은 엄마가 죽으라고 저주를 퍼부었던 어리고 나약했던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