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이어족은 책에서 봤어요

셸 위 댄스

by 장하늘

2화




파이어족은 책에서 봤어요.


4년 전쯤 김미경 선생님의 유튜브와 강의에 한창 빠져 있었다. 초반에는 몇 개 강의와 이야기를 듣는 것에 그쳤었는데 유튜브는 친절하게도 관련 영상을 더 많이 보여 주었다. 덕분에 김미경 선생님, 김창옥 교수님, 법륜스님의 강의를 찾아보는 게 하루 일상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세 분 중에 특히 많이 본 건 김미경 선생님의 영상이었다. 흡입력 있고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김미경 선생님의 강의를 자주 보게 되었다.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고 동기부여받고 선생님의 선한 영향력을 본받고 싶었다. 그때 선생님은 책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 유튜브 내에서 독서모임을 필두로 한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하셨다. 그래서 그때 나는 독서모임을 가입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책을 읽는 모임을 가입한 것이다.

나이 40이 넘어서 독서모임이라니 중. 고등학생 때도 하지 않던 일을 중년의 나이에 다소 엉뚱해 보이는 행동이었다. 책을 읽는 것은 꼭 해야 하는 의무가 없기 때문에 지속성을 이룰 수가 없을 것 같아 나름의 강제성을 부여한 게 독서모임 가입이었다. 책을 읽는 건 나에게 그만큼 자신 없는 일이었다. 충동적인 행동이었지만 그때 만난 분들 중 지금까지 인연이 되어 친한 언니, 혹은 친구, 동생이 생겼다. 존경하는 분들도 몇몇 알게 되어 지금까지 그 관계가 이어지고 있어서 큰 행운이자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처음으로 참석한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지금 나는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나 문제집, 참고서등만 봤던 것 같다. 학교 성적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잣대가 되니 공부하는 책은 열심히 익히고 배우려 했었다. 그러나 교과서 말고는 고등학생 때 처음 접한 만화책이 그나마 좋아하는 책이었고 소설책은 할리퀸 소설 말고는 재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책을 읽다 보면 솔솔 잠이 와서 잠자기 전에 몇 글자 보면 자동 기절용으로 사용했던 때도 있었다. 학창 시절에 방학숙제로 독후감을 써야 할 때 숙제니까 당연히 읽고 독후감을 썼지만 재미를 느꼈다기보다는 의무감에 했을 뿐이었다.

이 세상엔 놀 거리가 너무나 많았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공부는 뒷전이었으니 나가서 노는 놀이들을 했었다. 고무줄놀이, 공 놀이, 술래잡기, 모래 위에서 놀기, 얼음 땡, 아파트 3층, 딱지치기, 구슬치기, 오징어 게임, 땅강아지랑 놀기, 꽃 따먹기, 산타기, 제기차기 등. 밖에 나가서 놀다 보면 배고픈 줄도 잊고 뛰고 뛰고 또 뛰어놀다 저녁에나 집에 들어갔다. 그러니 초등학생 때까지 나의 몸매는 참 예뻤다. 뛰면서 생긴 잔 근육에 군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지금 생각하면 완벽에 가까운 몸매였다고나 할까? (이 부분에서 혼자 한참을 키득거렸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ㅎㅎㅎ)

독서모임을 할 때 김미경 선생님이 추천해 주는 책들을 많이 읽게 됐었는데 그때 읽었던 책 중에 [파이어족이 온다]라는 책이 있었다. 그때 나는 파이어족이 무엇인지 처음 알았다. 영어 단어와 멀어진 탓도 있었지만 신조어 같아서 영어 단어라는 생각도 못 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파이어족이 은퇴를 한 사람들의 내용이란 걸 알았고 나도 책 속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은퇴를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책을 읽은 지 2년 후쯤 갑작스럽게 나도 파이어족이 되었다.

45살, 매달 벌어야 하는 돈으로부터 나 자신을 해방시키고 나니 처음엔 뭔가 허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허전함은 잠시 잠깐일 뿐 날아갈 듯이 좋았다. "야호~ 나는 파이어족이다". 이제 매달 벌어야 하는 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 '신난다~ 신난다~ 놀아줄 테다~ 놀고먹는 생활이여 반갑다. 내가 너를 즐기기 위해 만발의 준비를 했노라'. 혼자 신나고 들뜬 마음에 중얼중얼 거리기도 했다.

파이어족으로 살기 위해서 매달 나가는 지출을 체크하고 통제하는 게 필요했다. 여유롭고 넉넉해서 파이어족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하는 것에 상처도 있었고 사람 관계에서도 우여곡절이 있었던 때였으며 2년 정도 보이스피싱의 후유증이 나를 너무 지치게 했다. 그렇기에 나의 은퇴는 필연적으로 충동적이고 급작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중요 재정사항 체크는 필수였다. 적은 자금으로 아끼며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 조건이었다. 당시 상황으로 생활비를 아끼면 빠듯하게나마 살 수 있었다. 당시 아들은 군대에 가 있었고 나는 혼자 살고 있었으므로 생활비가 적게 들어서 나름대로 소확행을 누리며 지낼 수 있었다.

나의 소확행은 세 가지 정도로 추려졌다. 첫째는 평일 낮에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하느라 한적해진 공원을 전세 낸 듯 한가롭게 걷는 것이었다. 셋째는 붐빔 없는 커피숍에서 한쪽에 터를 잡고 주야장천 멍 때리기였다.


운동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조건이다. 한량처럼 낮에 테니스 레슨을 받는 건 마치 남편 잘 둬서 팔자 편한 사모님이 된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무엇보다 가장 자주 누린 행복은 커피숍에서 죽치기였다. 커디란 커피숍, 구석진 자리에서 한가롭게 카페라테를 먹으며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하는 건 미지의 장소로 여행을 떠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었다.

책으로 처음 봤던 파이어족이 되어 나의 일상은 여유, 한가로움으로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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