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좋았던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현재 자신이 누리는 평안함을 사소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지금의 형편보다 훨씬 나은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인간은 또한 미래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기대하던 즐거움을 막상 누리게 되어도 제대로 즐기지 못할 때가 많다. 이는 실제로 누리는 즐거움이 보통은 우리가 기대했던 즐거움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곳을 흡사 낙원이나 되는 것처럼 동경하지만 막상 가서 보면 기대보다 못한 것이 보통이다. 기대하지 않았더라면 즐거워했을 것도, 오히려 기대했기 때문에 즐거움보다도 실망을 느낄 때가 많다.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박찬국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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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에 감동을 잘하고 기뻐하며 물개박수를 종종 치는 댕댕이 같은 ENFJ인 나에게 사는 건 곧 즐겁고 신나는 것이다. 고통이 느껴지고 아프더라도 그것마저도 재밌고 좋다. 마조히스트(masochist)는 아닌데 고통, 아픔, 슬픔이 주는 감사함을 조금 알 것 같다. 물론 감사하게도 신은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주었다. 살아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건 바로 내게 주어진 큰 복덕분이다. 감사를 느끼는 생이기에 의미 있게 하루를 채워가고 싶고 주변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 좋은 기운은 나눔으로 이어지는 순기능을 작동시킨다.
"너 나에게 바라는 게 없다며? 나는 이게 최선이야, 왜 처음엔 바라는 게 없다고 했으면서 자꾸 뭔가를 나한테 원해?" 10년 전 인연이 된 사람 Z가 나에게 한 말이다. 예전에 나는 기대심리를 내려놓고 살려고 했고 스스로 기대감에 대한 허들이 낮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내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Z가 나에게 폭력을 사용했다. 그때 알았다. 나는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한말이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그를 만난 후 무언가를 깨달았다. 나는 욕심쟁이였다. 사람에 대한, 남자에 대한 허들이 그 사람 덕분에 하늘 높게 올라갔다. 사람에게 기대치가 높을 때 그 기대심리에 못 미치는 일이 발생되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일 뿐이다. 이미 기대한 만큼 중에 <1>이라도 흡족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뚜렷하고 선명하게 가치 있는 일이다.
그때 이후 무언가에 실망하고 상실감을 느낄까 봐 허들을 낮추지 않는다. 나의 기대감은 아주 높다. 다만, 사소한 것에도 기쁨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낀다. <사는 게 감사일 때, 소소한 행복을 크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