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는 순간(희, 노, 애, 락)
탄탄글쓰기 -주제 : 순간
싸는 순간 (희, 노, 애, 락)
장하늘
# 희 : 기쁨
첫 진통이 시작되고 얼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간호사와 의사가 힘을 주라고 소리쳤다. "힘, 주고 있는데요?" 우는 소리가 나왔다. 간호사:"어디다 힘주는 거예요, 아랫배에 힘줘요"
배뿐만 아니라 안 아픈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 건지 어려웠다. 기운도 없고 요령 없이 온몸에 힘을 주다 보니 기진맥진해져서 오히려 힘이 빠졌다. 간호사: "이러다 아기 큰일 나요" 간호사 선생님이 자꾸 혼내는데 '잘못하고 있는 나에게 제일 화나는 건 다름 아닌 나'라고 항변하고 싶다. 어리둥절한 상황에 끝을 알 수 없는 통증이 이어졌고 그 순간, 어쩐지 똥오줌을 모두 싸는 것 같은 민망한 생각이 들면서 후룩~쏟아져 나온 게 있었다. 아들이었다.
아~ 그냥 똥을 싸라고 하시지~ 힘주라고 하는 말은 너무 어려운 주문이었다.
# 노 : 화남
그에겐 비밀이 있었다. 내가 그와 사귄 건 그가 착해 보였기 때문이다. 능력이 대단한 것도 외모가 특출 난 것도 아닌 그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잘난 사람은 피곤할 것 같아 착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에게는 늘 여자가 있었다. 아니, 늘 여자를 만들었다. 잘난 사람 얼굴값하고 못난 사람 꼴값한다는 건 진리다.
1박 2일 모임이 있어서 혼자 부산에 갔다. 통화를 하다가 그가 밖에 나간 걸 알게 됐다. 거짓말을 하는 그를 보며 직감했다. '여자랑 있구나!' 불같이 화가 났고 추궁하고 싸우다가 결국 집으로 왔다. 전철에서 내렸더니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여자 만날 거면 만나, 끝이야. 진짜" 이별을 통보했는데 그가 나를 붙잡았다. 진실여부를 알고 싶지도 않고 지쳐있었다. 내가 그의 다른 여자를 확인한 게 벌써 수십 명 째였다. "필요 없어, 끝이야~" 그: "진짜 그 여자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너랑 못 헤어져, 나한테는 너뿐이야" 그의 말을 듣는데 순간, 참을 수 없는 열기가 치밀어 올라왔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경멸하듯 그를 쳐다봤다. 눈길을 피하며 그가 나를 놓았다. 곧바로 뒤돌아서서 그에게 멀어졌다. 그가 나를 다시 세차게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의 손을 뿌리쳤다. 다급하게 그가 또다시 나를 잡았다. 그의 손을 계속 뿌리치고 저항하다가 그의 애절한 얼굴표정을 보자 역겨움이 올라왔다. 손을 뻗어 힘차게 그의 따귀를 때렸다. 화가 나서 싸버린 감정이 그의 얼굴에 손자국으로 새겨졌고 내 마음은 잿더미가 되었다.
# 애 : 슬픔
심과 영에게.
친구들아, 너희들은 갈 곳 없는 나에게 집을 내어준 친구들이었어. 고등학생 때 친구가 되고 도시락을 못 싸갔던 나에게 그 시절 나눠준 밥 한 숟가락은 나를 살게 해 주었어. 가족으로 인한 상처로 삶을 마치고 싶다고 느꼈을 때 둘은 사는 이유였고 희망이었어. 그런 친구들을 안 보고 살게 된 게 벌써 5년째다.
상실감이 너무 컸어. 이혼을 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큰 상실이었어. 그거 아니? 깊은 슬픔에 빠지면 질식되지 않으려고 눈이 살겠다고 어푸어푸 물을 뱉어내더라. 그건 내가 너희들을 그리워하며 싸버린 깊은 슬픔의 '결정(結晶)'이었어. 자주 너희들을 생각해. 옛날 사진을 보면 내 곁엔 늘 너희들이 있거든. 우리의 인연이 그곳에서 멈춘 건 안타깝지만 아쉬움은 없어. 우리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실존하기 때문에 다시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는 않거든. 우리 언니가 부러워할 정도로 너희와 나의 진하고 충만했던 시간들이 그때 그 순간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어. 억만금의 가치보다 값진 우리의 추억만으로도 벅찬 감사를 느껴. 너희들을 안 보고 사는 게 종종 슬프지만 그 슬픔마저도 내 안에 따뜻한 온기로 남아있어.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친구인 너희 둘에게 마지막 인사가 고마웠다는 말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게 유일한 나의 아쉬움이야. 너희들이 매일 행복하길 기도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해.
# 락 : 즐거움
남자 1: "분수경험 있는 사람?"
또래 친구들과 농담처럼 이야기하다가 야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분수, 어딘가 모르게 과장되고 허무맹랑해 보이는 그 광경이 화두에 올랐다. 남자아이가 자신 있게 물었다. 여자아이들 중 손을 든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 게 진짜 가능해?" 그거 야동에서나 나오는 거 아니야?
40살 전에는 섹스가 좋은 줄도 몰랐는데 불혹에 신세계로 들어섰다. 섹스가 좋아졌다. 애무를 하거나 받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40세 만났던 남자친구가 첫 감각을 깨웠다. 그 덕분에 섹스가 좋다고 느꼈고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지는 걸 경험했다. 그렇지만 첫 관문을 통과했을 뿐 분수는 미지의 세계였다.
44살에 사귄 남자친구와 1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뜨거운 키스, 애무, 사랑스러운 말, 배려하는 그의 손길, 몸짓, 무엇 하나도 부족할 게 없는 움직임. 호르몬이 자극되면서 시베리안 허스키가 침을 흘리듯 몸에서 액체가 흘러나왔다. 폭풍 같은 시간이 이어지면서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쌀 것 같은 기분에 몇 번을 참았다. 이전에도 남자 친구와의 잠자리에서 참을 수 없었던 느낌이 있었는데 다시 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온몸에 힘을 주고 있는데 남자 친구가 "참지 마, 싸줘~"라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겠는데 참지 말라는 말에 긴장이 풀린 건지 참다가 온몸이 경직되어 버린 건지 모르겠다. 그 순간 생리가 터지듯, 양수가 터지듯, 세찬 오줌발이 풍선 안에서 터져 나오듯 몸에서 폭포수 같은 물이 팡하고 터지며 침대가 흠뻑 젖어버렸다.
분수가 터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흥분의 도가니 속에 즐거움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는 희열의 몸부림에 분수가 나왔다. 첫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