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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내 집 구경하기

셸 위 댄스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Sep 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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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별별챌린지 3기 54일 차




나무쑥갓 : 마거리트 (꽃말: 행복, 진실한 사랑, 예언, 사랑을 점친다



내 집 구경하기


2005년 빌라 계약 만기가 5월이었다. 만기 2개월 전인 3월에 재계약과 관련된 협의를 보게 되었다. 보통 전세는 2년 계약이라서 계약기간을 준수해야 했다.


다른 집으로 이사하자니 이사비용도 만만치 않고 1년 후에 임대 아파트로 입주를 해야 해서 다른 집을 알아보더라도 단기계약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전셋집 집주인이 계약 연장을 해주기로 했기 때문에 이사를 갈 필요는 없었다. 임대 아파트 입주는 아무리 빨라도 8월 이후가 될 것이라고 공시되어 있었다. 전세 계약 연장은 해주기로 했으나 계약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었다. 집주인과 계약 만기에 대한 협의를 하고 싶었는데 집주인은 그렇게까지 편의를 봐줄 생각은 없는듯했다. 부동산 사장님과 의논한 끝에 집을 빼기 위해 함께 노력해 보자고 하며 전셋집 재계약을 했다.


이후 시어머님이 쓰러지시고 정신없는 5개월을 보냈다. 그사이 친정엄마의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야근이 없는 회사로 이직했다. 시어머님이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매달 요양병원에 가는  고정 스케줄이 생겼다. 매달 월초가 시작되면 바로 중순이 되고 금방 말일이 되었다. 1년이 넘어갈 때쯤 대학병원에서 청구됐던 병원비 1600만 원을 모두 갚았다. 1년 동안 남편의 소득은 신기하게도 제자리걸음이었다. 나는 그동안 직장을 한 번 더 이직했다. 아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와야 했으므로 너무 늦게 끝나지 않는 야근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이직한 건 순전히 이전 통신회사보다는 급여를 조금 더 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병원 빚을 다 갚고 나서 이후에는 임대아파트입주를 위해 다시 돈을 모았다. 나의 노트에는 돈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내가 입주하게 될 아파트 현장을 지나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아파트가 올라가는 장면을 보면서 수시로 뭉클해지곤 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어엿하게 모든 모양을 갖추고 있어서 바로 인근에 차를 세워놓고 넋 놓고 보기도 했다. 현실 같지 않았던 아파트 입주가 목전에 다가왔다.


분양 전에 배포됐던 조경도를 얼마나 자주 봤는지 모른다. 우리 아파트는 총 세 개의 단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1단지와 2단지는 일반분양했고 3단지는 임대 아파트 분양이었다. 1,2단지와 3단지는 오정 대로를 사이에 두고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1,2단지는 시내 쪽과 연결됐고 3단지 바로 옆은 허허벌판이었다. 한쪽이 모두 논으로 되어있다. 건물도 동떨어지고 시내랑은 좀 더 거리가 있었지만 입주 전부터 나는 1,2 단지보다 3단지인 나의 집이 더 좋아 보였다. 아파트 뒤쪽에 아무것도 없어서 훨씬 시원한 느낌이었다. 분양 전부터 미리 나왔던 조경도를 여러 번 봤기 때문에 완공되어 가면서 더욱 설레곤 했다. 특히 아파트 주변을 따라 작은 천이 조경도에 있어서 상상을 하곤 했다.


임대 아파트가 다 지어지고 나서 주택공사에서 공문이 왔다. 하자 보수 기간 동안 미리 아파트를 점검하고 주택공사에게 하자 부분을 체크해 주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사 날짜가 임박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우리 집 전셋집은 계약이 안된 상태였다. 조급한 마음이 들어서 부동산 사장님께 의논드렸더니 집을 다른 부동산에도 내놔달라고 하셨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전세를 여기저기 부동산에 더 내놓고 새로 이사 갈 아파트를 보러 갔다.


드디어 완공된 곳을 보러 간다는 생각에 얼마나 마음이 들떴는지 모른다. 3단지가 있는 곳으로 입구가 별도로 나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는데 내천 모습이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라서 약간 실망감이 올라왔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공터 중에 개인 소유의 땅이 있는 건지 한쪽 공터에는 농사를 짓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서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주차장이 있는 집이라니 살짝 마음이 요동쳤다. 당시 살고 있던 빌라 집에는 주차장이 있다기보다는 길에 세워두는 방식이었다. 다행히 주차공간 때문에 싸움이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고가 나면 모두 소유주 책임이었다. 아파트 안에 줄이 그어져 있는 확실하고 안전한 주차장이 썩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했다. 조울증이 있는 사람처럼 작은 것 하나에 좋았다가 작은 것 하나에 실망하기도 하며 마음이 널뛰고 있었다.


1동 앞은 아직 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 먼지가 많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온통 엘리베이터 안에 비닐이며 보호대(?)들이 잔뜩 붙어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전단지와, 명함들이 불규칙적으로 붙어있었다. 9층 도착을 알리는 엘리베이터 소리가 어찌나 경쾌하던지 소리를 지를 뻔했다. 5호 앞에서 문을 열기 전 대문을 보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왠지 이 문을 열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문 앞에서 살짝 머뭇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집안이 휑 했다. 100번도 넘게 상상했던 모델하우스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집인 데다가 들어서자마자 하자가 눈에 띄었다. 상상의 나래가 넓고 환하게 펼쳐지려다가 하자가 보이자 나의 태세는 다른 모드로 재정비됐다. 주차장 입구부터 돌고래처럼 소리 지르고 물개처럼 환호의 박수를 치다가 돌연 매의 눈이 장착됐다. 노트를 꺼내고 하자 보수할 곳들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딱 봐도 하자로 보이는 게 있는가 하면 어떤 건 하자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 것들도 있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5월이라서 아직 많이 덥지 않았지만 바람이 들어오면 좋을 것 같아서 창문을 열었다. 양쪽 문을 열어놓자 맞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을 느끼기 위해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시원한 공기를 느꼈다.


바람이 불어오며 머리카락이 날리는데 기분이 썩 상쾌했다. 바람결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뒤 베란다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뒤 베란다에 펼쳐진 끝을 알 수 없는 공터를 쳐다봤다. 지평선처럼 이어진 평지의 땅, 시골 땅도 아닌데 부천에 농사짓는 곳이 이렇게나 넓게 펼쳐져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5월의 논은 그 빛깔 자체만으로 싱그러움을 머금고 있었다. 가지런한 벼를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발끝에서부터 뭉클한 감정이 올라오면서 머리끝까지 전율하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을 깜박거리면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집을 보며 울면 왠지 너무 이상할 것 같아서 눈길을 먼 곳을 응시했다. 눈물이 다시 눈 안쪽으로 흡수된 후 수첩으로 눌길을 옮겼다.


무엇이라도 놓칠세라 집을 둘러보며 하자 보수를 체크했다. 내가 살게 될, 나의 아파트를 하나하나 아주 꼼꼼하게 살피며 메모를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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