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많은 사람이 있다. 두려움의 대상도 각양각색이다. 귀신과 같은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것은 무서울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실제 하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이들이 있다. 반면 사람은 안 무서워하는데 귀신처럼 불가사의한 대상을 무서워하는 이들도 있다. 사람과 귀신 말고도 두려움의 대상은 다양하다.
천재지변, 불가사의한 현상, 불, 물, 동물, 특정 물체나 현상 등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인간이 저지르는 살인, 폭력, 사기 등 범죄, 악행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법과 질서가 필요하기도 하다.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시기, 질투, 부러움, 자만, 멸시 등 부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사랑, 인정, 친분이란 좋은 감정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두려움의 종류가 많은 만큼 인간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나름대로 방법을 찾는다.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각자에게 맞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나 견디기 힘든 고통,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종교에 의지하기도 한다.
나는 골든 리트리버처럼 사람을 좋아한다. 처음 사람을 접할 때 사람들의 장점이 먼저 보인다. [저 사람은 키가 크구나, 저 사람은 목소리가 좋네. 와우~ 저 사람은 눈이 예뻐, 어쩜 저렇게 말을 잘할까? 자기 일에 프로페셔널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외모랑 상관없이 멋지네, 술을 잘 마신다니 내가 못하는 걸 하는 사람들 부럽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진짜 최고로 멋진 듯, 센스 있고 옷 잘 입는 사람들 멋있고 부러워,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분들에겐 늘 배울게 많지, 성공한 분들은 자기만의 멋이 있어서 존경해,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들은 빛이나, 외모가 훌륭한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지, 다정한 사람 친절한 사람들은 나를 감동시킨다. 머릿결이 좋거나 향이 좋은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좋다. 가끔은 너무 좋아서 주변에서 킁킁거리고 만지고 싶은 유혹을 참아야 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의 좋은 점을 보고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변태스러울 만큼 사람을 좋아한다. 최대한 정상인처럼(?) 행동하기 위해 가끔은 부단히 노력한다. ㅎㅎㅎ. 부담스러워할까 봐 조심할 때가 쥔짜루 많다.
그러나 나는 두려움에 몹시, 아주, 심하게 취약하다. 귀신, 사람, 관계 등 사람들이 느끼는 모든 종류의 두려움에 공감하고 전율한다. 칼, 피, 범죄 상상만 해도 무서운 말들. 겁이 많아서 그런 것과는 의식적으로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피할 수 있으면 피했기에 나와는 거리가 있던 일들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날(2006년, 남편과의 싸움)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대 환장 핵무기급 공포였다. 어린 자식을 두고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지키고 싶었던 가정, 결혼생활을 유지하려고 걸었던 나의 도박과도 같은 행동을 오랫동안 후회했다.
칼을 쥐고 번쩍 올렸던 그의 손이 내려갔다. 나를 밀치고 일어서는 그에게 다시 한번 소리쳤다. "나가려면 나 죽이고 나가~" 그가 다시 칼을 들고 나를 찌르려고 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두려움에 벌벌 떨리는 내 몸의 흔들림을 확인했다. 찰나라는 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칠 수 있음을 경험했다.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두려운 마음이 나를 다른 감정 상태의 공간으로 데려갔다. 칼에 찔리고 내가 죽는다면 귀신이 되어서라도 너를 데리고 가겠다는 피의 복수 같은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두려운 마음이 커지더니 '진짜로 죽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면서도 비굴하게 느껴졌다.
공포는 소리를 지르게 했고, 얼마나 울었고 어떤 표정을 짓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그곳은 지옥이었다. 나의 소중하고 행복한 공간, 그렇게 오매불망 마련한 나의 집이 지옥의 현장이 되었다. 어린 아들은 부모의 싸우는 소리에 어느 순간부터 울고 있었던 건지 모르게 아들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 나는 아들을 쳐다봤다. 그도 아들을 본 것일까? 남편이 칼을 내려놓고 집을 나갔다. 나는 울고 있는 아들을 안고 계속 울었다. 울다가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말하며 놀라서 울고 있는 아들을 달랬다.
그날의 공포는 지금 생각해도 그저 처절하고 아찔할 뿐이다. 결코 그런 일은 만들지 말아야 했다. 내가 다치지 않고 그렇게 일이 마무리된 건 그 모든 순간이 그저 큰 복, 운이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사건,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도 있는 비극이다. 그날의 일을 나는 잊을 수 없었고 기억하기로 했다.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어린 아들을 키우려면 다치지 말고 건강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