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싶었다.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사춘기 때 시작됐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떤 인간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삶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인간의 유한한 삶에 의미라는 게 있는 것인가? 나에게 삶은 어떤 의미인가? 세상에 던져진 나는 필요한 존재인가? 나의 쓸모는 무엇인가? 나는 누리는 자인가? 나는 무엇인가? 살아있다는 건 실재하는 건인가? 환상인가? 꿈인가? 나는 실재하는가? 나는 나인가? 나는 무엇인가?' 고민을 쏟아냈다. 그리고 스스로 찾아낸 답을 기록했다.
나는 살아있다. 죽기 전까지 나는 이곳에 실재한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질문. 실재 하는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숨 쉬고 움직이는 건 나라는 존재다. 그런 것 같다. 이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다. 거울을 바라보는데 비치는 피사체가 '나' 인가보다. 꼬집지 않아도 살아있음을 느낀다. 추위, 더위, 고통등 모든 감각이 느껴진다. 태어난 것이 내 의지였는지 모르겠다. 죽음도 나의 의지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삶은 내 의지대로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 올 때까지 살아내야 한다. 딱히 마음에 드는 피조물은 아니다. 그러나 모 아주 나쁘지 않다. 나름 마음에 든다. 이 몸을 가지고 살아내 보겠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이왕 살아야 한다면 즐겁고 재밌게 잘 살아야겠다. 의미 있는 삶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어린 시절은 내 인생의 키를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태어난 시대 배경, 지리적 배경, 가정환경 등 모든 것들은 태어나면서 주어진 나의 선택이 아닌 세상의 선택으로 부여된 생이었다. 유년기를 보내고 사춘기가 되었을 때부터 늘 고민했다. 잘 살고 싶었다. 잘 사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고, 질문했다. 나라는 생명체를 잘 다루고 생의 축복을 누리고 싶었다. 주어진 것에 집중했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했다. 부모님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세상에 의해 좌지우지됐던 유년은 이미 과거가 되었다. 나는 성인이 되었고 내 인생의 키를 쥐고 있었다.
잘 산다는 건 무엇일까? 늘 때마다 생은 화두를 던진다. 2006년 28살에 나는 꿈이었던 내 집 마련의 기틀을 마련했다. 임대 아파트는 시간이 지나면 버젓한 우리 집이 될 것이었다. 꿈을 이루며 살아가고 싶었고, 단계를 밟고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했으니 결혼생활도 잘 유지하고 싶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다. 이는 부부는 싸움을 해도 화합하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부부 싸움에 실제 칼이 등장하는 위험천만한 일이 발생했다. 평소에 겁이 많고 위험은 최대한 피해 가려고 하는 나의 신념을 벗어난 행동이었다. 당시 내 생각이 그렇게 극에 달했던 건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었다.
2006년부터 남편과 잘 살 잘 보려고 둘째를 가지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반년 전 바로 임신은 됐었지만 임신 초기에 유산이 됐다. 그날 내가 칼을 가져오면서 사생결단의 다짐을 했던 건 몸 상태가 한몫을 했던 것 같다. 남편은 그날 칼까지 등장한 부부 싸움 이후 집을 나갔다가 하루 만에 들어왔다. 며칠 동안 나는 몸 상태에 집중하고 있었다. 임신 경험이 있다 보니 생리 예정일 이전부터 미세하게 느낌이 있었다. 생리 예정일이 지나고 있었다. 화해 다운 화해를 한 것도 아닌데 이대로 임신이 되면 그것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무겁게 여겨졌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 그래서 유행가 노래가 되기도 했겠지만 슬픈 예감이 현실이 됐다. 임신, 번민하는 마음이 가득한 상태에 임신이 되었다. 남편에게 알리는 게 망설여졌지만 임신 초기에 고단함과 피곤함 때문에 마냥 미룰 수도 없었다. 생명, 아이의 존재 앞에 나의 고민은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기쁨의 눈물이 아닌 서글픈 눈물이 흘렀다. 1년 전 남편과 잘 살아 보자고 다짐했었다. 나름 신경 쓰고 노력해서 아기를 가졌는데 내 상황이 변했다고 생명을 내 마음대로 없앨 수 없었다. 가장 슬픈 임신을 마주했다. 누구에게 내색하지도 못하고 멍한 날을 며칠 보냈다. 뜬금없이 슬픔이 올라오면서 자주 눈물이 났다. 그래도 결정을 해야 했다.
나는 결국 이 또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임신 사실을 말하고 차분히 이야기를 했다. 진짜 나랑 잘 살고 싶은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또 집을 나갈 건지, 진지하게 물었다. 둘째를 낳고 살려면 나에겐 약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집을 나가는 건 나는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쳤다고 말했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혼하겠다고 말했다. 이전과 똑같은 패턴으로 각서를 받았다. 그러나 내가 그때 쥐어짜 낸 마음은 나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수분이었다.온 힘을 다해 마지막 남아있던 감정들을 짜내서 가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잘 살고 싶었다. 임신을 계기로 힘겹게 다시 가정생활을 유지하고 잘 살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10주 만에 또 하혈이 시작됐다. 유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