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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셸 위 댄스 -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154화

별별챌린지 3기 - 62일 차




밀토니아 (꽃말: 슬픔은 없다)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나는 나의 이기심을 확인했다. 끝 간 데 없이 흘러가는 이기심이 무서웠다. 그는 외박과 집을 나가는 행동이 잦았다. 손가락을 헤아리기에는 양손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걱정하고 겁이 났었다. 그런데 2006년, 부부 관계가 끝이라는 생각이 선명해지자 그가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 않는 것이 그렇게 편안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지난 밤에도 어김없이 그는 죽겠다는 말을 했다. 아침이 되어 전화기를 확인해 보니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아들을 챙기고 출근길에 새벽에 든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전화기를 보며 '수신차단을 할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부부라는 관계를 끝내려면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 그가 죽는다면 이별이 제일 자연스럽고 간단할 것 같았다. 한번 스치듯 떠오른 생각이 이별을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자 서늘이 느껴지고 소름이 돋았다. 막상 부부의 인연을 끝내려고 마음이 굳어지자 모든 게 간단해졌다. 머리로,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감정의 일렁임은 마음속 어디를 둘러봐도 찾기 어려웠다. 평소 심각할 정도로 나는 감성과 공감이 풍부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혼을 결정하자 냉혈한이 되어있었다. 머릿속이 분주했다. 이별에 대한 경우의 수들을 생각했다. 모든 경우를 생각해 보더라고 수신차단은 안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경찰서에서 전화가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연락을 잘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 아들을 챙기고 불안해할까 봐 아들이랑 한참을 놀아주었다. 그에게 전화가 없는 것이 내심 고마웠다. 아들을 재우고 12시가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핸드폰과 시계 알람을 해두고 혹시 모르니 전화기는 진동으로 해두었다.


'지잉~ 지잉~' 정적을 깨우는 요란한 진동벨 소리에 눈이 떠졌다. 전화기를 보니 '남편'이라고 떠있다. 새벽 2시가 넘었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는 아무 말이 없다. "할 말 없으면 전화 끊을게~"라고 말했다. 그가 술에 취해서 무슨 말인가 하는데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전화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어제 죽는다는 사람이 안 죽고 전화를 했다는 것에 실망감이 들었다. 바닷가에 왔는데 빠져 죽겠다고 말한다. 나에겐 더 이상 협박이 되지 않는 말을 그가 반복했다. 할 말이 없었다. '바닷가? 이 와중에 바다를 갔구나 '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나, 내일 출근해야 해서 자야 해"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는데 수화기에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의 말을 다 듣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그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전화기를 무음으로 돌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고 출근을 하고,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 출근해서 메모지에 기록을 시작했다. 이혼 관련된 기사들도 찾아보며 몇 기지를 적었다. 1년 반전에 이혼을 준비할 때 알아봤었기 때문에 이혼에 대한 상식이 어느 정도 정립된 상태였다. 결혼 생활 동안 그가 번 돈과 그가 쓴 돈, 나에게 생활비 조로 가져다준 돈을 모두 기록했다. 그리고 내가 번 돈을 기록했다. 임대 아파트 보증금과 대출금 잔액도 기록했다. 매달 나가는 고정지출과 사소한 재산목록도 기록했다. 이혼을 하려면 필요한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유책 배우자라는 걸 증빙할 서류들을 카피해 놨다. 낮 동안 모르는 전화나 경찰에게서는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퇴근을 하고 아들을 챙기고 밤이 깊어갔다. 이틀 동안 그는 낮부터 밤까지는 전화가 없었다. 이틀 모두 새벽 2시 이후에 전화가 왔다. 3일째도 같은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 책을 여러 번 읽어주었다. 아들이 자는 걸 보고 나서 12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기계적으로 자기 전에 알람을 한 번씩 확인했다. 핸드폰을 소리로 해놓고 잠을 잤다. 목요일쯤 되면 더욱 피로가 겹쳐지면서 진동소리를 듣지 못했다. 데자뷔인지 비몽사몽간에 시끄러운 벨 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 2시, '남편'이라고 발신자가 핸드폰에 떠있다. 받고 싶지 않았지만 전화를 받았다. 혹시 남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약간의 기대를 했는지도 모른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남편의 목소리에 실망감마저 몰려왔다. 짜증도 몰려왔다. '왜? 죽지도 않고 새벽마다 전화를 하는 걸까?' 벌써 3일째였다. 짜증을 낼 수 없어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는 3일째 되는 날은 차가 다니는 다리 위라고 했다. 다리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 '자동차 사고?'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기적인 마음은 <자동차 사고 = 자동차 보상>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나의 이기심과 잔인함은 아직도 진행 중인 것 같았다. 그가 죽겠다고 소리치는데 나에겐 보상이란 상황이 떠올랐다. "제발... 전화 좀 안 했으면 좋겠어"라고 그에게 사정 조로 말했다. 그가 다시 죽겠다고 하는데 "정말 미안한데, 피곤해서 자야 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3일 연장 그는 죽는다는 전화를 했다. 그동안 나는 그에게 단 한 번도 죽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결국 죽지 않았다. 어이없었다. 나는 몇 년 동안 무엇을 겁낸 것일까? 그는 죽을 생각이 없는듯했다. 아니, 죽을 용기조차 없는듯했다. 그가 죽겠다고 했던 건 모두 나를 협박하기 위한 '쇼'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이혼이 아닌 사별을 하면 좋겠다는 나의 작은 바람은 어쩐지 요원할 것 같았다. 몇 년 동안 살면서 그가 죽겠다고 한 말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그 시절 절박했던 마음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며칠 동안 그에게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경찰서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그가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집에 들여보내달라고, 짐을 가지러 오는 거라고 말했다. 문을 열기 싫었지만 문을 열어주었다. 집안으로 그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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