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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완벽한 타인

셸 위 댄스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155화

별별챌린지 3기 - 63일 차




엽란 (꽃말 : 거역, 거절)



완벽한 타인


쾅~.... (침묵)

(귀를 기울이다가) 허~ 휴~


문밖으로 그가 집을 나서고 그의 발소리가 완벽하게 멀어졌다. 그가 나가는 것을 확인한 하늬바람이 나의 주변을 감싸듯 다가왔다. 하늬바람과 손잡고 상쾌한 산소가 동행한 듯 내 주위에 신선한 산소방울이 방울방울 뿜어지는 것 같았다. 숨이 쉬어졌다. 급하게 연신 내뿜었다. 잠시 후 숨을 쉬기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그가 집을 나갔는데 그렇게 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게 어색했다. '아~ 끝이구나, 이제 끝이다. 더 이상 나는 할 게 없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다는 자기 위안, 자기 연민, 자기만족(?), 만족이란 말이 어울리진 않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최선을 다한 후 그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평온함이 깃들었다.


그가 집을 나갔다. 내가 28살이었던 때였다. 그날 그는 마지막으로 집을 나갔다.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년 동안 그와 지낸 시간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서러움, 억울함, 슬픔 등의 아픈 감정이 더 이상 들지 않았다. 허탈했다. 무엇을 부여잡으려고 했던 것일까? 결혼이 무어라고 나는 그걸 잡고 놓지 않으려고 했을까? 결혼생활이 끝나면 인생이 끝날 것만 같았다. 이혼녀라는 낙인이 찍히면 인생의 낙오자로 공공의 적, 죄인이 될 것만 같았다.


용기라고 말하기엔 서글프다. 순례자라고 말하기엔 한없이 부끄럽다. 무엇이든, 무어라 하든, 상관없었다. 타인의 평가, 세상의 편견, 그딴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 숨이 쉬어지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신선한 바람, 산소가 주위를 맴돌며 숨 쉬는 걸 도와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나라는 사람은 그 어떤 순간도 그냥 나일뿐 변하지 않을 터였다. 타인의 말이, 시선이 돌이 되어 던져질 것이다. 그들의 공격에 상처 입고 다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간혹 피하는 요령도 생길 것이다. 간사하게 변한 마음이라고 말하기엔 그간의 농도가 짙었다. 켜켜이 쌓였던 일련의 일들이 나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변하게 했다.


이혼하면 죽을 것 같았던 나의 고집, 아집은 일순간 사라졌다. 그때 나의 바람은 한 가지였다. '이혼만 하면 좋겠다, 그를 안 보고 살고 싶다, 그와 가족관계를 끝내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살만하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몸이 아직 안 좋았다. 몸이 축난다는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다른 때도 아니고 유산한 직후라서 고단했고 힘든 몸 때문에 기운이 없어서인지 마음도 기운 내기를 포기하고 가만히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몸에 힘이 빠지고 마음마저 힘이 빠지니 차갑고 단단한 빙산처럼 그에 대한 마음이 싸늘해졌다.


빙산처럼 서늘하게 굳어버린 내 앞에 그가 며칠 만에 나타났다. 짐을 가지러 왔다고 하는 그를 집안으로 들였다. 그가 짐을 싸고 있었다. 그의 짐이래 봐야 옷 몇 가지가 전부였다.


혼인신고를 한 사람들이 헤어질 때는 법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그래야 완전해진다. 그러나 심정적이 이별은 각자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된다. 우리가 우리가 아닌 사이가 된 건 그날 그가 집을 나가면서 완성됐다. 그날 나에게 그는 완벽한 타인이 되었다.


그가 짐을 다 쌌다. 그가 짐을 싸는 동안 나는 그와 일정 거리를 두고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그가 집을 나가면 문을 잠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짐을 다 싼 것 같은데 거실에 나오더니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그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수도 없이 말했던 것이었다. 한 번이라도 더 집을 나가면 이혼한다는 각서가 책상에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 날짜 잡아서 법원 가면 될 것 같아"


나의 말에 갑자기 그가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말했다. 말문이 막히고 그가 하는 행동에 소름이 끼쳤다. 불과 며칠 전 그 장소에서 나를 칼로 찌르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빌지 마, 무서워! 제발, 나가줘~" 그가 돌발행동을 할까 봐 겁이 나고 무서웠다. 제발 나가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미 끝난 사이고 나에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꿇었던 무릎을 풀더니 편안한 자세로 양반다리를 틀고 앉았다. 완강한 나의 표정에 포기한 건지 그의 얼굴 표정이 일순간 차갑게 변했다. "나도 빌고 싶지 않았어, 형이 빌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빈 거야~" 그가 하는 말이 놀랍지도 않았다. 그를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오늘은 이대로 가줘, 나 너무 무서워, 짐 싸간다고 해서 들어온 거니까 짐 싸서 나가줘~ 큰 소리 나면 경찰 부를 거야~"


이혼에 대한 이야기는 전화로 하자고 말하고 그를 집에서 무사히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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