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56) 공증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156일

별별챌린지 3기 -64일 차




금송 (꽃말: 보호)



공증


'모든 끝맺음은 나름의 슬픔을 갖고 있으니, 새드 엔딩의 반대말은 아직 못 배웠습니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배우 김태리 (고애신 역)의 대사다.


좋은 이별이 있을 수 있을까? 모든 이별에는 나름의 슬픔이 깃든다. 하여 이별은 sad ending이 되는가 보다. 혹여 happy ending 이 있더라도 그건 결과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고 이별의 전조, 과정에서 당사자들 사이에는 나름의 아픔 혹은 슬픔이 있기 마련이다.


이혼, 피하고 싶었던 결혼생활의 파국을 받아들였다.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허상이었다. 싸우는 것도 지치고 평온하게 그저 숨 쉬며 살고 싶었다. 어린 아들 앞에서 싸우는 것이 죄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부부의 개념, 가족의 개념이 어떤 건지 생각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했다. 결국 살아야, 내가 살아있어야 인생의 의미, 가족도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다.


죽을 각오로 산다는 말이 있다. 죽지 못해서 산다는 말도 있다. 나는 죽기 싫어서 죽을 수 없어서, 살고 싶어서 이혼을 하기로 했다.


그에게 며칠 동안 연락이 없었다. 이혼하기 전 공증 서류에 서명할 것을 요청한 후였다. 내가 직접 작성한 공증 서류에는 사소한 부분도 모두 기록을 해두었다. 이혼에 이르는 경위, 재산분할에 대한 상세한 목록등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6년 정도 함께 살면서 마련한 건 임대 아파트와 자동차 경차가 전부였다. 임대 아파트는 보증금 35백만 원 중 대출이 70%였다. 자동차는 할부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서류를 확인하더니 이혼에 바로 응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연락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그와 할 말이 없었으므로 이혼 날짜를 협의해서 법원에 갈 때 그때 딱 한 번 만나자고 전화로 이야기해 둔 상태였다. 만나는 장소는 반드시 밖에서 만난다는 점도 강조했다.


결혼생활 5년 동안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도 나는 늘 돈을 벌었다. 몸조리를 했던 한 달이 안 되는 시간 동안만 소득이 없었을 뿐이다. 둘 다 번 소득이 비슷할 때도 가정에 보탬이 되는 건 내가 더 컸다. 남편이 용돈을 더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혼을 하기로 한 과거 2년 전 소득으로 하면 그 편차는 더 벌어졌다. 게다가 시어머님 병원비까지 계산하면 그가 나에게 보태준 생활비가 2년 동안은 전무한 셈이었다. 이혼 사유와 남편이 유책 배우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위자료도 청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증에 위자료 내용은 넣지 않았다.


목표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목표는 그와 안전하게 이혼하는 것이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를 궁지로 몰라서 그가 공격하도록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양육비에 대한 내용을 적으려다가 그것 또한 적지 않았다. 그에게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엄마가 있었고 그가 엄마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양육비를 받아야겠다면 이혼 후에라도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권리라는 점도 모두 확인해 놓은 상태였다.


중순이 지나면 곧 신용카드 결제일이 다가올 터였다. 몇 년 동안 신용카드 결제일에 내가 오히려 돈을 송금해 주는 형편이었다. 시어머님 병원비와 본인 통장에서 나가는 기본적인 돈이 그의 소득보다 많은 상태였다. 그가 집을 나갈 때 차를 가지고 나갔었다. 나는 공증 서류에 자동차 항목도 넣어둔 상태였다. 그가 자동차를 안 준다고 하면 중고 자동차라도 사야 할 형편이었다. 자동차는 나에게 넘겨주면 내가 그에 응당한 돈을 주기로 해둔 상태였지만 모든 것이 불투명했다.


친정엄마가 부천역 근처 심곡동에 이사를 간 상태라서 아들 유치원을 옮긴 상태였다. 친정엄마가 사는 동네에서 우리 집까지 이동시간은 차로도 20분이 넘게 걸렸다. 그러나 소득을 더 벌기 위해 직장을 이직한 상태였기 때문에 당장 친정엄마의 손을 빌려야 했다. 아들이 유치원에서 끝나는 시간과 내가 일이 끝나는 시간에 공백이 존재했다. 그 공백 시간 동안 친정엄마가 아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아들을 아침저녁으로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려면 반드시 이동 수단이 필요했다.


그가 돈이 궁한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재산목록의 순자산 가치로 보면 우리가 6년 동안 모은 돈은 1,400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임대 아파트 보증금 3500만 원 중 대출이 2450이므로 순자산이 900여만 원, 자동차는 아무리 많이 가격을 쳐주더라도 400만 원 다였다. 임대아파트 계약금은 순수하게 모두 내가 모은 돈이었다. 그의 신용카드 결제일에 그가 돈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시기에 협의를 종결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집을 나가 있는 전달에도 200만 원을 송금해 주었다. 그에게 500만 원을 송금하는 것으로 할 테니 이혼에 협의하는 게 어떨지 다시 물어봤다. 그 후 그는 며칠 더 고민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25일쯤 돼서 그에게 연락이 왔고 공증 서류에 서명 후 이혼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 그와 법원 앞에서 만나서 공증 서류에 둘 다 서명을 하고 공증사무실에 들어갔다. 그는 공증사무실에 본인확인 절차를 위해 잠시 얼굴을 비추고 신분증을 맡긴 후 담배를 피우러 나가있었다. 공증업무를 보는 법무사님이 공증 서류를 읽더니 위자료를 무조건 받아야 하는 사안인데 왜 위자료 금액과 양육비 금액에 대한 내용이 없는지 나에게 슬쩍 물어봤다. 나는 그에게 내용 다 알고 있지만 "저는 이혼만 하면 됩니다"라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둘 다 동의한 서류를 공증받고 나란히 법원으로 향했다. 우리의 이별에도 나름의 슬픔이 깃들었다.


#장하늘 #장하늘발전소 #장하늘브런치 #하늘상담소 #셸위댄스 #공증 #금송 #협의이혼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