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체정보, 은행연합회 등록에 대해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 핸드폰의 경우 기기값은 서울보증보험증권을 끊게 돼서 연체정보가 공유된다. 즉 옛말로 하면 신용불량 등재가 된다. 그러나 핸드폰 통신요금은 연체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 즉, 납부를 안 할 경우 민사는 진행되더라도 신용상 불이익은 없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신용카드에 청구되지 못하도록 사고신고를 한 것이다. 급하게 처리한 일이었지만 옳은 처신이었다.
나는 핸드폰 대리점에 방문했을 때 이미 보이스 피싱범들이 소액결제를 많이 한걸 알고 있었다. 다행히 통신요금을 납부하지 않는다고 신용불량이 등재되진 않는다. 문제는 첫 금액 200만 원이 신용카드에 청구돼서 변제를 미룰 수 없었다. 신용카드 연체 시 바로 신용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억울한 건 내 몫이지 그들의 몫이 아니다. 보이스 피싱을 당했다고 신용카드사에 신고했으나 소용없었다. 신용카드사 상담직원은 내가 개인정보를 보내줬기 때문에 내 탓이라고 했다. 갚지 않으면 모든 불이익을 내가 당한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첫 결재금액은 결재했고 신용카드를 분실신고 했다.
경찰서에 다녀오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때 신용카드 청구서가 두 번째로 이상하게 청구됐다. 두 번째는 400만 원이 가까이되는 청구금액이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신용카드사에 전화를 걸었다. 새롭게 발급받은 카드에 보이스피싱건이 청구된 걸 확인했다. 신용카드사의 정보가 노출된 것일까?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어떻게 신규발급 받은 신용카드에 이미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핸드폰 요금이 보이스피싱 신고후에 다시 청구된 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도청? 감시? 내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보이스피싱범에게 이미 노출된 건 아닐까? 이해되지 않는 카드청구서로 상상의 나래는 첩보영화 범주로 들어섰다.
나는 카드사에 다시 여러 차례 전화했다. 상담원조차 처음엔 이해를 못 하는 상황이라서 전화를 더 많이 했다. 결론은 이상하고 허무했다. 통신요금등 몇 가지 청구요금은 신용카드 분실신고를 해도 재발급을 하면 자동으로 승계된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신규카드 발급 시에 서명하는 그 많은 안내서에 이미 이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 걸 누가 다 읽어보고 숙지하고 있단말인가?
모두 내 탓이라고?
분실신고 당시 나는 상담원에게 분명하게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말했다.2차 카드청구를 막기 위해 카드분실신고를 의뢰한 것이다. 그런데도 카드 상담원은 재발급을 하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내 잘못인가? 상담원은 왜 분실신고한 카드에 청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은 해주지 않은 걸까? 그리고 몇몇 상담원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며 왜 그런지 설명하지 못했다. 몇 차례 상담원이 바뀐 상황에서야 들은 말이었다.대부분의 신용카드사 상담원조차 모르고 있던 일을 일반인인 내가 그같은 독소조항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나는 너무 화가 났다.
고객이 무슨 의도로 신용카드 분실신고 했다는 걸 신용카드사 상담원은 모르는 걸까? 내가 원한 건 보이스피싱범에게 노출된 신용카드에 더 이상 청구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상담원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담원은 친절하게 재발급을 할 건지 물었다. 그래놓고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다고 했다. 개인정보를 보낸 것은 분명히 나의 잘못이다. 이제 나도 충분히 안다. 그리고 신용카드사의 깨알같이 기록된 모든 텍스트를 숙지하지 않은 것도 모두 내 탓이다. 재발급을 안내하고 내가 모르는 내용을 나처럼 모르고 있던 신용카드 상담원은 잘못이 전혀 없다.
받아들이려고 마음을 다잡아도 나는 억울했다.
첫 잘못은 나에게 있는 게 맞다. 그러나 분실신고한 신용카드에 청구된 것까지 내 잘못이라니 온 세상이 똘똘 뭉쳐 공격하는 것 같았다. 신용카드사 상담원은 잘못이 없더라도 신용카드회사는 분명히 나에게 잘못했다. 보이스 피싱에 당한 나에게 신용카드 재발급을 안내하면 안 됐다. 분실신고만 하고 해지요청만 하라고 해야 했다. 내가 먼저 재발급 요청을 한것이 아니기에 신용카드사는 분명한 가해자이다. 상담원이 재발급을 하라고 안내했다. 설혹 내가 재발급 요청을 했어도 상담사는 업무프로세스를 숙지하고 나에게 올바른 안내를 해야했다. 신용카드 분실신고를 해도 재발급 시엔 통신요금등은연계되어 청구된다고 위험성을 알려줘야 했다. 신용카드사는 직원교육을 확실하게 해야했다.
아무리 양보하더라도 대기업이 개인을 상대로 무지에대한 책임전가를 하는것은 정말이지 너무 했다. 모든 게 내 탓이라는 말은 폭력 그 자체였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신용카드사는 업무를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한다는 것인가? 직원교육과 직업윤리의식도 없단 말인가? 그들의 치명적인 문제는 상담원들이 이부분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이 적었다는 것이다. 상담원의 무지로 인한 손해까지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상담원과 보이스피싱범들이 모두 한통속 같았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내 잘못은 어디까지일까? 개인정보를 보내고 인증번호 하나 보낸 것으로 감당하기엔 그 무게가 가혹하게만 느껴졌다. 나를 향한 가해자들이 더욱더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무척 속상하고 고통스러웠다.
300만 원의 여윳돈이 없다는 것이 당장의 문제였다. 안 그래도 부동산계약금과 중도금 때문에 모든 돈이 말랐다. 전달 200만 원 금액을 정리할 때도 주식을 손해 보고 처분했다. 여러 차례의 민원을 넣었다. 금감원민원도 넣었다. 그러나 별 이유 없이 거부당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만의 원칙만을 고수했다. 민원상담사랑 통화하는데 눈물이 났다. 결국 신용카드사 민원 담당자가 해당 카드 청구분을 한 달 뒤로 유예해 주기로 했다. 언발에 오줌 누기더라도 당장에 썩어 들어가는 발에 잠깐의 온기라도 불어넣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