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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늘 Nov 29. 2023

9) 판례를 남긴다는 것

보이스 피싱

2021.


9화


판례를 남긴다는 것


법에 무지한 개인이 법을 찾고 또 찾았다. 이의 제기를 했더니 상대방 측인 렌털업체도 반격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했다. 개인정보 노출의 책임이 나라는 것. 그러니 내실수를 책임지라는 것.


당시 내가 발견한 렌털업체는 여섯 곳, 피해 금액 수천만 원의 물품원금. 렌털업체의 채권금액으로는 1억 원이 넘는 금액. 그밖에 은행, 신용카드, 핸드폰 요금, 핸드폰기기값은 이미 서울보증보험으로 넘어가 있었다.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이 들어온 렌털업체 h사. 단 한건의 소송결과가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는 키가 된다.


소송 진행 중 사례, 즉 판례를 찾아봤다. 그러나 나 같은 피해자가 제삼자에게 승소한 경우는 찾지 못했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있었다. 내겐 희망밖에는 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다음으로 자주 찾아본 내용이 보이스피싱 피해사례이다. 직접적인 사례뿐 아니라 제2, 제3의 피해로 고통을 겪는 사례들을 찾아서 메모했다.


판결을 기다렸다. 그런데 판사는 또 한 번의 답변서를 요구했다. 답변서의 내용을 쓰기 이전에 변호사님께 다시 한번 확인을 부탁드렸다. 내가 실수 한 내용, 렌털업체가 실수한 내용, 그다음은 판사님께 부탁의 말씀을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답변서를 작성했다. 보이스 피해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를 찾아  기록했다. 그리고 짧지만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내용도 기록했다.


나의 답변서와 이의제기는 어설펐다. 그리고 법의 용어를 잘 활용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진심을 다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나의 억울함과 부족함이 단죄나 처벌이 아닌 회생의 길을 달라고 부탁드렸다.


보이스 피싱을 당하고 2년 넘게 긴 여정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렌털업체 측에서 소송취하를 했다. 판결결과가 남는다면 이건 그들에게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판례가 남게 되면 그들은 영영 나 같은 피해자에게 민사소송을 넣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원고는 피고인 나를 소송취하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들은 끝까지 똑똑하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우매한 나는 나만의 구원을 받아냈다. 공공의 구원이 안된 것이 안타깝다. 판례가 남았다면 나 같은 피해자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눈물이 났다. 드디어 큰 산을 하나 넘었다. 굽이 굽이 험난했던 하나의 여정이 끝이 났다. 이후 다른 렌털업체 쪽에 전화를 했고 각자 내용증명도 보냈다. 소송취하를 했으니 타 렌털업체도 이후 내건 은 면책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단순히 통화만으로 일처리가 넘어가는 곳도 있었고 서류를 보내달라는 곳도 있었다.


소송취하로 마무리가 된 후 서울보증보험에 핸드폰 기기값을 변제했다. 50만 원도 안 되는 기기값채무 때문에 연체정보가 공유됐었다. 소위 신용불량등재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그걸 소송이 진행 중일 때는 갚을 수 없었다. 한 건 한 건 내가 변제하다 보면 그 모든 채무를 다 갚아야 될 상황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신용과 관련된 신용카드대금, 핸드폰 기기값은 모두 변제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서에 문의하니 그 모든 돈을 받으려면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잡혀야 한다고 했다.


아~이제 형사, 보이스피싱범을 잡는 경찰도 돼야 하나? 웃프지만 법과 질서 형사소송, 민사소송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보이스피싱으로 하나씩 배워가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앓아가는  살면서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했다. 너무 괴롭고 고단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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