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하늘 Nov 30. 2023

1) 유년시절의 돈

흑수저에게 돈의 의미

1981~


1) 유년시절의 돈


우리나라예로부터 산이 많다. 초중고 학교 교가에는 00 산 푸른 정기를 받아~라는 가사가 어느 학교든 단골로 나왔다. 20세기 조선의 어린이들은 모두 산의 기운을 받고 푸르게 자랐다. 어린 시절 내 고장 달달한 향기를 품은 복숭아의 마을인 복사골, 부천에도 동내마다 산이 있었다. 도당동에는 도당산, 원미동에는 원미산 각자 동이름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산의 특징을 딴 이름도 있었다.


산은 어른과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그리고 어린 시절 산은 나에게 첫 아르바이트를 선사했다. 도당산에는 활터가 있었다. 21세기에 골프열기만큼 1980년대에는 대한의 어른들은 활을 쐈다. 취미로 활을 쏘는 기상 높은 아저씨들이 산에 마련된 활터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활을 쏘는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산 초입에는 일정표를 공지하고 그 시간에 그 길은 일반인들의 통행이 통제됐다. 활을 쏘는 사람과 과녁은 꽤 거리가 있었다. 때문에 화살을 줍는 건 고사리손의 도움이 필수였다. 나는 동내에서 몇 안되게 선택된 화살을 줍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당시 나이 4,5살이었다. 다른 알바에 비하면 아주 고료를 받는 고급 알바였다. 코를 질질 흘리며 우리 동년배들과 그 짧은 시간의 알바를 위해 몇 시간을 산 위에서 놀이를 하며 대기했다.


돈을 번다는 것, 어린 나이에 돈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돈을 모아 더 큰돈을 만드는 것이 좋았다. 돈의 쓰임 따위는 몰랐다. 다만 동전이 모며 지폐가 되고 그 지폐가 다시 더 큰 단위의 지폐가 되는 것이 기뻤다. 그건 단 하나의 목표로 귀결됐다. 엄마의 웃음, 아빠의 칭찬. 그건 어린 나에게 환희의 기쁨이었다.


가난을 알게 된 건 좀 더 나이가 들어서였다. 어린 시절 우리 동내는 대부분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었다. 때문에 가난을 알거나 느끼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다만 모든 세상이 부모와 연결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내 부모는 나의 세상이었다. 엄마 아빠가 기분이 좋으면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기분이 안 좋거나 싸우면 그건 고스란히 공포가 됐다.


엄마와 아빠가 가끔 싸웠다. 부모의 싸움은 전쟁만큼 무서웠다. 다툼의 원인은 늘 돈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린 나는 돈을 모았다. 돈을 드리자 잠깐 웃어주는 엄마가 참으로 좋았다. 잔돈, 푼돈은 엄마를 웃게 해주지 못했다. 때문에 큰돈, 지폐모으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1년 이상 돈을 모아서 엄마에게 드렸다. 그때의 엄마표정은 어린 나에게 황홀경이었다.


세뱃돈을 모았다. 가장 큰돈을 모으는 길일이 설날이었다. 친가 쪽 친지는 많지 않았지만 외가는 집안어른들이 많았다. 가가호호 방문하며 돈을 모았다. 세뱃돈만으로 단위가 제일 높은 지폐가 되면 곧바로 엄마에게 드렸다. 그리고 남은 돈을 다락방 나만의 금고인 책갈피에 지폐를 모았다. 그리고 동전을 모아놓는 통도 비밀스러운 곳에 간직했다. 5살부터 돈 될만한 일을 찾아다녔다. 가끔 부모님 아는 분들이 용돈을 주면 그걸 감춰놓고 모았다. 돈은 쉽게 큰돈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 시절 어린이가 할 수 있는 돈 되는 일들은 몇 가지가 더 있었다. 다세대 쪽방이 많았던 동내에는 유독 이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집이 이사를 가면 그날은 수입이 좋았다. 장판밑에서 돈을 발견하기도 했고 사람이 모두 떠난 빈집에서 고물을 수집하기도 했다. 평상시엔 인근 동내나 옆동내를 돌아다니며 빈병을 팔고 돈 될만한 고물을 주워다가 팔았다.


돈이 미처 큰돈이 되기 전에 부모님이 싸움을 하면 그건 참으로 슬픈 날이었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울면서 빌기만 했다. 돈이라도 있으면 그 찰나의 순간에 무어라도 하나 할 수 있는 게 있었을까? 부모님이 싸움이 일어나면 자식들은 모두 벌벌 떨기 일쑤였다. 엄마는 어린 시절 아빠와 싸운 날은 네 명의 자녀를 모아놓고 매타작을 다. 아빠와 싸움이 커지는 날은 자식들에게 함께 죽자고 하는 날도 있었다. 싸이나라고 불렸던 독약이나 농약을 사다 놓은 적도 있다. 아프고 어리석고 젊었던 엄마는 부족하고 미흡하기에 잔인했다. 화나고 절박했던 엄마에게 울면서 애원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가끔 생각난다.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죽기 싫어요."


어린 시절엔 엄마가 화를 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런데 엄마에게 돈을 드리면 웃으며 칭찬을 해주었다. 지저분하고 주눅 들고 눈만 퀭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의 칭찬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 시절 돈은 엄마를 웃게 하는 최고의 해결사였다. 그러니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해결사인 돈을 아끼고 사랑했다. 돈을 처음 벌게 해 준 건 산이라는 자연이다. 대한민국 영토의 70프로 정도가 산으로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의 자연은 누구에게나 돈을 허락한다. 허락된 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어린 시절에 이미 몸으로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9) 판례를 남긴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