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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늘 Dec 01. 2023

2) 꿈

흑수저에게 돈의 의미

2001.


2)


"엄마~  엄마~~"

"아빠~  아빠~~"

"악~앙~~~ 살려주세요~"

소리를 지르다가 잠을 깬다. 간절한 외침은 소리가 돼서 나오지도 못하고 끙끙 앓는 소리만 낼뿐이다. 또 그 꿈이다. 20대 때 반복해서 꿈을 꾸었다.


작은 소녀는 똥이 마렵다. 어린 소녀에게 화장실을 가는 건 버거운 일이었다. 소녀가 가야 하는 푸세식 화장실은 정말이지 무섭고도 힘든 난코스다. 푸세식 화장실은 냄새도 고약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건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의 큰 통이었다. 똥 푸는 날이 가까워오면 똥이 가득 차 있어서 깊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소녀는 안다. 똥 푼 날 끝도 없이 깊은 그곳을 본 적이 있다. 그 시절 어린아이들은 신문지 같은 곳에 똥을 누었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화장실에 던져 넣었다. 그러나 꿈속 소녀는 웬일인지 화장실에 혼자 들어갔다.


반쯤 내바지가 거추장스럽다. 쪼그려 앉은 자세는 엉거주춤하다. 나무로 된 화장실발판이  위태롭다. 두 다리를 아슬하게 벌려 앉았는데 작은 소녀에게 화장실폭은 너무 넓다. 다리를 심하게 벌린 탓에 변을 보면서 조금씩 다리가 오므려진다. 조금 발과 발사이가 가까워지자 자세가 편해지는 것 같다. 그 순간 발 한쪽이 똥통 안으로 푹하고 꺼지듯 들어갔다. 작은 소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두 다리가 모두 빠졌다. 소녀가 똥통에 빠지면 똥 속에 깊이 들어가 소녀는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런데 소녀가 똥통으로 푹 꺼지는 순간 소녀는 두 팔을 벌려 화장실 똥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소녀는 소리를 지른다. 엄마를 찾고 아빠를 찾는다. 살려달라고 소리를 높인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만 있을 뿐이다. 팔로 온몸을 버티는 건 한계가 있다. 소녀는 죽을힘을 다해 버둥거린다. 잠에서 깨면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베개에 흠칫 놀랐다. 몇 번이나 반복된 꿈, 이상한 기분이 들곤 했다. 꿈에 돼지를 본 것만큼 좋은 꿈이 똥꿈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믿고 복권을 산적도 있다. 반복된 꿈에 반복된 꽝이 되는 복권. 그런데 이 꿈은 어딘가 익숙하다. 맞다! 어린 시절 바보시리즈나 화장실시리즈 중 하나였다. 바보 같은 꿈일 뿐인데 너무 무서웠다. 이십 대의 꿈은 어릴 때 꾸었던 꿈을 생각나게 했다. 전설의 고향을 보고 나면 귀신에 쫓기는 꿈을 꾸곤 했다. 절뚝거리며 귀신이 쫓아온다. "다리 내놔~ 내 다리 내놔~"


20대 중반, 어느 날 가족들과 이야기를 할 때였다. 엄마에게 꿈이야기를 했다. 바보시리즈 이야기일 뿐인데 너무 생생해서 공포처럼 느껴진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데, 엄마가 하는 말에 기가 찼다. "너, 그게 기억나?" 기억이라니? 꿈을 꿨다는데 기억이요? '오마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곤가요?'라는 묘한 표정으로 엄마를 뚫어져라 보았다. "너 죽을 뻔했어, 그때 아빠가 꺼내서 씻겨줬어. 더러워서 니 아빠가 씻겼어." "똥독 올라서 죽을까 걱정돼서 떡도 해서 동네에 돌렸어."


바보시리즈, 화장실 시리즈의 우스갯소리가 어린 시절 나에게 일어난 죽을 고비였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꿈인 줄 알았고 꿈이었으면 좋았을 일은 어린 시절의 기억, 생생한 현실이었다. 기억으로 알고 나니 똥통에 빠지는 꿈을 더 이상 꾸지 않았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기억? 이 있는데? 아, 기억인가? 꿈인가 혼동스러운 그것은 바로바로  '거지인 '."엄마, 그럼 혹시 나 구걸한 적 있어?"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 그런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구걸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장소, 위치, 쌀쌀했던 바깥공기, 꿈이라고 하기엔 생생했다. 어린 시절 기억이 거의 없는데 그건 꿈이 아닌 확실한 기억 같았다. 그런데 뭐, 엄마가 아니라니까, 꿈이겠거니 넘어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가족들이 모여있던 어느 날 똥통에 빠졌던 이야기를 하고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모두 웃으며 왁자지껄해졌다. 그리고 구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것도 좀 생생한 꿈같다는 말을 했다. 그랬더니 작은언니가 놀라며 물었다. "너 그게 기억나?" 눈이 동그래진 작은언니의 눈보다 물어본 내 눈이 2미리정도 더 커졌다. "엉? 역시 꿈이 아니었구나" 엄마는 모르는 일을 작은언니는 기억하고 있었다. 하여 구걸을 하게 된 경위가 밝혀졌다.


바야흐로 돼지띠인 오빠가 10살 때 일이다. 엄마가 오빠에게 연탄 200장을 들여놓으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오빠는 엄마가 맡긴 연탄들일 돈을 까먹는데 탕진했다. 그리고 고민했다. 어떻게 해결할까? 그러다 동생들에게 오랜만에 과자를 사주며 공범으로 엮었다. 그리고 동생 둘에게 연탄도둑질을 시켰다. 작은언니와 나, 오빠는 연탄을 열심히 훔쳤다. 집집마다 4장 정도씩을 훔쳤지만 연탄을 반도 못 채웠다. 어린 우리는 과감하게 연탄장사를 하는 집에서도 연탄을 훔쳤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의 도둑질이 발각됐다. 빤한 동내형편에 연탄을 들여놔야 하는 방집에 연탄이 채워진 것을 의심한 연탄장수가 알아내고 말았다. 엄마는 크게 화가 나서 우리 셋은 실컷 두들겨 맞고 집에서 쫓겨났다. 겨울이었고 추웠다.


쫓겨난 세 남매는 배가 고팠다. 오빠는 가장 큰 아이답게 기질을 발휘했다. 동생 둘에게 먹을 것을 구해올 방법을 알려주었다. 다름 아닌 구걸. 나는 당시 4살이었다. 작은언니는 자신은 구걸을 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자 오빠는 가장 어린 내가 제일 불쌍해 보일 거라면서 구걸을 시켰다. "거기, 앉아서 두 손을 내밀고 있어!" 어린 시절 성냥팔이 소녀 동화책을 보면서 들었던 기시감이 그 일과 관계돼서 떠오르는 생각이었다는 게 신기하다. 구걸이 신통치 않았나 보다. 오빠가 나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작업에(?) 임하라고 다그쳤다. 어렸던 내가 물었던 게 생각났다. "모라고 해?" 어린 오빠가 말했다. "한 푼 만 달라고 해~"


생각해  미칠 듯이 우습다. 각설이도 아니고 19세기도 아닌데 한 푼이라니? 꿈이라고 확신했던 두 일화는 기억이었다. 우리 가족들은 가끔 이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할 때마다 큰 웃음을 주는 귀한 기억이다. 구걸을 해봐서일까? 추운 겨울에 쫓겨나서 집에 갈 수 없었던 것 때문일까? 돈과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미 어릴 때 알았던 것 같다 그 시절 경험은 잠재의식으로 반복된 꿈으로 각인되며 여러 차례 주홍글씨로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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