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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늘 Dec 15. 2023

3) 절대와 상대

흑수저에게 돈의 의미

3) 절대와 상대


대한민국은 20세기말 국가부도를 맞았고 이내 일어섰다. 어릴 때 학교에서 처음 봤던 지구본이 생각난다. 배구공만 한 지구본에서 우리나라를 찾으려고 돌리다 자칫 지나칠뻔했다. 빙그르르 몇 바퀴를 돌던 것을 일본이 눈에 띄는 덕분에 손으로 지구본을 멈췄다. 그때는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오랜만에 지구본을 보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한반도를 보다가 상념에 젖어들었다. 앙증맞을 정도로 작은 반도가 제법 대단하다. 한반도의 오롯한 모습으로도 작은데 다시 반으로 나뉘어 그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크기는 고작 손톱만 하다. 한반도 전체라도 손가락 한 개 마디정도만 하다. 그 작은 곳에서 오랜 역사가 이어져내려오고 있다. 고조선을 시작으로 유구한 역사가 작디작은 우리 땅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축복받은 영토이고 우월한 민족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까? 주변국과 열강들의 간섭과 침탈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진 시간 속에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냈다. 이 땅에는 전 세계 최초 발명, 세계 신기록, 세계 1위가 수도 없이 많이 나오고 있다. 단군신화로부터 이어진 이 땅의 후손들은 모두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숙명을 안고 살아가기에 특별하고 특출난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 어느 나라의 국가이념도 이타성을 띄지 않는다. 참으로 특이한 이념이다. 애민의 마음으로 세종은 전 세계 유일하게 글을 창제하고 반포했다. 21세기에 가장 빛을 발하는 한글, 디지털사회에서 더욱 위상이 높아진 우리의 글은 단연 최고다. '우리 엄마, 우리 아빠'라는 단어를 쓰는 나라가 또 있을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하라면 조선의 민족들은 홍익인간의 뜻을 계승하는 하늘의 뜻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닐까?


외세의 침략등 우리 땅에는 수천 년 동안 수난이 계속됐다. 그러나 늘 우리의 조상들은 고난을 이겨내고 일어났다. 2023년인 지금은 넷플릭스 플랫폼으로 대한민국의 드라마, 영화가 전 세계에 방영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지구상 유일한 휴전국가로 위험한 지역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남한보다 북한이 더 알려졌었고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대한민국은 20세기에 비하면 21세기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흑수저라는 말이 나온 건 우리들 세대가 아닌 21세기에 태어난 우리 후손세대이다.


라떼는 말이다. 칠십 퍼센트 이상이 나 같은 사람들이었다. 유년시절 복사골 도당동이라는 지역에는 90퍼센트가 형편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한 달 셋돈을 걱정하고 쌀걱정, 연탄걱정을 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가부장적이고 부지런했다. 어머니들은 순종적이면서 억척스러웠다. 아버지들도 차림이 촌스러웠지만 어머니들은 모두 천편일륜적이고 슈퍼뽜워 촌스러웠었다. 그 시대 어머니들은 단체로 모두 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뽀글 머리에 알록달록 몸빼바지를 입은 동네아주머니들은 더할 나위 없이 힙했다.(ㅎㅎㅎ) 일자리보다 사람이 많을 때라서 결혼한 여자들의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그녀들은 낮에 평상에 앉아 찬거리를 정리하거나 부업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밖에 나가서 뛰어놀았다. 우리들의 놀이터는 동내뒷산이고 집마당이었다. 그 시절 우리들은 모두 머리에 이가 있었고 코를 흘렸다.


이전세대인 조부모는 일곱에서 열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들의 자녀인 우리들의 부모들은 자식을 둘에서 다섯 정도 두었다. 하여 우리 집은 평범하게 네 명의 형제자매가 있다. 단칸방 셋방에 살았어도 부부금실이 좋았던 걸까? 의술의 부재로 인한 걸까? 부모들은 자식을 생기면 낳는 것만이 수순이라는 듯 자식을 생산했다. 70년대부터 조선은 가내수공업, 공업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80년대에는 산아제한이라는 말도 만들어냈다. 이전까지만 해도 주된 노동은 농사였으니 자식은 일꾼이었다. 그러나 산업화 물결로 저 멀리 서양의 바람은 한반도를 흔들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선전문구가 텔레비전에서 연일 보도됐다.


어느 세대건 특별하게 부를 가진 사람들은 있었다. 그리고 대대손손 부를 세습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조선은 침략과 전쟁, 분단등으로 격변의 시기를 보냈다. 폐허로 무너진 땅에 다시 봄이 오고 계절이 변했다. 피와 눈물과 한의 시기에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며 슬프고 아픈 세월이 지나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가족을 건사하며 다시 살아내는데 온 힘을 다했다. 1950~70년대 조선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했다. 가난한 부모의 세습을 끊고 새로운 발판을 만든 사람들은 그야말로 집안을 일으키는 용이되었다. 용이되려면 개인의 특별한 능력이 필요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거나 사업에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 그들은 개인의 능력으로 권력과 돈을 얻었다.


20세기의 수많은 아픔 속에도 조선에 흑수저라는 단어는 없었다. 찬란한 21세기에 조선의 발전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만큼 비약적이다. 절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살만해졌다.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보장도 계속해서 더 좋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박탈감은 훨씬 더 커졌다. 절대적으로는 모두가 이전보다 나아졌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와 빈의 차이가 더욱 아득해졌다. 자유민주주의, 기회의 균등이라는 사회이념은 정녕 맞는 표현일까? 노력하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잡을 수 있을까? 넘사벽이 되어버린 권력, 재벌에 대한 대다수의 시민들은 허망하다. 그들의 박탈감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채울 수 없는 허탈이 만들어낸 단어가 흑수저다.


조선의 신조어에 따라 생각해 보면 나도분명 흑수저인생이다. 재벌이나 권력과는 평생 거리가 멀다. 그러나 내가 만족할만한 부를 가질 수는 있다. 그걸 하기 위해 지금도 부단히 노력 중이다. 오늘 점심식사로 돈가스를 먹었다. 매일 가진 것을 인지하고 그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상대적인 부족에 머물지 않고 절대적인 행복을 느낀다. 흑수저로 태어났지만 자식에게는 대물림을 끊고 싶다. 흑수저들의 반란에 발맞추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싶다. 그 시절 조상들이 민초로, 의병으로 길을 나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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