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취학 아동, 초등학생 때 배고프면 엄마가 아니라 언니를 찾았다. 작은언니는 9살 때부터 밥과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3살 때부터 초등학생 때까지 우리는 단칸방에 비키니 장롱이 있는 집에 살았다. 단층으로 여덟 세대가 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안 좋은 위치에 있는 공동푸세식 화장실 앞이 우리 집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은 단편적인 기억뿐인데 몇 가지 기억나는 일들이 있다. 여덟 세대의 집이 양쪽으로 붙어서 일자로 붙어있었다. 등을 마주 보고 네 집이 연결돼서 각자 마당이 있었지. 옥상은 일자로 여덟 집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집모양이 타원형처럼 보였다. 위치의 결함으로 우리 집은 충격적 이게도 비만 오면 구더기가 집까지 들어왔다. 당연하게 어릴 땐 비 오는 게 싫고 너무너무 무서웠다. 꼬꼬마였던 나는 노는 게 일이었고 아침부터 밖에서 뛰어놀다 밤늦게 집에 들어오면 언니를 찾았다. "배고파~ 언니 ~"
초등학교 2.3학년때 옆집 은정언니한테 맞고 들어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릴 때는 말싸움도 못하고 몸싸움도 못해서 이래저래 맞는 일이 많았다. 집에서도 툭하면 맞는 게 일상인지라 그저 서럽기만 했지 대들 엄두도 못 냈었다. 울고 들어와 작은언니한테 일러바쳤다. 나보다 세 살이 많은 작은언니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를 앞세워 은정언니에게 갔다. "네가 내 동생 때렸어?" 작은 언니의 앙칼진 목소리가 좁은 마당에 울렸다. 와다다다 야무지게 혼줄을 내고 끝에 으름장 놓듯 말을 맺는 작은언니가 말했다. "내 동생 앞으로 또 때리면 가만 안 둬." 훌쩍이며 울던 나는 기가 살아나곤 했다. '내 동생 건들면 죽어' 하며 쏘아보는 눈이 제법 어린 소녀인데도 매서웠다. 언니 손을 잡고 쫄래쫄래 의기양양해져서 그 자리를 떠났다. 어릴 때부터 내 든든한 빽이 되어준 게 작은언니다. 언니는 힘도 세고 말도 잘하고 착했다.
작은언니가 중, 고생일 때는 나랑 잘 안 놀아줬다. 사춘기였을 언니에게 동생은 수준미달이었을 거다. 작은언니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원 S반도체에 입사했고, 나는 부모님의 일방적인 강제에 의해 작은언니가 졸업한 상고에 입학했다. 같은 학교라는 공통점 때문이었는지 철들어 가는 동생과 말이 통하게 되면서 작은언니가 더 잘해줬다. 주말에 가끔 집에 오곤 했는데 올 때마다 늘 맛있고 새로운 음식들을 사줬다. 덕분에 고등학생 때 피자와 스파게티도 처음 먹었다. 작은언니와 가끔 만나도 할 이야기가 많았다. 20대 초반 작은언니는 긴 생머리가 너무 잘 어울리는 예쁜 아가씨였고 그런 언니랑 다니면 내 어깨가 으슥해지는 걸 느꼈다.
나는 어리고 젊을 때 뾰족하고 고지식하고 재미없었다. 다행히? 세상일이 배운 대로 뜻대로 이뤄지지 않고 벽을 만나며 깎이고 유연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바른 길, 바른 삶이 이혼을 하며 흔들렸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았다. 덕분에 나는 좀 사람다워졌다. (ㅎㅎㅎ) 이혼했을 때 작은언니도 혼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같이 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엄마와 오빠, 오빠의 아들딸 조카들도 데리고 왔다. (그 당시 엄마는 경매로 집이 넘어간 후라서 다세대 반지하방에서 오빠와 오빠 자녀들을 키우고 있었다.) 예전에 비하면 다소 둥글고, 유머러스하며 야한 농담도 잘하게 되었다.
2006년 이혼 후 서른이 되었을 때다. 25평 임대 아파트에 일곱 식구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때 언니와 나는 같은 방 한침대를 썼었다. 안방을 사용했고 퀸사이즈 침대에서 둘이 잤다. 2년 정도는 작은언니 아들, 딸도 같이 와서 25평 아파트에 무려 아홉 식구가 함께 살았다. 북적북적 왁자지껄한 날들이었다. 이후 나는 아들과 독립했고 언니는 내내 엄마와 살았다. 언니는 재혼해서 따로 산적이 있지만 작은 형부가 완도로 내려기전부터 엄마와 같이 살았다. 엄마 곁을 지킨 건 늘 작은언니였다. 작은언니와 나는 같이 살 때는 다툰 적이 없다. 내가 따로 독립해서 살 때 작은언니는 나만 보면 크고 작은 시비를 걸었다. 엄마를 오롯이 모시면서 온 피로감과 서운함 때문이었다.
지난해 큰집에 살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으로? 나는 파주에서 엄마와 같이 살게 되었다. 지금은 56평 아파트에 다섯 식구가 산다. 엄마가 안방을 사용하고 스모킹존도 마련해 드렸다. 엄마, 작은언니, 작은언니 딸, 내 아들, 나다섯 식구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조만간 작은 언니 아들까지 오면 총 여섯 명이 한집에서 살게 된다. 다행히 방이 많아서 각자 방을 사용한다. 작은언니와 내방은 전 주인이 방을 터놓아서 벽만 있으면 각방이 되지만 벽을 허물어 하나로 된 방이다. 하나의 방을 사용하지만 다행히 크기가 있어서 각자 퀸사이즈 침대를 두었다. 튼 방이라서 다시 언니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나는 요즘 주말에만 파주에 가기 때문에 우린 주말에만 만난다. 오늘도 금요일이라 밤에 파주로 넘어간다.
작은언니와 만나면 늘 키득키득 웃는다. 장난을 좋아하는 나는 이런저런 장난을 치고 작은언니는 다 받아준다. 요즘 엄마는 당뇨 합병증으로 계속 염증과 전쟁 중이다. 2주 전에는 깁스를 했다. 통풍까지 생겼다고 한다. 엄마가 계속 아프니 작은언니의 피로가 쌓였을 것이다. 이번달 내내 주말엔 파주 인근에 맛있는 빵집에 다녀왔다. 언니의 힐링타임을 위한 우리들의 소확행이다. 내일도 작은언니랑 잠시 다녀올지도 모르겠다. 작은언니와 나는 서로에게 제일 좋은 친구다. 늘 내 빽이 되어주는 작은 언니는 내게 큰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