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전형에 합격하고 면접을 수원으로 보러 갔다. 익숙한 길도 헤매는 심각한 길치라서 몇 번을 확인하고 전철을 타고 먼 거리를 찾아갔다. 19살 때 첫 면접을 보는 나는 '회사가 나 같은 인재를 못 알아볼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면접 보러 가는 날도 특별히 신경 쓴 게 없이 평소 모습으로 갔다. 화장기 하나 없이 교복 입고 회사 면접 장소로 갔다. 면접 보는 시간에 순번대로 대기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 대기업 면접이라서 그런지 예쁜 아이들이 많았다. 약간 떨리기도 했지만 주어진 일에 열심히 하는 나를 면접관들이 알아봐 줄 것 같았다. 목도리 뜨개질 하던 것을 가져가서 대바늘로 목도리를 떴다. 남자친구에게 줄 연말선물이었다.
면접은 미리 자기소개서를 철저히 외워놨던 대로 당당하게 임했다. 며칠이 지나 합격통보서를 받았다. 우리 학교에서 이번 회차에 유일한 합격자였다. 합격하고 바로 11월부터 입문교육이 있었다. 교육장소는 대전 유성 연수원에서 진행되고 교육 날짜는 보름정도 기간이었다. 일정표를 보니 하루하루 숨 가쁘게 진행되는 일정이었다.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연수원에 들어섰다. 전국에서 모인 여고생들이 가득했다.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아이들은 대화를 했을 뿐인데 마치 싸우는 것 같았다. 대구에서 온 아이들이 10프로 정도 됐고 부산과 경상도 친구들이 총 30프로 정도였다. 입문교육이 끝나갈 무렵 전 동기생들이 마구잡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게 되었다. (잘 잤나? 밥뭇나? 잘 핸나? 이긴 나? ㅎㅎㅎ)
같이 연수를 받는 특별한 사람들도 있었다. S사배구단 소속 선수들이었다. 당시 S사 배구단 창단이 있었다. 창립멤버들은 우리와 같은 기수로 함께 입문교육을 받았다. 신진식, 김세진, 최태웅, 김상우 등 지금은 너무 유명해진 분들이지만 당시 배구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그들의 존재에 대한 큰 감흥이 없었다. 사인을 받는 동기생들도 많았는데 숩기도 없고 유명한 분들인지 알지도 못해서 사인을 받지도 않았다. 대교육장 맨 앞줄에 키 큰 배구선수들이 앉아 있었다. 그때 사인을 받아두었어야 하는데 후회막심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너 그럴 줄 알았다'라고 자신의 묘비명에 썼다는 조지 버나드 쇼가 생각난다. 잠깐만 쪽팔렸으면 대단한 선수들의 사진첩이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쉽다.
입문교육동안 새벽 5시 전에 기상했고 밤 9시까지 꽉 찬 교육일정을 소화했다. 입문교육 때 유명강사들을 많이 접했다. 이후 TV에서 보게 된 강사님들이 많다.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회사에 충성심과 애사심이 고취됐다. 생각해 보면 교육의 힘을 아주 잘 이용하는 회사였다. 제일 먼저 시작되는 일과는 체조였다. 온 국민이 다 아는 국민체조가 아닌 S사 자체 체조를 했다. 점심밥은 세 가지로 양식. 한식, 특별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점심시간이 즐거웠다. 당시만 해도 이런 대우를 해주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특별대우를 받는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웠다. (요즘 S사는 점심종류가 2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대단한 회사다, 좋은 식사를 직원들에게 대접하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아는 회사다.)
교육기간 동안 강조한 사항 중 주체성, 책임의식, 주인의식등이 있었다. 내게 주어진 일을 할 때 눈치 보지 말리고 했다. 심지어 상사의 지시도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말라고 했다. 과도하고 적절치 못하고 무례한 지시는 거부하도록 교육했다. 내게 맡겨진 업무를 완수하고 정당한 성과를 내도록 강조했다. 피동적으로 '누가 시켜서 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누구와도 대체될 수 있는 '대체제'라고 알려줬다. 회사 내에서 호칭 사용도 강조 됐다. 우리는 각자 이름을 부르고 불릴 것을 당부했다. 상사는 상사의 업무가 있고 우리에겐 고유업무가 있으니 각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 중 몇 가지가 생각난다. 당시엔 여사원이 회사에서 커피 타는 게 일과였을 때였다. 그러나 우리 회사에서는 사무실에서 커피타지 말라는 말도 강조했다. 상사가 커피 타달라고 하면 거부하라고 교육했다. 예외는 물론 있었다. 주인의식을 강조하면서 허용되는 예외였다. 예를 들면 사무실에 온 손님이 있을 경우 차를 내오는 건 부당한가?라는 내용이었다. 강사님은 '강요인지 허용인지'를 구분하라고 알려주었다. 내가 주인인 사무실에 손님이 오거나 외부인이 와서 차를 내주는 건 <주인의 배려>라고 강조했다. '내 사무실에 주인은 나!'라는 주인의식을 키워주었다. 회사업무 특성상 돈과 서류가 중요했으므로 원칙을 중시하는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수동적으로 듣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질의응답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리고 개인별 팀별 토론도 자주 했다. 두 진영 간의 토론에 세 개의 팀을 나누었다. 어떤 의견에 대한 찬성, 반대, 배심원 세 그룹으로 나누어져 토론이 이루어졌다. 우리 교육생들은 학생으로 입문했다가 교육이 끝날 때는 사회초년생의 면모를 갖추어 각자 업무할 곳으로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