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세 친구

셸 위 댄스-상처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사람

by 장하늘

21화




사람


7) 세 친구



내 학창 시절 친구들은 고등학교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친구들은 따로 연락하며 지내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초등학교 동창모임을 몇 번 나간 적은 있다. 마흔이 넘어 초등 동창모임을 나가니 반가움도 있었지만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고 그런 불편한 느낌은 뭔가 별로였다. 나는 초등학생 때 워낙 위축되고 말이 없이 지냈다. 성인이 된 이후 성격도 많이 변했다. 오랜 기간의 공백 동안 그들 각자는 서로 친한 친구들 부류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내가 20대 초반에 <아일러브 스쿨>이 유행했었다. 그때 만난 친구들은 새로운 추억을 쌓은 것 같았다. 나는 그 시절 사는 게 바빠서 커뮤니티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친구들과 추억이 한미 했다. 중학교 때 친구들은 연락하는 친구들도 없고 모임도 찾아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는 소극적인 성향이 별로 없이 활발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교우 관계도 좋아서 여러 친구들이 있었다. 여자상업고등학교로 정보과는 세 개 반이 전부라서 더 친해질 수 있었다. 고등생 3년을 지내면 도시락 멤버는 열 명 가까이였다. 여러 친구들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한 부류도 나눠졌다. 그중에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는 심양과 이양이었다. 고 1 때보다는 고 2 때 본격적으로 친해졌다. 2학년 때 세 명이 짝이라서 더 친해졌던 것 같다. 고3 때는 다른 반이 되었지만 친분은 계속 이어졌다.


중학생 때 심곡의 똥집심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심양은 말도 잘하고 똑똑하고 글도 잘 쓰는 재밌는 친구다. 세 형제 중 막내로 집안에 유일한 딸이다. 고등학생 시절 떠든 아이들 이름을 적으려고 교실 칠판 앞에 있으면 크게 떠들지는 않고 계속 잡담하는 친구였다. 평소 얌전하고 조용해 보이는 친구였다. 그런데 어느 날 미술시간에 인물화 모델을 자원받을 때 맹구처럼 손을 들어 모델이 됐다. 그때 똘기가 있는 걸 처음 안 듯하다. 심양은 23살에 만난 남자친구(3살 많은 오빠)와 첫 연애를 했고 27살에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이양은 쌍둥이였고 얼굴이 예뻐서 인기가 많았다. 공부하는 것만큼 결과가 안 나온다고 스스로 불만족스러워했지만 인정 많고 착한 친구다. 상업고등학교에 온 친구들은 대부분 가정 형편이 안 좋았다. 그러나 이양의 아버지의 직업은 중소기업 사업가 셨다 이양이 고등학생 때부터 사업이 잘 되면서 이양은 당시부터 친구들에 비해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양은 딸만 넷인 집안에 장녀로 그만큼의 무게감을 갖고 산 친구다. 상고 졸업 후 취업했다가 대학교를 갔고 이후 일본 유학을 다녀왔다. 유학할 때 만난 사람과 연애 끝에 결혼했다. 이후 이양의 남편이 이양 친정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았고 부유하게 잘 살고 있다.


이양과는 나는 일부 성향이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가끔은 나와 이양은 투덕거린 적이 있다. 그러나 심양과는 서로 말싸움조차 한 적이 없었다. 심양은 성격이 좋고 내가 아는 한 그 누구와도 싸우는 일이 없는 친구였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같은 반 친구와 딱 한 번 싸우는 걸 봤다. 그런데 어찌나 말싸움을 잘하던지 그때 정말 반해버렸다. 나는 워낙 말싸움을 못하는 사람이라서 심양 싸움 장면을 회상하며 한동안 말싸움 연습을 했었다. 연습 이후 나는 좀처럼 말싸움에 지지 않는다.


후문이지만 우리가 서른 쯤 되었을 때 심양과 싸웠던 고등학교 같은 반 그 애 소식을 들었다. 엄마를 살해한 어떤 여성에 관한 뉴스였다. 심양은 대단히 훌륭한 네티즌이었다. 커뮤니티도 네티즌들만의 창구가 별도로 여럿 있는 듯했다. 처음 본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고 한다. <000 연예인의 스토커가 존속 살인을~> 헤드라인 뉴스에 낯익은 얼굴을 심이 발견했다. 심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기사를 검색했다. 그리고 심의 짝이었던 남 00이 모친을 살해했다는 걸 알게 됐다. 바로 헤드라인 사진 속 살인자가 바로 심양과 싸웠던 심의 짝임을 심양이 확인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서른이 넘은 어느 날 알려주었다.


상업고등학교였기 때문에 우린 모두 취업을 했다. 심양은 C사에, 나는 S사에, 이양은 금융사에 취업을 했다. 이후 이양은 유학을 가면서 몇 년 동안 나는 심양하고 둘이 놀았다. 20살에는 여자 둘이 만나기만 하면 비디오방에 가서 영화를 봤다. 그때는 삐삐 세대였기 때문에 우린 늘 부천역 로얄백화점 앞에서 만났다. 비디오가 한참 퍼질 때였지만 집에는 없을 때였다. 이후 각 집에 비디오가 생겼더라도 집에 갈 만큼 집이 크지도 않았고 비디오가 우리 차지가 될 수 없었다. 우린 툭하면 밥 먹고 비디오방에 가서 영화를 봤다. 20대 초반에 연애도 할 줄 모르고 놀지도 못하는 우리는 명화만 줄곧 봤었다.


각자 결혼을 하고 자주 못 만나는 시기가 있었다. 20대 중반에는 육아하랴 직장 다니랴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나는 이혼 후 직업을 보험영업으로 바꾸고 나서 다시 친구들과 자주 볼 수 있었다. 서른 즈음 됐을 때 다른 친구들도 결혼을 한 상태에서 친구들과 더욱 돈독하게 지냈다. 자주 국내여행도 다녔고 제주도나 동남아 여행도 다녔다. 10년 정도 친자매보다 더 친하게 지냈고 함께 동업을 하기도 했다. 음식점을 차렸었고 그곳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유럽여행도 같이 다녀왔다. 그전에 나는 혼자 유럽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서 내가 유럽여행을 강추했고 코스도 내가 짰다. 친구 둘과 작은언니 여자 넷이 프라하와 이태리를 다녀왔다.


유럽여행하며 처음으로 나와 친구들 간에 다툼이 있었다. 그리고 동업했을 때 또 하나의 트러블이 있었다. 그 후 친구들과 지금은 자주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은 다음에 에피소드로 엮으려고 한다. 지금은 관계가 다소 멀어졌다고 해도 나에게 30년 가까이 늘 힘이 된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그들과의 추억만으로도 큰 위안과 힘이 된다. 자주 못 만나는 지금도 내 친구들을 사랑한다. 그들이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