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큰언니, 큰 형부, 오빠

셸 위 댄스-상처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사람

by 장하늘

20화




사람


6) 큰언니, 큰 형부, 오빠


큰일을 연거푸 겪으면서 나를 지탱해 준 사람들 중 가족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의미가 됐다. 큰언니는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 집의 맏딸이다. 맏딸의 역할을 해야 했기에 포기한 것도 감내한 것도 남다르다. 당시 15살 어린 나이였던 큰언니는 돈을 벌기 위해 공장으로 떠났다. 나와 8살 터울이라 내가 기억할 나이부터 언니는 외지생활을 했기 때문에 큰언니와 추억은 많지 않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키가 작은 편은 아닌데 유독 큰언니 한 명만 키가 작다. 그 시대에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기신 후 이사를 자주 하게 되었다. 큰언니는 출가외인이 된 상태였으나 친정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순 없었다. 자주 이사하는 엄마를 위해 늘 집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이상은 사드려야 했다. 소소하게 엄마가 빚진 것들을 갚는 것도 큰언니 몫이 많았다. 계속해서 엄마와 함께 산건 작은언니다. 3년 전 작은언니가 음식점을 하다가 망한일이 있었다. 그때 작은언니와 엄마는 큰 형부가 가진 집, 20평 빌라 집에 월세로 저렴하게 들어갔다. 큰 형부의 친어머니가 살던 집이었는데 병환으로 요양원에 들어간 상태였다. 그때도 집안 살림살이들을 큰언니가 많이 사주었다. 지난해에 엄마랑 나랑 합가를 할 때도 엄마가 원하는 장롱을 사주어야 했다.


큰언니도 벌써 할머니가 되었다. 아들, 딸을 두고 있는데 딸이 결혼해서 벌써 첫째는 손녀를 두 번째는 손자까지 본 상태다. 손녀, 손자가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 모른다. 역시 유전자는 거짓이 없다. 큰언니와 형부를 닳아서 조카 둘 다 얼굴도 작고 예쁘다. 얼굴도 아주 예쁜 조카가 남편도 훈남을 만나서 손자손녀를 낳았으니 예쁜 건 당연하다. 얼마 전 큰언니 아들도 상견례를 마쳤고 결혼은 9월에 할 예정이다. 큰언니네 가족이 안정적이고 예쁘게 늘고 있어서 곁에서 보는 내 마음마저 따뜻해진다.


어린 날의 큰언니는 내게는 다소 무서웠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귀엽고 짠 해졌다. 예민하고 착한 사람이 환경이 못 받쳐 주었으니 부족한 한이 쌓였을 것이다. 그래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산 덕분에 밝은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큰언니는 눈물도 많지만 다행히 웃음도 많다. 가족들 중 놀려먹기가 제일 쉽다. 외모는 얼굴이 작고 앳된 상이라 얼핏 보면 재매 셋 중 가장 어려 보이기도 하다. 혼자만 귀엽게 생겨서 우리랑은 좀 딴판이 있다.


큰언니와 큰 형부가 결혼을 한 게 벌써 40년이 되어간다. 큰 형부를 처음 본 게 내가 초등학생 1학년정도 되었던 것 같다. 나와 대면 때 중국집에 갔는데 나는 짜장면이 먹고 싶었는데 큰언니가 비싼 거 시키라며 잡채밥을 시켰었다. 어린 나는 양파를 골라내지도 못한 채 ㅡ 어릴 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엄마에게 두들겨 맞았을 때다 ㅡ 두 숟가락도 못 먹고 다 남기고 나왔었다. 큰 형부는 당시 너무 하얀 피부에 마른 사람이었다. 지금생각하면 완전한 미소년 같은 꽃미남 필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비실비실 계집애 같다는 평을 듣던 때였다. 안타깝게도 미의 기준이 꽃미남을 안 쳐주던 시대였다.


큰언니는 아무래도 작은언니나 나보다는 바로 밑에 동생인 남동생과 끈끈한 정이 있다. 세 달 전부터 다시 오빠(내겐 오빠)가 일을 하기 시작해서 당진으로 회를 먹으러 갔다. 오빠는 횟집에서 일을 오래 하기도 하고 작은언니와 자영업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가게가 어렵게 되자 가게를 접고 쉬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일을 하게 돼서 가족들과 당진에 다녀왔다. 눈물 많고 인정 많은 큰언니가 남동생이 일하는 것만으로도 감격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같은 부모님 아래 고통분담을 함께해 온 우리들은 서로가 애틋하다. 터울이 있어서 각자 서로 친한 정도는 차이가 있지만 순서대로 연결되어 있다. 큰형부도 가족이 된 지 40년 정도 되어가니 정의 깊이가 커졌다. 좋을 때 같이 밥을 먹고 궂은일이 있을 때 같이 고민이라도 해주는 게 가족이다. 누군가 좋은 일이 있어도 시기질투가 전혀 없다. 그저 서로 대견하고 기쁘다. 그게 우리 가족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 가족들은 부모를 함께 봉양함으로 동지가 됐다. 나쁜 일에 나쁜 결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 늘 큰 깨달음을 준다. 힘듦 속에서도 늘 의미는 있다. 고난의 결과물은 그것을 극복하거나 견뎌냄으로써 무척 견고하고 강한 자존감을 남긴다.


큰 형부는 올해 곧 환갑을 앞두고 있다. 큰언니와 큰 형부의 백년회로를 응원하며 오빠도 조금씩 더 자신감을 갖고 행복해지길 기도한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같은 동지로 나에게 든든한 빽이된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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