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안양 영업소로 출근하게 되었다. 영업소는 소장님 한 분에 총 무한 명의 내야 사원이 근무한다. 내야 사원의 업무는 다수의 설계사님들을 관리하고 교육하며 영업실적을 내는 곳이다. 영업소에 가니 지점에서 잠깐씩 봤던 여 소장님이 계셨다. 소장님을 보자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잡념들이 많았다. 직장이든, 세상살이든 사람들은 서로를 평가하고 입방아를 찢는다. 지점에 있을 때 D 안양 영업소 소장님의 험담은 종종 들었다. 우리 동기생 중 누가 그곳에 갈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자주 언급됐던 것 같다. 영업소가 열다섯 곳 가까이 되는데 여자 소장님은 그분이 유일했다. 당시 파격적인 인사 감행을 했던 회사의 방침으로 보험설계사로 시작해서 정규직 영업소장이 된 분이셨다. 다소 무서운 인상이신 소장님과 앞으로 잘 생활해야 했다.
말로만 듣던 총무 언니도 있었다. 성씨가 나와 같은 '장'가였다. 총무 언니는 조용하고 말수가 많지 않았다. 총무들 중에서도 대선배님에 속해 있었다. 비정규직이었던 선배님은 정규직 시험을 아예 응시하지 않다고 했다. 나이가 서른 정도였던 언니에게 회사의 변화는 벽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해고를 당연하듯 받아들이던 언니는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총무의 할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신규 서류 수납 및 등록, 영수증 관리, 영업소 내 환경 관리, 설계사 교육, 지점장님이 시키는 일, 지점에서 챙기는 일, 운영비 관리 등등. 여직원 한 명이 그렇게 많은 일을 한다는 게 신기했다.
내가 일하게 됐을 때 이미 영업소에서는 보험료는 돈이 아닌 입금증을 받는 형식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돈 세기를 못하는 나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우리 회사가 타사에 비해 빠르게 도입한 선진적인 방법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현금수납을 했다고 들었다. 그 많은 돈을 받고 처리하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했을지 선배님이 존경스러웠다. 일하다 무슨 일 때문인지 현금을 세는 선배언니를 보게 되었다. 촤라락 촤라락 은행 직원같이 능숙했다. 총무 언니가 돈을 너무 잘 세서 신기하고 존경스럽게 봤던 기억이 난다
첫 직장이 돈과 관련된 일이었지만 직접적인 돈을 만질 일은 거의 없었다. 입금증 한 장으로 서류와 함께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처리하면 됐다. 그리고 입금은 들어왔는데 서류가 안 들어온 건 미수건으로 분류되었다. 그건 컴퓨터에서 확인이 가능했고 미수 처리건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숫자였다. 실수로 누군가 입금만 해놓고 처리를 안 한 상태에서 보험사고라도 나면 아주 큰 사고로 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돈은 내게 그저 서류였고, 맞춰야 하는 중요한 숫자일 뿐이었다.
외야 직원분들은 모두 보험설계사들이었다. 당시에 그들의 호칭은 '여사님'이었다. 내 첫 발령지에는 남자는 한 명도 없는 순전히 모두가 여자인 곳이었다. '여사님'들은 총무 언니에게 모두 '미쓰 장'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후임인 나도 장가라고 하자 나에겐 '작은 미쓰 장'이라고 불렀다. 호칭이 이상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다방 레지를 부르는 것 같았달까? 여하튼 당시 내가 교육받기로는 이름을 불러주는 게 맞는다고 배웠고 그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지점에서는 다들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000 씨'라고 불러주는 게 맞는데 '미쓰 장'이라니, 나도 저들을 '아줌마'라고 부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ㅋㅋㅋ 지금 생각하니 불러볼 걸 그랬다 ㅋㅋㅋ)
내가 발령받아옴으로 인해 몇 년 동안 몸담고 있었던 회사에서 결국 밀려나게 된 언니 앞에서 호칭을 두고 시시비비를 따질 수는 없었다. 나 때문에 그만두는 게 아닌데도 당시엔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인수인계를 거친 후 '미쓰 장' 언니는 퇴사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영업소 내에서 유일한 총무로 일해야 했다. '여사님'들은 나에 대한 호칭이 '작은 미쓰 장'과 '미쓰 장'을 오가며 제 맘대로 부르고 있었다.
나는 혼자 있게 됨으로써 단호하게 이름을 불러달라고 요청드렸다. 몇 년 동안 입에 붙은 버릇이 바로 고쳐질 리 없었다. 특단의 방법을 써야 했다. 영업소에서는 거의 모든 일이 총무를 통해 이루어졌다. 모두들 사소한 일들로도 총무를 찾았다. 그런 순간에 나를 찾을 때 '미쓰 장'이라고 부르면 못 들은척했다. 몇 번 부르면 그제야 "이름이요"라고 대답했고 이름을 부르면 이내 친절해게 답해줬다. 그렇게 하니 호칭이 바뀌게 되었다. 모두들 나를 'ㅇㅇㅇ씨'라고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