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감사, 그리고 자퇴서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37화




미야코와슬레(꽃말: 잠시의 위안, 잠시의 이별)



감사, 그리고 자퇴서


6월이 되니 회사 전체가 반년 평가로 신경전이 한참이었다. 평가 마감답게 영업소는 분야별 실적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은 어느 정도 숙련되었고, 5월은 월 마감하는데 어려움 없이 한 달을 보냈다. 학교생활도 적응하며 지내게 되었다. 주말은 늘 회사에 나와야 했지만 평일에 미뤄둔 업무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학교 과제도 회사에서 하는 게 오히려 편했다. 곧 기말시험이 있을 예정이라서 시험공부도 해야 해서 주말에 더 회사에서 늦게 퇴근했다. 시험기간은 일주일 정도로 예정되어 있었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시험공부에 한창 열심히였다.

그리고 시험일이 되었다. 지점에서는 한참 감사로 정신이 없었다. 지점 선배 언니들은 퇴근시간도 없이 감사 자료를 마련하느라 바빴다. 감사 평가단이 와 있어도 본인의 업무는 착오 없이 진행해야 한다. 자신의 개별 업무와 별도로 감사 감독자가 요구하는 서류를 그때그때 넘겨줘야 했다. 서류 검토하면서 설명이 필요하거나 감사자가 보충 서류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감사 기간 동안 지점 언니들 모두 하나가 되어 열심히 감사에 임했다. 언니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막차시간까지 업무를 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수많은 지점 중에 안양이 감사 대상이 되어 지점 분위기기가 엄숙하고 무거웠다. 지점 감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영업소도 딱 한 곳 감사가 진행될 거라는 공지가 있었다.

안양지점 내에 영업소는 당시 열 곳 가까이 됐다. 연초에 안양지점 규모가 커지면서 지점 분할로 안산지점이 발족했는데도 많은 영업소가 있었다. 시험 당일이 됐고 오후 3시가 넘어 곧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험 시간은 지각할 수 없으니 미리 영업소장님과 설계사님들께 양해를 구해서 5시까지 서류 마감을 부탁드렸다. 그런데 시험 첫날 수많은 영업소 중 감사받는 곳이 우리 점포로 확정됐다는 공지가 떴다. 뒤통수를 세게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회사는 입사 당시 나에게 자기 계발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게 해 준 곳이다. 그러나 그 희망을 제대로 꺾어 버리는 장본인이 되기도 했다.

나는 다른 걸 생각할 마음의 여력도 없이 감사 준비를 하는데 전념을 다했다. 감사가 제대로 안되고 문제가 발생하면 총무직인 나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었다. 나와 함께 같이 근무하는 영업소 소장님은 당연하고 지점에 과장님이나 지점장님께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감사 기간은 일주일이었고 시험 기간 내내 진행됐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학교를 못 간 건 당연하다. 감사받을 때 초긴장 상태에 있었던 터라 앞으로의 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시험조차 못 보러 가는 게 속상했지만 그 마음이 오래가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감사를 받느라 정신없는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

감사는 무사히 끝났고 결과를 기다리면 되었다. 학교 시험을 그대로 펑크 낸 나는 고민했다. '한 학기 모든 과목이 F 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다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기말시험 후에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었다. 내 고민은 아랑곳없이 시간은 그저 속절없이 지나갔다. 방학 시즌이 되었다. 방학을 하고 나니 회사 생활에 만 전념할 수 있었다. 하루가 빠르게 흘렀지만 여유 있는 시간을 누렸다. 평일만 일을 해도 업무는 술술 진행됐다. 주말을 오롯이 쉴 수 있었다. 회사일에 열중하니 성과도 올랐다. 학교를 가지 않는 시간이 평온하고 즐거웠다.

2학기 등록금을 내는 기간이 다가왔다. 학교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됐다. '대학 등록금은 또 어떻게 하지?', '계절학기로 한 학기를 다 채울 수 있을까?' 고민도 잠시 마음이 한편으로 기울고 있었다. 전진할 수 없을 때는 후퇴가 답일지도 모른다. 자퇴서를 내면 깔끔하게 해결될 고민이었다. 마음을 먹으니 간단한 절차만 마무리하면 됐다. 학교에 자퇴서를 내러 가는 길도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다. 간단한 일 처리를 하듯 행정실에 가서 자퇴서를 쓰고 돌아서서 나왔다. '다시 학교를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것도 지금 당장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 최종 결정은 미루기로 마음을 먹었다.

​학교를 나오면서 학기 초 처음으로 해봤던 '과팅'이 생각났다. 대학생이 되고 처음 한 미팅이었는데 단체미팅이었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과 전체가 하는 미팅이라 빠질 수 없었다. 신선한 경험이었고 재밌었던 일이라 흐뭇한 기억으로 떠올랐다. 회사 생활 덕분인지 또래 아이들보다 조리 있게 말을 잘했던 나는 미팅에서 인기가 제일 좋았다. 그날 하루 재밌게 보냈고 이후에도 잠시 동안 연락이 온 남자아이도 있었다. 자퇴서를 낸 것이 왠지 아쉽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데 학교 계단을 내려오는데 학기 중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늘 분주한 일상에 그날도 학교에 미친 듯이 뛰어가서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보다 세 살 많은 과 동기생 언니가 고민 상담을 해왔다. 그 언니는 4년제를 가려고 3수를 한 후 우리 학교를 들어온 언니였다. 당시 남자친구를 동호회에서 만나서 사귀는데 자신이 3살 많은 걸 남자친구가 모른다며 털어놓은 고민이었다. 나는 막차 시간을 핑계 대며 그 자리를 서둘러 떠났다.


나이가 든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나는 나이가 들면서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 사람의 고민에 다른 건 뒷전이고 우선 위로를 해 줬을 것이다. 그리고 재치 있는 농담이나 솔루션을 제시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20살의 어린 나는 그 언니의 고민을 듣고 집에 가는 길 내내 화가 나고 눈물이 났다. 그 사람의 고민에 집중한 것이 아니었다. 내 처지와 비교를 하며 배부른 투정을 하는 그 언니가 너무 어리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원망하며 맘속으로 화를 냈다.


'나는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연애라니 배부른 투정을 왜 나한테 하는 거야? 그깟 세 살 차이 나이가 뭐라고 그걸 거짓말을 해서 문제를 만들고 고민하지?'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며 계단을 다 내려왔다. 내려왔던 길을 뒤돌아서 학교건물과 계단을 올려다봤다. 전철역으로 급히 가다 계단에서 멈춰 울고 있던 내가 아직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계단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내 처지와 학교 동기생들의 다른 일상이 확실하게 각인되면서 아쉬운 마음은 후련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회사일에 더 전념하기로 마음먹으며 학교를 보며 인사했다.


"잘 있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