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대한민국에 태어난 나는 발전과 변화를 스텝 바이 스텝 몸소 경험하며 성장한 행복한 사람이다. 생을 현시대적 배경과 지리적 장소에서 영유하고 있다는 것이 제일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파란만장이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좌충우돌 살고 있지만 가끔은 벅차게 감사함을 느낀다. 살면서 누리는 선택의 기회에 감사하다. 내 나라가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것도 감사하다. 여자로 태어난 것도 감사하다. 장애가 없이 태어난 것에도 감사하다. 내 삶에 공짜로 얻어진 수많은 조건들에 감사하다. 살면서 재밌는 것들을 경험하는 것에 감사하다.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신기하고 너무너무 재밌다. 내 삶은 재미로 넘쳐난다.
전자기기의 발전도 삶에 큰 재미 중 하나이다. 수많은 전자기기 중에 전화기를 먼저 생각해 보자. 집에 전화기가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전화기가 생겼다. 012, 삐삐도 변천사를 다 경험하며 각종 삐삐 기기를 사용했다. 시티 폰 같은 게 잠시 스쳐 지나갔고 핸드폰이 생겼다. 수많은 디자인의 핸드폰을 사용해 봤다. 011, 018, 016, 019등 통신사 별로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였다. 사용자들은 그 모든 특권을 누렸다. 예쁘고 편리하게 디자인과 기능이 계속 변경되고 발전했다. 드디어 스마트 폰이 세상에 나왔다. 전 국민 스마트폰 시대가 됐다고 하니 스마트폰은 이미 우리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앞으로 스마트폰에 어떤 발전이 있을지 실로 기대된다.
문을 열고 닫던 TV에서 지금의 스마트 TV, 세탁기 이전에 나왔던 짤순이, 하얀색인 줄만 알았던 위에 냉동 칸 아래 냉장 칸이 있었던 냉장고의 변신, 보관만 하던 전기밥통에서 밥을 짓는 전기밥솥, 선풍기, 에어컨, 청소기, 마당을 파서 저장했던 장독대에서 김치냉장고 등 전자 제품의 변천사는 하나하나 제각기 스토리가 있다. 제습기, 식기세척기, 건조기, 로봇청소기, 스타일러 등도 예전엔 전혀 없었던 제품이었지만 이미 당연한 가전제품이 되었다. 혁신을 통해 추억의 기기가 된 전자제품도 무수히 많다. 비디오 플레이어를 아는 세대는 우리들만의 아날로그 감성이 있다. 음악을 듣던 많은 전자제품들이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라디오, 전축기, 카세트 플레이어, CD플레이어, MP3 등 기기뿐만 아니라 관련된 제품들이 유물이 되었다.
전자기기뿐 아니라 생활 전반적으로 가구, 생활용품, 컴퓨터, 문화 등 많은 변화를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고등학교 때 컴퓨터를 배우고 직장인이 되니 본격적으로 컴퓨터 사용을 하게 되었다. 286, 368, 486, 펜티엄 등등 컴퓨터가 발전되는 과정을 지켜봤고 변화하는 기기들을 사용했다. 직장인이 되고 신세계를 경험한 것이 당시 PC 통신이었다. 당시 PC 통신은 하이텔, 천리안이 대세였다. 모두 유료로 접속해서 사용하려면 매달 사용료가 2만 원대로 청구됐다. 그뿐만 아니라 통신 접속은 전화선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사용하는 대로 전화 요금이 청구됐다. 유니텔은 처음엔 S사 직원들에게 무료로 아이디를 줘서 나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때문에 유니텔 이용자는 처음엔 S사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케팅을 잘한 건지 이용자 수가 늘게 되었다.
학교를 자퇴하자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고 PC 통신에 재미가 들었다. PC 통신으로 개인과 대화도 나누고 친구도 생겼다. 오프모임을 갖기도 하고 모임도 생겼다. 당시엔 순수한 스무 살이라서 연애보다는 또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회사 생활은 위계질서가 있어서 경직된 반면 PC 통신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학생들이 많아서 자유롭고 편안했다. 하루는 오프모임을 통한 만남이 있었다. 20대 초중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한양대학교를 다니던 오빠들이 몇 명 나왔다. 그리고 경희대를 나와서 한의사를 하는 분이 나왔다. 유쾌하고 건강했던 그들을 필두로 아주 건전한 모임이 생겼다. PC 통신을 통해 최초 가입한 모임은 <채팅 사랑>이란 커뮤니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