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에 대한 주석(註釋)

by 장하늘

태어남에 대한 주석(註釋)


삶은

포장지에 감춰진 선물이라 믿었다.

접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리본부터 풀어야 하는 것이라고.


비가 오는 날에도

천둥이 요란해도 이유가 있다고.

고난은 통과의례라고.

나는 그렇게 문장을 외웠다.

책들이 말해준 문장,

어른들이 미뤄둔 희망의 문장.


그러나 지금

나는 출생에 주석을 단다.

태어났다는 사실 옆에

작은 물음표를 매단다.


왜일까?

이 질문은 누구에게 허락받아야 할까?


언니는

가끔 나에게 화를 냈다.

이유가 선명하지 않은 채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곤 했었다.

나는 그걸

대부분 흘려보냈고

언젠가는 사라질 일처럼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그날만은

그러지 못했다.

나도 같이 으르렁거렸고

먼저 다가가기보다

외면하는 쪽을 택했다.

우리는

서로를 모른 게 아니라

서로를 너무 당연하게 여겼을 뿐인데...


꿈을 꾸는 것인지, 이것이 현실인지

가끔 혼동이 된다.

언니가 떠났다.

집을 나갔을 뿐이었는데,

이제 가족 안에 없고, 내 생에도

사라졌다.

썩어 문드러져서

가루가 되었고, 그마저도 흘려보냈다.


언니의 부재는 소리가 없다.

집 안의 많은 물건들을 버렸다.

언니의 숨이 사라지고

나도 숨 쉬기가 힘들다.

내 세상 한쪽이 무너졌다.

그런데도

아침은 여전히 오고

계절이 바뀌고

시간은 예의 바르게 흐른다.


벗어나고 싶은데 나는 자꾸

존재의 바닥을 만진다.

태어남이란

이렇게까지 감당해야 하는 일일까?

기쁨이 아니라

견딤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삶을, 오늘을, 타자처럼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선물은 열어보면서

기쁨을 느끼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모르겠다.

삶이, 선물이, 이렇게까지 잔인해야 할까?

내 선물은

평생을 통해

해석해야 하는 과제만

준 걸까?


언니,

너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나는 이미

말하지 못한 장면들로

너를 생각한다.

눈물은 후회와 죄책감, 슬픔, 통증, 고통, 추억, 기억등으로 흐른다.

이후 숨쉬기 위해 애를 쓴다.


철학은 너무 멀고

위로는 너무 빠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무 결론도 쓰지 않는다.

다만

태어났다는 문장 아래에

이렇게 적어둔다.


'나는 지금

살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2025.11.30. 짐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