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또다시 갑작스럽게 집에 내가 있을 곳이 없어졌다. 병증이 심해진 아빠가 작은언니에게 사귀는 남자가 있으면 집에 데리고 오라고 한 게 발단이 됐다. 언니는 당시 사귄 지 몇 개월 안된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와 딱히 결혼할 마음은 없었다고 한다. 아빠의 극성에 못 이겨 간단하게 남자친구를 인사만 시키려고 했었다. 그러나 몸이 아픈 아빠는 마음이 급하셨던 것 같다. 조만간 서산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는 딸의 남자친구를 아빠가 잡으셨다. 나는 회사 생활하느라 정신이 없는 때라 모든 것이 결정 난 후에 알게 되었다. 번갯불에 콩 볶듯 속전속결 작은언니는 우리 방에 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언니와 같이 사용하던 방인데 내가 있을 방이 없어진 것이다.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상황을 이야기하고 급하게 친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당시 나의 상황이 어쩔 수 없게 된 것을 알고 친구가 급한 대로 자신의 방에 와서 같이 생활하자고 했다. 고등학교 친구인 심의 집이었다. 심은 집에서 2남 1녀 중 늦게 얻은 귀한 막내딸이었다. 심의 집은 부유한 집은 아니었다. 당시 심의 집은 부천 산동네로 재개발이 안된 집성촌이었다. 서로 허물 잡힐 것 없이 속마음을 터놓는 사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한참 예민한 나이였던 우리는 사실 가릴 것이 많은 사정을 각자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 민낯을 드러내도 창피할 것이 없는 친구 사이였기에 각자의 사정을 알고 지냈다. 당장 갈 곳이 없어진 나에게 심은 마음을 내주었다. 염치없지만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심의 방에 같이 머물 때 모녀의 돈독한 정을 볼 수 있었다. 심의 집은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오빠 둘 다 여동생을 귀히 여기는 분위기였다. 우리 집은 남아 선호사상이 강해서 아들을 최고로 여기기 때문에 우리 집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심의 어머님은 또래 친구들 어머님들보다 열 살 이상이 많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다니셨다. 그 점도 새로운 모습이었다. 심과 내가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우린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자마자 씻고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분주한 움직임에도 심의 어머니는 심이 준비하고 있는 동안 심에게 당연하듯 밥을 떠먹여 주었다. 이건 내겐 충격적인 애정으로 각인되었다.
심의 집에 두, 세 달 정도 있으면서 회사는 매달 매출에 신경 쓰며 챙길 일이 많아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주말에는 집에 다녀오곤 했다. 아빠는 비슷한 상태로 투병한 지 몇 해 째가 되었고 상태는 점증적으로 악화되었다. 1년 전 통증에 힘겨워 총으로 자신의 배를 난사한 후 아버지는 더 건강이 악화되었다. 숨을 쉬는 게 힘겨우신지 몇 개월 전부터 잠시 착용하던 산소호흡기를 항시 차게 되었다. 최근 몇 주는 고통이 극심하신지 주말에 찾아가도 잠을 자는 날이 많았다. 내가 심의 집에 있는 동안 대소변 처리가 잘 안 되면서 기저귀도 필요하게 되었다. 나는 주말에 집에 가더라도 있을 곳이 만만치 않아 오래 있지 못하고 친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한동안 장마가 왔고 이후 기온은 더 오르고 무덥고 습한 7월이었다. 97년 7월 17일은 제헌절이었다. 당시만 해도 공휴일이었다. 주말에 집에 다녀왔으므로 심의 집에서 쉬었다. 7월이라 저녁 7시가 돼도 아직 날이 밝았다.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끊고 정신없이 밖으로 갔다. 심의 집은 산동네라서 집에서 나와 골목을 지나 찻길까지 걸었다. 도로에는 차들이 많지 않았다. 택시를 잡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택시가 바로 오지 않아서 버스를 타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평소에 택시를 탄 적이 거의 없어서 택시 타는 게 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해서 버스정거장까지 가는 길에도 찻길에 눈을 계속 고정하고 택시가 오는지 살피고 있었다. 반대쪽 차에서 택시가 지나가는 걸 봤다. 도로에 지나가는 차를 살피지도 못하고 급한 마음에 찻길을 건너서 택시를 세웠다. 시끄럽게 경적이 울렸다. 미쳐 못 본 운전자를 향해 고개를 연신 수그렸다. 택시에 몸을 구부정하게 넣으며 물었다 "부천 북전화국이요" 택시 기사님의 끄덕임을 보고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를 타고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다. 20분도 안 돼서 도착할 길인데 마치 먼 길을 돌아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택시비 만 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살피지도 않고 손아귀에 쥐어들고 택시에서 내려서 뛰기 시작했다.
집 앞에 도착하자 앞집에 살고 있던 큰 형부가 나와 있었다. 큰 형부는 분주하게 무언가 일 처리를 하듯 전화를 하고 있었다. 문 앞에 다다르자 울음소리가 밖에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문이 살짝 열려있고 신발들이 많았다. 소리가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니 작은언니가 울고 있었다. 엄마는 기운 없는 듯 한편에 앉아 있었다. 나는 울고 있는 작은언니를 쳐다보며 눈으로 묻고 있었다. "내가 잠깐 빨래 널러 갔었는데... 그전에 맥도 짚어 봤는데....." 언니가 울음을 터트리며 말을 끝내지 못했다. 집안에는 작은 언니의 울음소리 이외에는 적막이 흐를 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내가 작은언니에게 재촉하자 작은언니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아침에 아빠가 나한테 물을 달라고 했는데 내가 출근하느라 못 떠 드리고 회사에 출근했어...."라며 작은언니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나는 멍해졌고 정신이 없었다.
이불을 덮고 있는 아빠 쪽으로 걸어갔다. 손을 만졌다.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기가 아빠에게서 내 손으로 전해졌다. 울음소리도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아빠의 얼굴을 만졌다. 7월 한여름인데, 그 무더운 날씨에 아빠는 당장 얼음꽃이 필 듯 차가웠다. "아빠~ 막내딸 왔어~~~~~" 나는 너무도 차가워진 아빠가 추울 것 같아 아빠의 손을 오랫동안 만지며 울었다.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하염없이 침묵 속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다. "아빠~ 눈 좀 떠봐~" 그저 아빠와 눈을 마주치고 싶었다. 싸늘 해진 아빠가 눈앞에 있는데 숨결이 있는 아빠가 그립고 보고 싶었다.
한동안 눈물만 흘리다 집 밖으로 나왔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이라 잠시 망설여졌다. 그러나 이내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소장님. 저 내일 출근을 못할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